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위기 논쟁’을 다룬 ‘정치위기 진단 진보학자 논쟁 불붙었다’ 보도(〈한겨레〉 2월9일치 4면)에 당사자 가운데 한 사람인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자신의 견해를 좀더 명료하게 다듬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해당 보도의 바탕이 된 손 교수의 ‘조희연 교수에 대한 반론글’ 전문은 인터넷매체 〈레디앙〉(www.redian.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논의 활성화를 기대합니다.
얼마 전 나는 노무현정부의 평가와 진보진영의 2007년 대선 전략과 관련한 최장집, 조희연 교수의 논쟁에 참여한 바 있다. 그리고 이에 조 교수가 재반론을 제기해 나 역시 재반론을 준비중이다. 이런 가운데 한겨레가 이 논쟁을 요약 소개했다. 전반적으로 잘 된 요약 소개이나 나의 글의 경우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어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나는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를 더 극단적으로 체험하면 대중이 진보세력에게 돌아설 것이다”라는 주장을 한 바 없다. 사실 조 교수 역시 내 주장이 마치 경제파국이 와 민중 삶이 극단적으로 피폐화되어야 혁명이 오기 때문에 파국이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낡은 파국론인 것처럼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나의 입장이 아니다.
나의 주장은 민중이 양극화를 더 극단적으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양극화가 단순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못이라고 느낄 뿐 이들의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그 결과로 민중들은 양극화에 분노하면서도 그 대안으로 민주노동당 등과 같은 반신자유주의세력이 아니라 같은 신자유주의세력인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민중운동 진영은 단순히 한나라당 집권 저지에 나설 것이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만들어 대선에서 사회적 양극화에 대항해 투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의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 신자유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수구집권 저지라는 명분 아래 연합이나 지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 정권이 넘어가더라도 이는 어쩔 수 없다. 그 경우 단기적으로는 한국 정치가 후퇴할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민중들이 한나라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사회적 양극화를 겪으면서 문제가 단순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있음을 깨달아 반신자유주의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지, 민중들이 신자유주의를 극단적으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 집권 긍정한 적 없어
양극화, 실정보다 신자유주의 탓
수구 저지만으론 해결안돼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이 있다. 최근 들어 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회적 양극화와 같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정이 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경제위기를 가져온 김영삼 정부의 잘못이라느니 세계화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느니 하는 논리로 범여권에 면죄부를 주려는 노력이 일고 있다. 급기야 양극화와 같은 참여정부의 실패는 “구조적 성장통”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성장통이라니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계속하면 성장통이 사라져 양극화가 해소될 것이라는 말인가? 결국 신자유주의와 양극화는 불가피하다는 구조적 패배주의를 유포해 여권에 면죄부를 준 뒤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포기하고 반수구 투쟁, 반한나라당 투쟁에 나서자는 신‘비판적 지지론’을 펴기 위한 전초작업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물론 김영삼 정부와 현재의 한나라당이 경제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난 10년간의 양극화의 책임을 그들에게 모두 떠넘기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추구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책임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세계화 책임론도 문제가 많다. 물론 구조적 힘은 중요하다. 그러나 두 정권의 적극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도 많은 책임이 있다. 세계화한다고 다른 나라도 우리처럼 집값이 폭등하던가? 세계화한다고 우리처럼 모두 미국과 에프티에이(FTA)를 맺으려고 난리인가? 영국·미국과 같은 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한 나라들은 우리와 마찬가지지만 스웨덴 등 북유럽의 경우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양극화는 그 이전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론 민주-반민주의 유제인 수구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이고 이번 대선은 신자유주의 심판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