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어느 정부도 ‘기독교 주류세력’ 또는 ‘교권세력’로부터 이렇게까지 배척당한 적이 없었다. 2003년 1월부터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서울시청 앞에서 네 차례에 걸쳐 개최한 시국집회(실은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로 확산된 반미정서를 잠재우기 위해 마련된 친미 집회였다), 또 2004년 10월부터 이어진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운동, 2005년 내내 울려 펴진 (구)사학법 개정 반대 움직임에다, 2006년 (개정)사학법 재개정 캠페인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 열기까지. 보수 기독교계는 4년 내내 참여정부를 상대로 대립각을 세웠다. 표면적으로는 현 정부의 친북 좌경화를 문제 삼았다. 일부는 삭발단식을 했고 더러는 대통령을 ‘정신병자’로 묘사하며 설교 시간에 악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 정권은 기독교를 하나의 성역으로 숭상의 대상으로 접대했다. 알아서 찾아오거나 모셔와 기독교 지도자를 융숭하게 대접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과거와는 다르다.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전통적 특혜마저 거둬가고 있다. 기존 사학법을 새 것으로 바꿔 시행한 것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툭하면 ‘1300만 기독교인’, ‘순교의 각오’ 운운하며 ‘힘의 논리’를 앞세운다. ‘반정부’와 ‘친자본’이라는 양대 코드가 상통하는 보수언론은 이들에 대해 아낌없이 지원 사격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운명은 ‘개척’하는 자의 몫이라는 말에 자극받은 것일까. 교계는 아예 정당을 만들어 버렸다. 2004년 4월에 있었던 17대 총선에 한국기독당(현 기독민주복지당)을 결사한 것이다. 이는 특히 주요 교회와 기독교 단체의 지도자들이 이름을 내걸고 만든 당이었다. 따라서 출몰 자체는 교회사에 남을만한 족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1.1%라는 민망한 득표율이었다.
그 뿐 아니다. 앞으로 목사들은 권력 창출의 중심이 되겠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최근 보수적 교회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으로 선임된 이용규 목사는 “17대 대선에서 기독교계가 원하는 정책을 집대성해 후보들에게 제시하는 등 구체적으로 활동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후보시절에는 차기 대선 주자에 대한 기독교계 차원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는데, 그 기준이 독특하다. △ 대선 후보들의 애국관 △ 윤리·도덕적인 면 △ 능력 △ 기독교인 여부를 따지겠다는 것이었다. (종교다원성을 존중하는 국가에서 공적 종교기관이 자파 종교인에게 대선 과정에서 우대를 주겠다는 식의 논리. 천박하기 그지없는 발상이다.) 앞으로 한국 기독교계가 세속 권력을 창출하는데 있어 막급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이다.
바야흐로 참여정부 시대를 기점으로 기독교는 이제 현실 정치에 본격적으로 몸담기 시작한다. 이들이 행보를 자제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올해 대선이 있기 때문이다. ‘나라 걱정’하면서 ‘믿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할 것으로 보인다. (‘장로 대통령론’은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대두될 수 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각인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일 뿐이다. 일반론적 나라걱정이야 목사의 영역이다. 그러나 “어떤 후보가 이러니 이런 후보에 관심을 갖고 지지해 달라”는 것은 명백한 사전선거운동이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다. 이 안에 불법적 요소를 담아서는 안 된다.)
이들은 ‘나라가 누란의 위기이다. 지금 기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차마 ‘나라가 공산화돼 가고 있다. 이 정권이 어떻게 김정일과 결탁할지 모른다’라는 말을 하고는 싶은데, 논란이 일까봐, 목구멍 속에 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때보다 ‘사회 참여’의 기치를 높이고 있는 보수 성향의 목사들. 그들이 ‘나라 걱정’을 안하던 시점은, 불행히도 군사 독재정권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지금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논리를, 청년들이 또 민주화 인사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연임만 가능했던 대통령 자리를 세 번 하겠다며 박정희 대통령이 획책한 이른바 ‘3선 개헌’. 그 논란이 커졌던 19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당시 진보적 기독교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계열의 김재준, 함석헌, 박형규 목사는 당시 제1야당 신민당과 연계해 8월부터 반대 운동에 나섰다. 이에 김윤찬, 김준곤, 김장환, 조용기 등 보수 성향의 목사들은 그 해 9월, “기독교인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날마다 그 나라의 수반인 대통령과 그 영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며 기도함이 없는 비판은 비생산적이며 비기독교적입니다”라며 이를 반박하는 성명을 낸다. (여기서 거론된 ‘김장환’에 대해 극동방송 김장환 목사는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한기독교연합회’라는 보수 단체는 더 나아가 “개헌에 대한 박 대통령의 용단을 환영하며, 오늘과 같은 국제정세와 국내시국에서는 강력한 영도력을 지닌 지도체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권력욕’은 3선에 그치지 않고 종신 집권을 넘보는 수준으로 확대되니, 이른바 1972년 10월 유신을 통해 가시화된다. 그러나 당시 KNCC를 위시한 진보 기독교계는 이런 권력의 음모에 침묵할리 없었다. 권력으로서는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국무총리 김종필은 1974년 11월 기독실업인회에 참석해 “일부 교역자나 신자 중의 정치적 집단행동에 가담하거나 참여하라고 선동하는 것을 보면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 권위가 비롯되는 민주정부에 대해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곧 악을 향하는 자일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러자 KNCC는 “‘세상 권세에 순종하라’는 말씀은 세상 권력에 한계가 있음을 못 박은 뜻이 담겼으니 곡해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다시 대한기독교연합회는 “KNCC는 전체 기독교 교세의 3분의 1도 대변 못 하는 기관”이라며 폄하하더니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하며, 기독교의 존립이유는 정권투쟁이 아니라 인간영혼 구원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듬해 1975년 4월 김관석, 권호경 등 주요 기독교 인사가 구속되면서 독재정권의 종교 탄압 논란이 불거질 때, 대한예수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등 개신교 19개 교단장들의 모임인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는 ‘한국교회 선언문’을 내놓았다. 내용은 이랬다. “아직까지 한국의 교회는 정부로 인해 신앙이나 교회에 간섭이나 침해를 받은 일이 없다”라고 언급했다. 정권에 대한 명백한 굴종이었다.
그러나 논란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미국 민주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박정희 정권의 민주화 세력 및 기독교 진보인사 탄압에 대한 문제제기가 터져나온 것이다. 그러나 1977년 4월 한국기독교시국대책위원회는 “일부 해외 반한 인사들이 미국 등지에서 선교자유와 인권문제를 내세워 한국 실정을 비판, 지나친 선동과 비방을 하는 과격한 행동은 유감된 일로, 한국 안보에 지장을 초래케 할 것을 염려한다”고 입장을 표했다. 이 위원회의 대표는 강신명 목사로, 새문안교회 목사와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숭실대 총장을 지낸 교계 중진이다.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상이 갈수록 불거지자, 이번에는 대표적 친미 극우성향의 인사인 김장환 목사가 나섰다. (이 김장환은 극동방송 김장환 사장이다.) 그는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과 더불어 미국에 건너 가 TV 방송 등에 출연하며 유신권력을 적극 옹호했다. 그 때는 1974년. 당시 인혁당 사건 조작의혹을 최초로 외부에 알린 조지 오글 목사의 추방 직후의 일이다.
그들의 활약은 5,6공 시절 민주화와 통일, 노동정의의 목소리가 고조될 시점에도 돋보였다. ‘세상의 것을 버리고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는 설교를 귀에 닳듯 전파했다. 그 때마다 본문말씀으로 ‘애용’됐던 로마서 13장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라는 대목은 이들에겐 한마디로 ‘전가의 보도’였다. 기실 이 성경구절의 의미는 국가권력이 정당한 통치를 행사할 때 복종하라는 일반론인데, 이를 곡해해, 불의한 권력이 공격당할 때 그들을 보호하는 논리로 둔갑한 것이다.
물론 이 당시의 설교 내용을 지금도 정당화하려면 한 가지 단서가 있다. 지금도 그런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계가 사회참여를 하겠다는 의지 자체는 정당하다. 그러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시대정신이 담보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권력을 상대로 엄포와 공갈을 늘어놓는 것이 온당한 ‘사회참여’일리 없다. 이것이 ‘구국’일 가능성도 회의적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그러면서 설득력 있는 ‘해명’이 없는 기독교계의 시대관. 역사변혁의 주체로서 기독교가 점점 도태돼가는 동인이다. 어떤 식으로든 ‘기독교인 권력자’를 배출하면, 딱 잘라 ‘장로 대통령’이 배출되면 이 모든 누추한 과거가 덮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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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민 시사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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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로 대통령’ 시대를 논하기에 앞서, 지지율은 바닥이나,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대통령이 된,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 그것은, 학력이 일천하다고, 말을 함부로 한다고, 기독교 재산 강탈한다고 사사건건 문제 삼고 비난하며 모욕 주는 것이 아니다. 로마서 13장 1절에 나와 있는대로 해야 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총칼로 권력을 찬탈하고 헌법을 유린한 박정희․전두환 씨도 ‘하나님이 보내신 지도자’라며 축복한 사람들. 결과적으로 독재는 감싸고 민주정은 반대하는 내용의 ‘사회참여’. 이런 식의 ‘사회참여’가 추구하는 ‘장로 대통령’. 저간의 조합이, 같은 성경 같은 찬송가 보는 이들에 의해 이뤄지는 현실에 비극을 느낀다. 나만 그러나.
(이 글 중 각종 사료는 중앙대 사학과 장규식 교수가 쓴 ‘군사정권기 한국교회와 국가권력 : 정교유착과 과거사청산 의제를 중심으로’(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6) 논문에 제시된 것에서 상당부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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