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8. 19:23ㆍ정치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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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트로츠키 라는 분을, 제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론가로서 대단히 존경합니다. 혁명의 국제, 세계적 성격을 강조한 부분이라든가 자본주의적 발전의 불균형성과 복합성을 강조해 사실상 러시아나 한국과 같은 준주변부 국가들의 혁명적 가능성들을 재인식케 한 부분이라든가, 그리고 물론 1923년부터 소련 국가의 "관료화" 과정에 맞선 이론적 투쟁 등은, 아마도 마르크스주의자라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부분이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트로츠키의 유산을 배운다 하더라도 트로츠키즘을 교조화시켜 절대 진리의 자리에 올리면 좋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트로츠키의 이론 중에서는 배울 것도 많지만 우리가 속히 반성하여 폐기처분해야 할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그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소비예트라는 민주적 기관에 의해 지휘되는 무산계급의 폭력적 행위 (혁명/"무산계급 독재")를 통해 해도 무방하다고 인식했으며 본인도 국방부 장관의 자격으로 (1918-1925년간) "적색 테러" ("유산 계급 분자"들을 인질로 잡아 백군의 공격시에 무재판 총살하는 등의 행위) 등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었지만, 결국 무산계급이 대단히 취약했던 내란 중의 러시아에서 소비예트는 이미 1920-21년에 실권을 거의 잃어 유일 집권당의 주변기구화됐으며, 원래 "유산 계급의 저항"만을 파괴시켜야 했을 "체카" (비밀 경찰)과 같은 폭력 기관들이 사실상 거의 주인 행세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체카"를 통해 사회주의를 달성하겠다는 트로츠키는, 이미 1926-1927년쯤에 바로 그 "체카"의 사냥감 신세가 돼가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사냥감이 되어 독재화돼가는 공산당 중앙 위원회 정치국에 반기를 들고 나서도, 폭력에 아무리 "혁명적" 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도 결국 폭력 기구가 한 번 본격적으로 설립되어 뿌리를 내리기만 하면 "혁명"도 민주주의도 이미 다 끝났다는 사실을, 그가 끝내 인식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카우트스키가 이미 1919-1920년에 그와 레닌에게 그 이야기를 누차 했음에도 말씀입니다 (물론,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을 수수방관한 카우트스키 자신에게도 문제가 많았지만....).
폭력에 대한 트로츠키의 무비판적 태도는, 무엇보다 "병역/징병"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에서 나타났습니다. 암살당하기 직전인 1940년에, 그가 미국에서의 징병제 도입 가능성과 관련하여 그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지요.
첫째, 혁명의 군대를 준비하는 차원에서는 우리가 원칙상 노동자에게 무기 다루는 것을 가르치는 징병을 환영한다, 그런데 부르주아 국가에게 이 과정을 맡길 수 없다 ("We are absolutely in favor of compulsory military training and in the same way for conscription. Conscription? Yes. By the bourgeois state? No. We cannot entrust this work, as any other, to the state of the exploiters"),
둘째, 전쟁과 혁명의 시대의 도래를 준비하는 의미에서 노동자들이 징병을 통해 무기를 다루고 규울을 지키고 잘 싸우기를 꼭 열심히 배워야 한다 ("We do not wish to permit the bourgeoisie to drive untrained or half-trained soldiers at the last hour onto the battlefield. We demand that the state immediately provide the workers and the unemployed with the possibility of learning how to handle the rifle, the hand grenade, the machine gun, the cannon, the airplane, the submarine, and the other tools of war. (...) ")
셋째, 그래도 징병된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국가의 이념 주입까지 당하면 안되니까 차라리 노조 등이 노동자의 병역과 군사 교육을 담당해 노동자의 부대들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we must try to separate the workers from the others [in the army] by a program of education, of workers' schools, of workers' officers, devoted to the welfare of the worker army, etc." 출처: "Manifesto of the Fourth International on the Imperialist War and the Proletarian World Revolution", May 1940, - Writings of Leon Trotsky: 1939-1940, pp. 183-222).
이러한 글들을 보면,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정말로 모르겠어요. 노조에게 군사교육을 맡길 부르주아 국가를 어디 한 번 본 적이 있으세요? 그건 그냥 유토피즘이고 징병과 군사교육을 환영한다는 이야기는 바로 우리가 폐기처분해야 할 근대주의적 군사주의지요. 군에서 상급자의 발바닥을 핥는 것과 하급자에게 기합을 주는 것부터 배우고 "적"의 가슴에 총탄을 날리는 것을 당연지사, 기술적인 문제로 알게 되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가정 폭력을 일삼을 가능성이 높아도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진정한 사회주의 사회의 구성원 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군이라는 것을 노동자를 탈인간화시켜 부르주아 국가의 "싸우는 로봇"으로 "개조"하는 것인데,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가라면 징병에 대한 절대적인 반대부터 대국가, 대자본 투쟁을 시작해야 되지 않습니까? 트로츠키 시대에 속하는 분들에게 이러한 문제 의식이 아직 매우 약했지만 우리부터 이 부분을 바로 세웠으면 합니다.
삽화: 1919년인가 1920년에 나온 소비에트 정부의 프로파간다 포스터. 국방부 장관 트로츠키가 "반동, 반혁명의 독사"를 아주 멋이있게 (?) 죽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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