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다를 바라보아야 한다

2006. 9. 28. 11:02경영과 경제

[아침논단] 다시 바다를 바라보아야 한다

▲ 김재철 동양그룹 회장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얼마 전 ‘바다이야기’가 나라 안을 뒤흔들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 미래가 바다에 달려 있는데 엉뚱한 사행성 오락 때문에 ‘바다’라는 이름이 지닌 소중한 가치마저 훼손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래서 이제는 진짜 바다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다른 혹성들과는 다른 두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하나는 바다가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생물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물이 살고 있다는 것은 기실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 물의 97.5%가 바닷물이고, 바닷물이 증발하여 비나 눈이 되어 내림으로써 육지에 생명수를 공급하고 있다. 또 바다는 보온탱크 역할을 하여 주야간의 온도 차를 줄여주고 기후까지도 조절해 준다. 바다가 없는 혹성인 달은 온도 차가 극심하다.

바다는 모든 것을 품어주는 어머니와 같다. 그러나 바다가 항상 자애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성난 파도가 무섭게 휘몰아쳐 아무나 함부로 나가지 못했다. 오직 용기 있고 준비된 자만이 바다에 나아갔고, 그들이 세계의 많은 것을 차지했다.

그리고 바다는 엄청난 자원을 안고 있다. 오랫동안 인류에게 수산식량을 공급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세계 석유생산량의 약 30%를 바다 밑에서 캐내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지구표면의 71%를 점하고 있는 바다는 대륙을 연결하는 하이웨이 역할을 하므로 예부터 바다에 면한 지역이 먼저 발달했고 바다를 제패한 민족이 세계를 제패했다.

우리나라도 3면이 바다로서 천혜의 해양조건을 갖추었지만 다른 나라가 바다를 개척할 때에 바닷길을 막아놓고 내륙중심정책을 씀으로써 세계사를 등지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

다행히도 해방 이후 적극적인 해양 진출로 수출길을 열어 산업화에 성공했다. 해운과 원양어업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 있고 조선업(造船業)은 세계 제일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폴 케네디 교수는 18세기는 영국이 세계 제일의 조선국이었고 오늘날은 한국이 세계 제일의 조선국이라고 한국의 해양력을 치켜세웠다. 우리나라 GDP의 70%가 무역에 의존하고 있고 무역화물의 99% 물량이 바다를 통해 운반된다. 또 우리 국민이 섭취하는 단백질의 43%는 수산물에서 얻고 있다. 3면이 바다인 덕택이다.

높은 상공에서 보면 우리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남쪽으로 뻗은 부두형상이다. 더욱이 동남아와 미대륙을 왕래하는 주요 항로에 인접한 부두로서 그 가치가 뛰어나다. 일찍이 한국을 다녀간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한반도는 아시아 대륙을 여는 열쇠의 형상이라고 했다. 그만큼 좋은 바다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잘살 수 있는 길은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해양지리적 조건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태평양으로 뻗어 있는 부두형상의 우리나라는 큰 부두와 항만을 경영하듯 해야 한다. 부두와 항구는 세계의 배가 많이 들어와야 번창하듯 우리나라는 세계와 폭넓게 교역해야 발전할 수 있다. 배가 많이 오게 하려면 개방되고 편리해야 한다.

자연조건 못지않게 좋은 서비스가 뒤따라야 한다. 더욱이 우린 지하자원은 없고 인구는 수용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나라를 활짝 개방하여 자유롭게 활동케 하고 젊은이들이 개척자적 사명을 갖고 넓은 세계로 나가도록 꿈을 주고 교육을 시켜야 한다.

국내에서 평준화를 따지고 줄서기 경쟁을 하면 다같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육당 최남선은 ‘우리 민족이 바다를 잃은 후로 옹졸해지고 가난해졌다. 이 나라를 다시 세울 자 누구이냐’라고 물었다.

우리나라의 국가 전략은 육지에 앉아서만 계획할 것이 아니라 바다에서도 보고 세워야 한다. 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이 세계 지도라도 잘 봤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무역하기에 아주 좋은 바다의 십자로에 위치해 있다. 더욱이 지도를 거꾸로 보면 유라시아 대륙을 발판으로 태평양을 향해 당당히 서 있는 형국이다. 우리 국민의 기상이 엿보이는 모습이다.

바닷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국경을 넘나들고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21세기는 해양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진짜 바다 이야기를 하며 푸른 바다와 더불어 도약하는 한국의 앞날을 기원한다.

김재철 · 동원그룹 회장
입력 : 2006.09.27 19:0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