제임스 웹 영(James Webb Young, 1886~1973)의 『아이디어 생산법(A Technique for Producing Ideas)』(1939)은 영문판 기준으로 48페이지다. 책의 핵심은 한 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한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얻는 책이다. 줄을 쳐가며 꼼꼼히 읽어도 한 달 후나 일 년 후에 다시 읽으면 느낌이 새로운 책이다. 모든 책이 다 그렇지만, 사실 그런 책은 많지 않다.
광고 카피라이터를 타깃으로 지은 책
아이디어가 없는 게 문제다. 아이디어가 없으니까 베끼게 된다. 게을러서 베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회의 석상에서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면, 여러 면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분들이 고개를 푹 숙이는 이유는 뭘까. 역시 아이디어 빈곤이 문제다.
아이디어가 없는 것은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원칙과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기예를 배울 때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은 첫째 원칙, 둘째 방법이다(In learning any art the important things to learn are, first, Principles, and second, Method.)”
원칙·방법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지만, 『아이디어 생산법』이 일단 원칙과 방법을 제시한다.
제임스 웹 영이 지은 『아이디어 생산법』은 누구나 고대 그리스 철학자·자연과학자 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년께~212년께)처럼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외마디 중 하나인 ‘유레카(Eureka·알아냈다)!’를 외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5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아이디어 구성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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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분야에서 현대의 고전 중 고전인 『아이디어 생산법』의 원래 타깃 독자는 광고 카피라이터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분야에도 통용되는 내용이라는 것을 수많은 애독자가 증언한다. 저자는 시인, 화가, 엔지니어, 과학자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받았다. “해보니까 되네요(It works!)”라는 편지였다.
제임스 웹 영이 주장하는 아이디어를 둘러싼 대전제를 살펴보자.
첫째, 회사는 소비자에게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판다.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판매(sales)라는 관념은 저항감을 부를 수도 있다. 인류 사회의 도덕적·윤리적 기초를 마련한, 역사의 4대 혹은 5대 성현이 판매를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현들도 그들의 사회 구상을 성공적으로 팔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며 심지어는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
둘째, 아이디어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정된 순서와 규칙에 따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갑자기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우연히 혹은 실수로 태어나는 게 아니다.
자동차 공장 어셈블리 라인에서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나 우리 머리에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나 원리는 같다.
셋째, 아이디어 생산 능력은 훈련(training)으로 증진할 수 있다. 사람 나고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지 아이디어 나오고 사람 나온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아이디어 천재’가 될 수 있다. 시멘트와 물, 틀만 무한대로 공급된다면, 또 수요가 있다면 벽돌을 무한대로 찍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디어 생산의 원칙’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한 원칙들이다.
첫째 원칙은 “아이디어는 기존 아이디어의 새로운 조합에 불과하다(An idea is nothing more nor less than a new combination of old elements.)”는 것이다. 새것처럼 보이게 하는 비밀·비결은 ‘조합’에 있다.
유대교·그리스도교 경전을 보면,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것이 있을 리 없다”(전도서 1:9)고 했다.
‘진짜 새로운 것도 있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예컨대 스마트폰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아닐까. 하지만 스마트폰만 해도 생각해보면 이미 존재했던 전화, 사진기, TV, 라디오, 컴퓨터를 합쳐 놓은 것이다.
둘째 원칙은 아이디어를 새롭게 조합하는 능력은 기존의 변수와 변수, 팩트와 팩트 사이의 관계를 볼 수 있는 능력에 달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된 요소를 새롭게 조합하는 능력은 관계를 볼 수 있는 능력에 달렸다.(The capacity to bring old elements into new combinations, depends largely on the ability to see relationships.)”
예컨대 영국 정치학자 스튜어트 엘던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타난 영토의 개념을 연구한다. 국제정치학의 핵심 개념이기도 한 영토와 셰익스피어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관계가 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1694~1778)는 “처음으로 미인을 꽃에 비유한 사람은 천재지만, 두 번째 다시 같은 말을 한 인간은 바보다”라고 했다. 꽃과 미인을 처음으로 결합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인물은 제임스 웹 영이 제시한 원리에 충실히 따른 것이다.
아이디어 회의를 준비하는 직장인과 사회과학·자연과학 학자의 공통점은 관계를 발견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관계가 있는 종속변수·독립변수를 발견해야 한다. 변수들 간의 관계를 수식으로 정리하고 통계 패키지도 돌린다. 예컨대 시인이나 소설가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들도 동떨어진 것들 사이에서 신비로운 관계를 발견해야 세상에 새로운 것을 내놓을 수 있다.
아이디어 생산법은 5단계로 구성된다. 반드시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5단계를 순서대로 거쳐야 한다. 순서를 건너뛸 수 없다. 많은 사람이 1~3단계를 거치지 않고 4, 5단계에서 헤맨다고 영은 지적한다.
창의성의 핵심은 ‘아이디어’라고 주장
예비 단계라 할 수 있는 게 있다. 단어를 정복하는것이다. 단어는 ‘정지해 있는(suspended)’ 아이디어다. 단어를 정복하면 단어 속의 아이디어가 되살아난다. 사전과 친하게 지내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단어들이 그 자체가 아이디어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경향이 있다.(We tend to forget that words are, themselves, ideas.)” “단어를 정복하면 아이디어가 되살아나는 경향이 있다.(When words are mastered the ideas tend to come alive again.)”
1단계는 정보·지식·팩트·데이터 같은 원재료(raw materials)를 수집하는 단계다. 식사에 비유하면 먹을 음식을 모으는 단계다. 자신이 하는 일과 직결되는 구체적인 지식(specific knowledge)뿐 아니라 일반적인 지식(general knowledge), 자신이 하는 일과 동떨어진 원료를 수집하는 것도 중요하다. 창조적인 사람은 고대 이집트 장례 절차에서 현대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
지식을 모을 때는 메모가 중요하다. 메모는 공책에도 할 수 있다. 저자는 색인카드(index card)에 메모할 것을 권한다. 미국 작가 지망생들의 필독서인 『쓰기의 감각(Bird by Bird)』(1994)의 저자인 앤 라모트도 색인 카드에 각종 정보와 지식, 아이디어를 메모할 것을 권장한다.
2단계는 원재료를 종합하는 단계다. 이제 음식을 씹을 때다. 수집한 원재료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종합해 원재료와 원재료 사이에서 관계를 찾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시험적인(tentative)·부분적인(partial)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아직은 진짜 아이디어(real idea)가 아니다.
2단계에서 퍼즐 조각을 맞추듯 관계를 찾다 보면 머리가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피곤하고 지치게 되면 2단계가 끝난 것이다.
3단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단계다. 음식을 ‘소화’하는 단계다.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문제를 잊어버려라. 최대한 마음에서 문제를 비워라.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작업은 무의식이 수행하게 내버려둔다. 나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시를 읽으면 된다.
4단계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문제에 대해 자나 깨나 항상 생각한다. 뉴턴에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묻자 “그것에 대해 항상 생각함으로써(By constantly thinking about it)”라고 대답했다는 것을 상기하라. 자나 깨나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갑자기 생각이 떠오르는 ‘유레카’의 순간이 찾아온다. 샤워할 때, 산책할 때 등 도둑처럼 아이디어가 들이닥친다.
5단계는 아이디어를 실용화하는 단계다. 아이디어를 현실 세계에 적용하는 단계다. 이제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오히려 이 단계가 가장 괴롭다. 엄청난 인내력이 필요하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제5단계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흐지부지된다.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비판과 같은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내 아이디어는 남들의 아이디어와 결합돼 놀라운 속도로 팽창한다.
그런데 아이디어 생산법에는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제임스 웹 영의 책은 우리말로도 수차례 번역됐다. 최근 『60분 만에 읽었지만 평생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아이디어 생산법』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이 출간됐다. 새 책에서 과학적 근거에 대해 정재승 KAIST 교수가 한국어판 서문 ‘정보의 호수에서 아이디어를 건져 올리는 비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몇몇 신경과학자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뇌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살펴보기 위해 실험 참가자들을 fMRI 안에 눕혀 놓고 발상의 순간을 포착했다. […] 그 결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던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이 벌어지더라는 것이다. 전두엽과 후두엽이, 측두엽과 두정엽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정보를 처리할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오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창의성이 화두인 시대다. 소위 제4차 산업혁명 시대나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수많은 직업이 생기고 또 사라지게 되는데 창의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일자리를 얻느냐 못 얻느냐를 좌우할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에 가르칠 것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다. 물론 코딩 교육도 중요하다.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코딩 교육에 부정적이다. 그는 많은 교육전문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4C’, 즉 ‘비판적 사고, 소통, 협업, 창의성(critical thinking, communication, collaboration, creativity)’을 배우는 가운데,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자질인 ‘정신적인 융통성과 감정적인 균형’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미래 담론에서 창의성은 빠지지 않는다. 창의성의 핵심은 결국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아이디어 생산법』에 눈길을 줄 필요가 있다.
제임스 웹 영은 1886년 1월 20일 미국 켄터키주 커빙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6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출판 비즈니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승승장구했다. 22세에 광고 매니저가 됐다. 미국 광고계의 전설이다. 미 광고협의회(Advertising Council) 초대 회장을 지냈다. 시카고 비즈니스 스쿨 교수(1931~39)로서 비즈니스 역사와 광고를 가르쳤다. 다른 저서로는 『어느 광고인의 일기(The Diary of an Ad Man)』, 『광고인이 되는 법(How to Become an Advertising Man)』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