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 사이 보수 진영은
경제성장률 하향, 미·중 무역전쟁, 일본의 선전포고
총선 앞둔 문 대통령과 여당은 한반도 평화 성과에 집착할 것이다
옳든 그르든 진보의 비전·전략·리더십은 선명하다
비슷한 격변의 시기 1989년에는 보수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과
사회주의 시장을 잡으려는 결단과 ‘합당 결의’ 리더십이 있었다
경제·외교·안보서 정면 승부를 해야 할 시간에
엉덩이 춤이나 추고 있으니 지금 자유한국당의 시계는 몇 시인가
2019년 6월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을 넘어감으로써 북한 땅을 밟은 최초의 현직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1989년에 임수경이 (전대협 대표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들어간 날도 6월30일이었다. 임수경은 8월15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돌아왔다. 30년 만에 역사적 장면이 재연되었다.
프랑스 상업위성 SPOT 2호에 의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해도 1989년이었다. 30년 전에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할 의도가 있는가가 국제사회의 관심사였다면 지금은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가가 관심사다. 김일성은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필요도 없다”고 공언했지만 이제 와서 보면 북한은 오래전부터 핵무기를 개발할 의도, 의지, 능력,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89년 노태우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이 한국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우방국들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었고, 미국도 한국의 동의 없이 북한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외교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9년의 북한은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북한 땅을 밟게 하고, 판문점에서 (한국의 대통령을 배제한 채) 미국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함으로써 ‘통미봉남’의 전통적 외교 전략이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결국 지난 30년의 대북 전략은 실패라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보수 진영은 근거가 빈약한 ‘북한 붕괴론’에 사로잡혀 남북대화의 주도권을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대통령에게 내주고 ‘한반도 평화’ 이벤트에서 ‘객’도 아닌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이끈 보수 진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전략적 패착이다. 진보 진영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의 의도, 능력, 의지를 읽지 못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1989년 폴란드, 헝가리로부터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가 시작됐다. 중국은 6월에 일어난 ‘톈안먼사건’으로 혼란스러웠다. 11월에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2월에는 미국과 소련의 정상이 만나 “냉전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정치학자이자 역사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의 붕괴, 독일 통일, 소련 해체 전야로 사회주의국가인 북한은 수세에 몰렸다. 1989년은 그런 해였다.
일본의 버블도 1989년 역사적 정점에 올라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쇼와(昭和) 64년을 마감하고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열린 해도 그해였다. 2019년 일본은 새로운 레이와(令和) 시대가 열렸다. 중국은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로 30년 만에 ‘톈안먼사건’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1989년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을 상대로 역사적 승리를 선언했던 미국은 2019년에 훨씬 강한 사회주의국가 중국을 상대로 힘겨운 전쟁인 ‘기술패권전쟁’을 선언했다.
냉전이 끝난 후 30년간 세계를 지배한 키워드는 ‘세계화’와 ‘기술혁신’이었다. 두 흐름을 타고 미국, 중국, 한국은 크게 부상했고 일본과 유럽의 정보산업은 존재감을 거의 잃었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는 ‘운 좋은 승자’였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얻었고, 미국의 전략산업 파트너로서 일본을 대체하는 지위도 얻었다.
그러나 30년 만에 세계는 탈세계화, 보호주의, 기술과 무역의 무기화로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은 우방도 없고 동맹도 없다. 냉전과 세계화 시대에는 이념과 에너지를 둘러싼 ‘군사동맹’이 중요했다면, 새로운 전쟁은 ‘기술동맹’이 안보동맹의 핵심이 될 것이다. 기술과 산업 경쟁력을 잃으면 동맹 가치를 잃는 것이다. ‘대체 불가능한 기술·산업적 역량’을 가진 나라만이 강대국의 존중을 받으며 ‘전략 파트너’로서 살아남을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의 산업 전략이 아니라 패권 전략이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는 한국에 빼앗긴 미국 정보산업 전략 파트너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전략적 구상이다. (정보산업에서) 유일하게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중국의 통신시스템 기업 화웨이를 미국이 견제해주고,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무너뜨리려는 일본의 공격을 막아낼 수만 있다면 5G 통신시스템이나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 외교·안보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미국, 중국, 북한, 일본, 러시아 모두 국익을 위해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에 한반도 의제라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반면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4대강, 복지 확대, 자사고 축소, 사법개혁 같은 국내 정치 의제는 (시행착오에 따른 손실은 불가피하지만) 정권에 따라 언제든 되돌릴 수도 있기 때문에 치명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기술·산업 경쟁력은 전혀 다르다. (동맹국가도 적대적인 상황에서) 오직 우리 역량으로 싸워야 하고 한 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국가의 총역량으로 맞서야 한다.
오늘 국제 정치가 돌아가는 현실을 보자. 누가 탈세계화를 주도하는가? 세계화를 주도했던 미국, 영국이다. 누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흔들고 있는가? 누가 무역을 무기화하고 있는가? 자유무역체제의 승자인 미국, 중국, 일본이다. ‘찬란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제국의 후예’들이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겠다며 세계를 ‘하이퍼 분쟁’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파괴하는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초조하고, 초조하기 때문에 무리한 공격을 하는 것이다. 미국, 중국, 영국, 러시아, 일본 모두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 슬로건이 ‘일본을 되찾자’인 이유다.
한편 세계 곳곳의 광장에서 분노를 터뜨리는 이들은 누구인가? ‘소박했던’ 삶을 잃은 이들이 빼앗긴 꿈을 되찾기 위해 온몸으로 투쟁하고 있다. 자크 아탈리가 <미래의 물결>에서 통찰한 대로 ‘아프리카가 유럽을 닮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이 아프리카를 닮는’ 세상이 되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시대가 온 것이다. 결국 국가든 개인이든 ‘돈을 버는 능력’을 잃으면 존중과 존엄은커녕 생존이 불확실한 시대가 되었다.
경제 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미·중 경제전쟁의 충격 속에 일본이 경제전쟁의 선전 포고를 했다. 단기적으로는 경제지표가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사법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고 설사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관심사는 아니다. 적폐청산도 이제는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부채가 될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럴수록 총선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의제인) 한반도 평화 성과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계속 악화된다면 북핵 이슈의 성과만으로는 (정권에 대한 심판 흐름이 강한) 총선에서 기대한 결과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 내년 총선은 ‘평화가 경제’라는 민주·진보 진영과 ‘경제가 평화’라는 보수 진영의 한판 싸움이 될 것이다. 옳든 그르든 ‘평화가 경제’라는 진보 진영의 비전·전략·리더십은 선명하게 보이는데, 보수 진영은 ‘경제가 평화’라는 깃발만 나부낄 뿐 비전·전략·리더십은 온데간데없다.
냉전이 끝나가던 1989년에 일본의 버블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1985년에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로 구성된 G5의 재무장관은 달러화 강세를 시정하기로 결의했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다. 이 합의로 달러화의 가치는 급락하고 일본 엔화의 가치는 급등했지만 일본은 1989년까지 승승장구한다. 도쿄 땅값으로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의 기세는 무서웠다. 미국의 두려움은 과장이 아니었다. 미국을 넘어 ‘넘버 1’이 눈앞에 보였다. 그때 버블이 터졌다.
30년이 지난 2019년 일본의 위상은 초라(?)해졌다. 중국과 한국이 세계 제조업의 ‘주류 교체’로 일본의 붕괴를 가속화시켰다.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자로 1989년 정점에 이르렀던 일본이 2019년 ‘일본답지 않게’ 기술과 무역을 무기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규모는 겨우(?) 한국의 세 배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1990년대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일본은 이제 없다.
한국의 보수도 1989년에는 비전, 전략, 리더십의 ‘담대함’이 있었다. 1989년 9월 노태우 대통령은 과도적 통일체제로 ‘남북연합’을 상정하는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제시했다. 1991년 9월에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 이루어졌다. 1990년 9월부터 시작된 남북고위급회담은 1991년 12월 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로 결실을 맺었다.
노태우 정부는 냉전이 끝나고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틈을 타 ‘북방정책’이라는 전략적 기조로 사회주의국가들과 과감하게 수교했다. 1989년 헝가리·폴란드,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베트남과 수교했다. 그런 보수 진영이 1994년 김일성 사후 25년간 ‘북한 붕괴’라는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다 2019년 한반도 신질서의 ‘주’도 ‘객’도 아닌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없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어떤 합의도 의미가 없다’ ‘단계적 비핵화는 문재인과 김정은의 바람일 뿐 미국이 동의할 리가 없다’는 확신과 신념 때문에 지난 25년간 ‘북한 붕괴론’에 사로잡혀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의 주도권을 진보 진영에 내준 역사적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마치 25년 전에 일본이 메모리 반도체를 한국에 내준 뒤 세계 정보산업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지경까지 추락한 상황과 흡사하다.
1989년에 보수 진영은 비전·전략·리더십이 있었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담대한 구상도 있었고, 거대한 사회주의시장을 잡으려는 과감한 결단도 있었고, 추진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려고 ‘보수 통합’을 위한 3당 합당을 결의할 정도의 리더십도 있었다. 지금 한국 보수는 꿈도 잃고, 힘도 잃고, 길도 잃었다. 이제는 낡아서 쓸모없게 된 1970~1980년대식 ‘빨갱이’ ‘좌파 독재’ ‘자유 우파’의 세상에 갇혀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아무리 ‘반(反)문재인의 시간’이 오고 있고 민주당을 혼내주려는 민심이 강해지고 있어도 자유한국당이 대안이 아니라는 인식이 더 많으면 총선에서 이길 수가 없다.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국정농단과 탄핵에 대한 반성이 없다. 자유한국당은 탄핵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사람, 소극적으로 부정하는 사람, 소극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이 ‘주’를 이루는 당이다. 탄핵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객’의 신세일 뿐이다. 그런 신념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런 식의 인식, 태도, 인물, 정책, 메시지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무모함에 놀랄 뿐이다.
1989년에서 한 세대가 흐른 2019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위상 추락도 놀랍지만 내 눈에는 한국 보수의 몰락이 가장 놀랍다. 경제·외교·안보에서 정면 승부를 해야 할 시간에 청년·여성을 잡겠다면서 엉덩이춤이나 추고 젊은 사람 당직에 임명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있으니 자유한국당의 시계는 도대체 몇 시인가. 지금은 한국 보수의 어둠의 시간(Darkest Hour)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고,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제전쟁이 진검 승부로 들어갔는데 우리 정치는 낡은 이념전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초딩’들이 친구와 싸우고 보내는 문자가 있다.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정치권에 보내고 싶은 메시지다.
1991년 설립한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컨설턴트다. 30년 이상 선거를 치르면서 익힌 감각과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평가받고 있다.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칙을 담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정치의 몰락>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