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대변되는 현대물리학은 100년 전 ‘호기심을 잃지 않은 어른들’이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과 선입관을 깨고 이룩한 지적 혁명이다. 이를 통해 인류는 이전과 다른 세계관에 눈을 떴고,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현대물리학은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음은 ‘현대물리학과 인간사고의 변혁’ 강좌의 일부(44회 강연 중 3회 강연)다.
과학을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활동의 본질은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보고, 그 호기심을 합리적으로 해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는 원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호기심을 가지면 세상이 정말 다르게 보일 수 있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것, 원자
세상 모든 것이 원자로 돼 있습니다. 이는 우리 몸도 원자로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시다시피 원자는 굉장히 작습니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사람과 같은 거대한 덩어리를 만들려면 굉장히 많은 원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는 대강 1028개입니다. 1028이라고 하면 별 느낌이 없을 테니까 보통의 숫자로 말씀드리면 억의 억의 조 개입니다. 즉 억에 억을 곱한 다음에 다시 조를 곱하면 나오는 수가 우리 몸에 있는 원자의 개수입니다.종류로는 60종 정도가 우리 몸을 구성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수가 많은 원자는 가장 가볍고 단순한 수소 원자입니다. 수소 원자는 우리 몸의 63%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다음으로 많은 것은 산소입니다. 24%를 차지하죠. 탄소가 12%, 그다음은 질소, 칼슘, 이런 식으로 돼 있습니다. 이런 익숙한 원자들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사람 몸의 대부분이 물로 돼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학창시절 과학시간엔 수소 원자(H) 두 개와 산소 원자(O) 한 개가 합쳐져 물 분자 한 개가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H2O 기억나시나요? 그러니 우리 몸의 상당 부분이 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수소와 산소로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수소는 2개, 산소는 1개니까 수소가 훨씬 많겠죠. 그래서 우리 몸에서 수소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산소라는 것은 당연한 얘기입니다.
좀 전에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가 1028개, 즉 억의 억의 조 개라고 했죠. 그중에서 63%가 수소니까 수소가 여전히 많은 겁니다. 산소도 비슷하죠.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수소와 엄청난 양의 산소가 우리 몸에 있습니다. 수소 원자에는 다 ‘수소’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소면 수소, 산소면 산소라 하는 이 같은 종류의 원자들이 단지 이름뿐만 아니라 모든 게 정말 똑같아서 전혀 구별할 수 없다는 겁니다. 모든 수소가 똑같고 모든 산소가 똑같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은 절반이 여자, 절반이 남자죠. 그런데 지구에 있는 35억 명에 달하는 남자가 다 똑같지는 않죠. 모든 여자가 똑같아서 여자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쌍둥이를 보고 똑같이 생겼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씩 다릅니다.
완전히 똑같은 원자들
여러분이 가진 휴대전화도 각각 모델 이름이 붙어 있는데, 사실 같은 모델이라 해도 자세히 보면 약간씩 다릅니다. 기계로 찍어낼 때 어딘가 약간씩 특성이 다르고 일련번호가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다 구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똑같다고 일상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정말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는 뜻은 아니라는 얘깁니다.그런데 수소가 똑같다, 산소가 똑같다고 하는 것은 이런 구분조차 불가능하게 정말 똑같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바꿔치더라도 우리가 알아내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들이 정말 똑같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정말 똑같은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에서 이유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는 겁니다. 이렇게 수소면 수소, 산소면 산소가 정말 다 똑같은 이유를 캐묻는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제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요? 이들이 왜 똑같은지 이유가 궁금하시죠? 그 이유는 지금 여러분께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나중에 여러분이 양자역학을 배울 때 약간의 비유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죠.
세상이 원자로 돼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런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 주변에 보이는 바위나 곤충, 우주 저 멀리 있는 은하, 아니면 여러분의 몸에 있는 심장이나 뇌, 이런 것들을 만드는 원자가 모두 똑같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내 몸에 있는 원자는 특별한 거야.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으니까 이건 특별한 물질일 거야’라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도 바위나 곤충과 똑같은 원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바위나 내 몸이나 똑같다니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고요? 여러분 오늘 다 식사하셨죠? 밥을 먹으면 그 밥이 여러분의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그것은 쌀알을 이루는 물질과 여러분의 몸을 이루는 물질, 즉 원자들이 완전히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쌀알에 있는 원자가 우리 몸으로 들어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우리 몸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거죠. 만약에 쌀알을 이루는 원자와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면, 우리가 아무리 밥을 먹어봐야 우리 몸의 일부가 될 수 없겠죠.
내 몸만이 아닌 내 몸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은 세상이 이렇게 똑같은 원자들로 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 쌀알의 원자가 우리 몸으로 들어오면 우리 몸이 되고 우리 뇌가 되고 우리의 생각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원자가 땀이나 배설물로 우리 몸 바깥으로 나가고, 그것이 구름으로 올라가서 비가 돼 내리기도 하는 거죠. 바로 이런 것이 세상이 원자로 이뤄져 있다는 의미입니다.이런 상상도 할 수 있습니다. 1600년대 사람인 뉴턴의 몸을 이루던 원자가 지금 우리 몸에 와 있을 수 있습니다. 뉴턴은 영국 사람으로 영국 땅에 묻혔으니 불가능한 상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뉴턴의 몸은 이미 흙이 되어서 오래전에 형체도 없이 사라졌겠죠. 그런데 그 몸을 이루던 원자들 중 일부는 구름으로 올라가서 비가 돼 내렸을 것이고, 그 구름이 공기를 타고 지구를 돌았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흙이 된 곳에서 농작물이 자라고 그 농작물을 우리가 수입해 먹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원자들은 한곳에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돌게 됩니다. 실제로 어떤 계산에 의하면, 현재 살고 있는 모든 사람 한 명 한 명의 몸에는 뉴턴의 몸속에 있던 원자가 20억~30억 개 들어 있다고 합니다. 기분 좋은 얘기죠? 뉴턴의 몸을 이루던 그 위대한 원자가 지금 내 몸에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원자 처지에서는 ‘내가 옛날에 뉴턴의 몸에 있을 때는 잘나갔는데 지금은 왜 이 모양이냐’고 한탄할 수도 있겠네요.
아주 기분 나쁜 상상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물시간에 배운 아메바, 또는 쳐다보기도 싫은 바퀴벌레의 몸을 이루던 원자가 지금 내 몸에 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전혀 비현실적인 상상이 아닙니다. 늘 일어나는 일이죠.
통째로 바뀌는 몸
인체를 이루는 원자는 이처럼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남아 있지 않아요. 여러분이 태어났을 때 갑자기 우주에서 뿅하고 생겨나서 죽음과 동시에 우주에서 사라지면 내 몸은 신비하고 참 좋을 것처럼 보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몸과 무관하게 이미 존재하고 있다가 우리가 죽는 것과 무관하게 원자는 원자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람 몸 안의 원자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고 계속 바뀝니다.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내 몸의 원자는 얼마나 자주 바뀌는 거지? 내 몸은 거의 변하지 않았으니까 내 몸의 원자 대부분은 유지되는 게 아닐까? 답은 ‘아니오’ 입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사람 몸에 있는 원자는 1년 동안 98%가 바뀐다고 합니다. 9.8%가 아니라 98%입니다. 즉, 1년 전의 몸과 지금 몸을 비교할 때 여러분의 몸에는 딱 2%만 같은 원자가 들어 있습니다. 나머지 98%는 다 바뀐 거예요. 사람 몸은 세포로 돼 있고 세포는 다시 수많은 원자로 돼 있습니다.
세포 수준에서 먼저 말씀드리면, 뇌세포의 일부, 심장 근육의 일부, 눈 수정체의 가장 안쪽, 그리고 이빨의 일부 세포들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유지된다고 해요. 그런데 그 이외의 다른 세포들은 모두 바뀝니다. 또한 세포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그 세포 안에 있는 물질들은 끊임없이 바뀝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몸은 통째로 다 바뀐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몸의 각 부분이 얼마나 자주 교체되는가’에 관한 연구도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빨리 바뀌는 세포는 내장 표면이라고 합니다. 5일에 한 번씩 바뀐다고 해요. 그다음에 자주 바뀌는 것은 피부로 2주에 한 번씩 바뀝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피를 만드는 적혈구는 4개월에 한 번씩, 간은 300~500일 만에 한 번씩 바뀝니다. 단단한 뼈는 10년에 한 번씩 바뀝니다. 가장 오래가는 것이 근육인데 이것도 16년에 한 번씩 통째로 바뀝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노인이나 어린이나 각 개인의 세포 나이는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원자나 세포가 교체되는 것과 사람 몸의 모양이 바뀌는 것은 다른 얘기입니다.
우리 모두는 별의 후손
우주를 떠도는 원자들은 때로는 바위가 됐다가 때로는 개미, 때로는 인간이 되기도 한다. [뉴시스]
우리 우주는 지금부터 138억 년 전에 대폭발(Big Bang)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맨 처음에는 밀도가 무한대로 높은 한 점에 모든 물질이 다 뭉쳐져 있었어요. 그때는 사실 시간도 없었고 공간도 없었는데 대폭발에 의해 비로소 시간도 생기고 공간도 생깁니다. 폭발 직후에는 우주가 너무나 뜨거워서 원자도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폭발로 우주가 팽창하면서 온도가 계속 내려가게 됩니다. 폭발 후 38만 년이 지나면 온도가 충분히 내려가서 처음으로 양성자와 전자가 만나 결합합니다. 즉, 최초로 원자가 생겨나는 거죠.
이렇게 수소나 헬륨 같은 가벼운 원자들이 우주 탄생 38만 년 후에 처음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면 이른바 만유인력(중력)에 의해서 이 원자들이 서로 뭉치기 시작합니다. 뭉치면 뭐가 될까요? 뭉치면 별이 되죠. 점점 더 많은 원자가 뭉침에 따라 별의 한가운데는 갈수록 압력이 커지고 온도도 올라갑니다. 그러면 별의 한가운데에서 탄소나 산소 같은 원자의 원자핵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별은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태양도 마찬가지인데요. 별에 따라서 수백만 년 혹은 수십억 년 후에 수명을 다하는데, 별은 마지막 순간에 폭발하거나 크게 부풀어 오릅니다. 그 과정에서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탄소나 산소 같은 무거운 원자핵들이 우주로 방출되죠. 그러면 그 방출된 원자핵이 주변을 떠도는 전자들과 만나서 원자가 됩니다.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원자, 즉 산소나 탄소 같은 원자들이 수십억 년에서 백 수십억 년 동안 우리 우주를 떠돌게 됩니다. 그러다가 때로는 태양 같은 별이 다시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구 같은 행성이 되기도 하죠. 그렇게 지구에 우연히 모인 물질들이 때로는 바위가 됐다가 때로는 공룡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금 여러분과 같은 생물체가 되기도 합니다.
즉, 다시 말하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산소나 탄소 등의 원자핵들은 수십억 년 혹은 백 수십억 년 전에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별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별의 후손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게 무슨 만화책에 나오는 얘기야?’ 하겠지만 이게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여러분의 몸에 있는 모든 산소와 탄소의 원자핵들은 별의 한가운데에서 탄생했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여러분, 지금 거울로 한번 달려가 보세요. 익숙한 얼굴이 보이죠?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뭐지? 원자의 관점에서 보면 수십억 년에서 백 수십억 년에 이르는 오랜 기간 중에 내 몸에 머무는 시간은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입니다. 아주 찰나의 순간, 찰나보다 더 짧은 순간인 거죠. 그렇게 짧게 머물다가 다시 내 몸을 빠져나가서 내일은 친구의 몸이 될 수 있고 바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제각각 다른 여정을 가진 수많은 원자가 아주 잠깐 동안 모여서 만들어진 내 몸, 그 몸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여러분은 모두 저마다 갖고 있는 추억이 있고,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이 있을 것입니다. 그 비밀들은 어디에 있는가. 계속 원자는 바뀌고 뇌도 바뀌는데.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질문이 정말 심오한 질문이 되는 거죠.
세상이 원자로 이뤄져 있다고 하는 건 바로 이런 내용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혹은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로 돼 있다고 배웠을 텐데요. 그 내용은 시험을 보기 위해 외웠을 테지만 지금은 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과학을 하는 것은 그렇게 짧은 문장 하나를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의미를 자기 스스로의 사고 과정을 거쳐 이해하는 것, 그리고 깨닫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과학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원자 이야기를 한 것은 앞으로 우리가 배울 현대 물리학이 정말 이렇게 스스로의 이성으로 느끼는 학문이라는 점을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첫 번째 시간에,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주요리가 나오기 전에 애피타이저로서 이 주제를 택한 겁니다.
김 찬 주
● 1966년 전북 전주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동 대학 석·박사(물리학)
● 미국 뉴욕시립대 연구원, 고등과학원 연구원, 서울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 現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 2015년 K-MOOC 수강생 강의만족도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