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제국주의자인가

2022. 4. 10. 04:58통일,민족

 

좌우 오해에 시달리는 요셉을 위한 변명…해방 직후 3·7제와 요셉의 2·8제 토지개혁 비교

  • 기자명 이성영
  •  승인 2018.10.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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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멈춤앞으로

요셉을 향한 오해의 시선들

성경 인물 중 예수를 제외하고 요셉만큼 오해를 받는 인물이 있을까. 많은 한국교회 목사가 요셉에 대한 설교를 할 때, 요셉을 '비전을 품어 역경을 뚫고 마침내 세상에서 성공한 인물'로 부각하면서 "젊은 시절부터 꿈을 꾸고 비전을 가져라", "하나님을 경외하면 결국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된다"는 유사 복음을 설파한다. 유사 복음인 번영신학을 신봉하는 목사들이 사용하는 요셉 모델은 장로 대통령의 구속과 함께 점차 퇴물 취급을 받고 있어 요셉에 대한 오해는 한 시대가 지나면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뒤로멈춤앞으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요셉을 하나님 아닌 제국에 충성한 신실한 제국주의자로 보고 있다.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됐을 때, 이집트의 모든 토지를 왕에게로 귀속하고 모든 백성을 노예로 만드는 개악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세기는 요셉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요셉이 이집트 백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개악을 저질렀다면 요셉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어 바로의 꿈을 해몽하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제국의 왕에게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 근동 제국의 창조 설화와 달리, 창세기는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됐다는 파격적 관점을 담고 있다. 그런 창세기의 하나님이 요셉을 사용하여 제국의 개악을 주도했다는 것은 무언가 어색하다. 이 어색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집트 총리가 된 요셉이 한 일이 개악인지 개혁인지 재검토하는 일이 중요하다.

해방 직후 3·7제 토지개혁과
요셉의 2·8제 토지개혁 비교

해몽의 은사를 발휘하여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예측한 요셉은 총리가 되어 이집트 모든 토지를 왕에게로 귀속하고 소출의 20%를 국가에 내고 80%를 개인이 소유하게 하는 조치를 단행한다. 요셉의 조치로 왕은 지주가 되고 제사장을 제외한 모든 백성은 왕의 소작농이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요셉이 만든 토지제도를 이집트 백성을 착취하는 개악이라 하기에는 소작농에게 부과하는 소작료가 너무 낮다. 왕정 시대에 왕에게 바치는 소작료는 세금과 다를 바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농경 사회에서 소작농에게 20%의 소작료를 부과한 사례는 인류 역사에서 찾기 힘들다.

해방 직후 1945년 10월 16일 북한의 좌익과 우익의 연합 정치체 평남인민정치위원회가 북한 농민들 민심을 얻기 위해 발표했던 제도가 3·7제 토지개혁이다. 농업 소득의 3할만 지주가 가져가고 7할을 농민이 가져가게 해 달라는 요구다. 불과 70여 년 전, 해방 직후 농민들 민심이 가장 힘이 강할 때 농민들이 요청했던 제도가 3·7제 개혁이었다.

요셉의 토지제도 개혁은 4000년 전 일이다. 내일 먹을 양식이 없어 몸과 땅을 다 팔아야 하는 농민들과 달리 국고에는 곡식이 셀 수 없이 쌓여 있었다. 즉 요셉이 협상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집트 백성에게 20% 세금을 부과했다는 것만으로 백성을 학대하고 개악을 저지른 제국주의자로 보기에는 2·8제가 농민들에게 너무 유리하다.

구약의 '이상 사회' 모습과 닮은
요셉의 토지개혁

요셉을 제국주의자로 보는 학자들 생각에는, 토지개혁 조치 전에 이집트 토지 소유는 매우 평등했을 것이라는 무의식적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소수의 계층이 토지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라는 창세기 47장 21절은 요셉에게 백성을 학대한 제국주의자 혐의를 씌우는 데 주로 사용되고 있다. 요셉이 백성들을 강제 이주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7년 기근이 오기 전 대토지 귀족 지주부터 토지 없는 농민들까지 소유 규모가 다양했던 이집트 토지 소유 구조를 바꾸어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20% 소작료 부과의 맥락에 더 어울린다. 요셉의 토지제도 개혁은 기상이변을 활용하여 지방 호족 및 귀족들이 대토지를 소유하며 평민들을 착취했던 구조를 일거에 해소한 무혈혁명과 다름없다.

요셉의 토지제도 개혁은 비록 토지가 각 농민 소유는 아니지만 구약이 지향하는 이상 사회 "각 사람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평안히 거하는 것"(왕상 4:25, 미 4:4, 슥 3:10)과 동일한 효과를 불러온다. 오늘날 경제 용어로 설명하면 이렇다. 토지를 사유화한 국가에서 토지 사용 대가인 지대를 토지 보유세로 환수하는 효과나 토지를 국유화한 나라에서 공공 토지 임대제를 실시하여 임대료를 환수하는 효과가 동일한 것처럼, 개인이 토지를 갖고 있으면서 20% 세금을 내는 것이나 왕정 체제하에서 왕의 소유인 토지를 20% 소작료를 내고 사용하는 것이나 농민들의 체감 효과는 동일하다.

'만민을 위한 선택'과
'복음의 공공성' 회복 요청하는 요셉

구속사 관점에서 요셉의 토지제도 개혁을 보면, 이집트에 평등한 토지제도를 만들고 7년 기근 시절 고대 근동의 모든 백성을 굶주림에서 구원한 요셉의 토지제도 개혁은,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창 28:14)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첫 번째 성취이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요셉을 선택하신 이유는 요셉을 편애하기 위함이 아니라 요셉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요셉 이야기에 담긴 함의는 "젊은 시절부터 꿈을 꾸고 비전을 가져라", "하나님을 경외하면 결국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된다"는 유사 복음이나,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통째로 버리는 식의 제국주의자 누명 씌우기가 아니다. 하나님은 요셉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자처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시대에 만민을 위한 복의 통로가 될 것을 도전하고 있다.

요셉의 토지개혁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까지 나의 현세와 내세의 안전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번영신학과 피조 세계에 정의와 평화를 구현할 책임을 방관하게 하는 성속이원론·영육이원론 도피 신학을 벗어나게 한다. 그리하여 '복음의 공공성'을 자각하고 자기희생과 헌신을 몸소 보여 주신 예수의 제자로 살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성영 / 희년함께 학술기획팀장

참고 도서
<복음의 공공성>(김근주 지음, 비아토르)
<고엘, 교회에 말 걸다>(민종기 외, 홍성사)
외부 기고는 <뉴스앤조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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