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6일, 중소벤처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협력이익 공유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협력이익공유제는 현 정부의 국정운영 100대 과제에서 도입을 예고했던 협력이익배분제의 다른 이름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경제 프레임 아래 2017년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이익을 공유하는 협력이익배분제 모델을 개발하고, 2022년까지 200개 기업에 적용하겠다는 목표와 계획을 지난해 7월의 국정과제에서 밝힌 바 있다. 그 계획이 2018년 11월 6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간의 당정협의를 거쳐 마침내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당초의 이익배분제에서 이익공유제로 명칭을 바꾼 까닭은 아마도 이 제도의 자율적 측면을 부각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정부는 협력이익공유제가 정부의 강제가 아니라 자율적으로 도입한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협력이익공유제란 대·중소기업(중견기업 포함) 간, 중소기업 상호 또는 위·수탁기업 간 공동의 노력을 통해 달성한 협력이익을 위탁기업 등의 재무적 성과와 연계해 사전에 약정한 바에 따라 공유하는 계약모델이다. 수·위탁기업이 이 제도를 도입하면, 정부는 이익 공유의 사전 약정부터 전체 과정을 종합 관리·심의해서 등급을 결정하고, 등급별로 차등화된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인센티브는 손금인정, 세액공제 등의 재무적 유인과 수·위탁 정기 실태조사 면제, 동반성장평가 우대 등의 비재무적 유인을 포함한다.
정부의 계획대로 이익공유제가 법제화되면 이는 우리 경제정책사에서 일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위탁 대기업이 소재와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 업체에게 미리 정한 대금을 지불하고도 나중에 또 이익을 나눠줘야 한다는 것은 협력 업체별 기여도를 측정할 수 없는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시장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천만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의 자율을 말하지만 회사 이익을 나누자는 발상부터 기이(奇異)한 데다 정부가 관리·통제하고 성과를 내겠다는 정책 목적의 제도가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할 수는 없다. 경제 전문가들의 평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부 발표가 나온 직후,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서울 소재 대학 상경계열 교수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협력이익공유제 설문조사’에서도 반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들 교수 10명 중 7명이 이익공유제를 반(反)시장적 제도로 판단하고 상생협력법 개정을 통한 법제화에 반대하고 있다.
이익공유제는 회사제도의 근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수·위탁기업 간 거래시장을 정치판으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크다. 회사 경영의 성과에 대한 잔여 청구권자는 주주이다. 다시 말하면 회사가 임금, 납품대금, 대출 원리금, 임대료 등을 지불하고 거기에 세금까지 더 내고 남은 돈(이익)이 있으면 이 잔여분에 대한 청구권은 주주에게 있다. 주주는 회사의 이익뿐 아니라 손실에도 유한책임을 지는 잔여 청구권자이다. 이에 비해 수탁 협력 업체는 위탁기업에 손실이 나도 사전에 정한 계약대로 납품대금을 받기 때문에 잔여 청구권자가 아니다. 특허 기술과 같이 협력사 중에는 위탁기업의 판매량 또는 판매대금에 비례해 대금을 받는 사례가 간혹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거래 자산의 전속성(asset specificity)이 높을 때 파생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사례다. 시장에서 대체 가능한 중간재를 납품하는 협력 업체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가 도입하겠다는 이익공유제는 협력 업체의 잔여 청구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한다는 점, 그리고 손실에 대해서는 분담 책임을 면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이익공유제를 통해 수·위탁기업 간에 상생과 동반성장을 이끌겠다고 하지만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이익공유제는 기업 간 거래비용을 높이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수·위탁기업 거래를 축소 균형으로 이끌 위험이 더 높아 보인다. 거래비용이 높아지면 거래량이 감소하는 것이 시장의 법칙이다. 경제 전문가들이 평가하듯이 이익공유제는 반(反)시장적 제도이며, 자유주의와 배치된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방향을 정반대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예를 들어 11월 30일에 있었던 지식인선언네트워크 토론회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좌파로 착각해서는 안 되고 자유주의 정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식인선언네트워크는 진보적 성향의 교수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참여한 단체로서 지난 여름에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 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문(7·18)’을 발표한 바 있다.
어느 산이 앞산이고 어느 산이 뒷산인가는 산을 보는 이의 위치와 관점에 따라 바뀐다.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두 사람에게 앞산과 뒷산은 정반대이다. 그러나 정책의 이념지향성은 앞산, 뒷산의 위치 판단과 달리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선택의 자유와 자기 책임 원칙을 강조하면 우파적 정책이고 규제와 지원·보호 등 정부 역할을 부각하면 좌파적 정책이다.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정부 정책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정부 정책의 이념 지향성을 평가할 때는 최소한의 객관적 기준이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참고삼아 좌파와 우파 또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구분법에 관한 두 가지 예화를 소개한다. 첫 번째 예화는 ‘경제학자들의 우스갯소리’에서 오래 전부터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당신이 두 마리 암소(cow)를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회주의에서는 정부가 당신의 암소 한 마리를 가져가 다른 사람에게 준다. 공산주의 국가는 두 마리 암소를 모두 가져가고 당신에게 우유를 배급한다. 관료주의에서는 정부가 두 마리 암소를 가져가 한 마리를 죽이고, 우유는 하수구에 버린다.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두 마리 암소 중에 한 마리를 시장에 내다 팔고 그 대신에 수소(bull) 한 마리를 살 것이다.”
두 번째는 영국의 정치인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이 오래 전에 의회에서 연설했던 내용의 일부이다. 여기에서 처칠이 말한 사회주의와 대비한 리버럴리즘(liberalism)은 진보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libertarianism)로 해석된다. “사회주의는 부자를 끌어내리려 하고 자유주의는 가난한 자를 끌어올리려 한다. 사회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파괴하려 하지만 자유주의는 개인의 이익을 공공의 권리와 조화시킴으로써 안전하고 공정하게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주의는 기업을 죽이려 하지만 자유주의는 특권과 정실의 질곡으로부터 기업을 구하려 한다. 사회주의는 개인의 탁월함을 공격하지만 자유주의는 국민 대중의 최저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주의는 자본을 공격하고 자유주의는 독점을 공격한다.” 처칠이 말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구분법에서 한국 경제는 어느 지점에 있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