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은 영주들과 성직자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영주들은 무력에 기초하여 세속적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성직자들은 배타적인 성경해석 권한을 남용하여 세속권력의 무단통치에 사상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영주와 공생관계를 누렸던 기사들은 평화 시에 낮술 한 잔 걸친 후 마을로 내려와서 - 참으로 황당하게도 - 사람들의 귀나 코를 베어버리기도 했다. 장난삼아서(!)
그러나 기이하게도 코와 눈이 베인 사람들은 대개 순응하였으며 저항하지 않았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세속권력에 대한 두려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당시 성직자들은 인간이 게으르고 미천한, 가축과 같은 존재라는 인간관을 퍼뜨렸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신체에 대한 공격을 필히 대응해야 할 행위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눈.코 베이는 사람들
최근 몇 주간 우리 사회는 변양균-신정아 스캔들과 정윤재의 뇌물수수 의혹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은 만들어진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언론에 흘리는 정보와 공식서류에 기록한 내용은 그 규모와 내용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언론을 통해 변양균의 신정아 비호를 추측케 하는 수많은 정보들을 퍼뜨렸던 반면, 실제 신정아 구속영장에서는 신정아의 사문서 위조 혐의만을 적시했을 뿐이다. 사문서 위조 건은 이미 두 달 전에 문제가 되었던 사안이었으며, 그나마 법원은 실형선고가 불분명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와중에 문화·조선·중앙·동아는 신정아의 누드 사진 게재로 한 여성의 명예를 저자거리에 ‘효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법치국가에서 개인의 범죄행위에 대한 판결은 법원의 권한에 속하는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언론과 검찰이 개인을 단죄하고 사회적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다.
‘정윤재 사건’도 왜곡되고 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애시당초 정윤재가 아니다. 부산 지역에서 대규모 대출사기 행각을 벌였던 주범은 김상진이다. 김상진은 지역의 특정 토지 용도변경을 얻어내기 위해, (한나라당 소속의) 지역 허가권자들과 권력가들을 수뢰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김상진에게 1억원의 뇌물을 되돌려 주었다는 이위준 연제구청장을 비롯하여 허가결정 권한을 가진 다른 권력자들이 검찰에 소환되었다는 소식을 나는 아직 들은 바 없다. 검찰과 언론은 오로지 정윤재만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
검찰은 정윤재가 천만원 규모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였으나, 증거불충분 사유로 기각되었다. 청구된 구속영장에 제시된 증거는 김상진의 진술 뿐이었다고 한다. 검찰과 김상진이 사건 축소를 위한 모종의 협상을 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과 언론이 정윤재 엮기에 몰두하는 이면에는 부산지역의 성명불상의 권력가들이 숨어 있다. 이들이 부산시민들의 대의자로서 배임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언론과 검찰은 정윤재의 ‘코’와 ‘귀’ 뿐만 아니라 부산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를 도략질하고 있다.
국민들의 ‘코’와 ‘귀’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검찰은 작년 초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황우석을 최종적으로 횡령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나도록 혐의입증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작년 말 황우석이 횡령죄 기소 건에 대해 검찰에게 사과를 요구한 바 있었으며, 검찰은 혐의입증도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황우석 횡령’은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무고였던 것으로 보인다.
1년여 전, 게임업소 바다 사건을 소재로 언론은 정부와 청와대의 관리부실을 꽤 오랫동안 비판, 공격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구조적인 문제인 허가권과 관련하여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직후 이 사건은 신문 지상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지난 10년을 되돌아 보면, 언론이 감추려는 사건에는 대개 한나라당이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비판의 성역에 머무르면서 오로지 반대와 비난의 의사표현 밖에 하지 못하는 당으로 퇴화하였다. (한나라당의 현재의 퇴행적 의식수준은 정치학적으로 연구해 볼 만한 특이한 소재다.)
최근 언론이 숨기는 사건들은 이명박 후보의 비리 혹은 약점과 관련한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전쟁 직전의 이라크 정부에 무리하게 수주하였던 수조원의 공사대금 때문에 현대건설이 부도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과, 그의 서울시장 재직 시 서울시의 성장률이 1.1% 밖에 되지 않았던 일 외에도, 이 후보가 뚝섬의 서울시 시유지를 과도한 가격에 판매함으로써 부동산 폭등을 실질적으로 촉발시킨 인물이라는 점 등을 조선·중앙·동아는 애써 숨기고 있다.
그밖에도 이미 다른 언론사가 보도하였지만 조선·중앙·동아가 침묵하고 있는 사안들은 리스트가 길다. 15차례에 걸친 주민등록 위장전입 외에도, 그가 90년대에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과경력자라는 점. 차명의혹으로 논란이 된 도곡동 땅의 관리인이 이명박 후보의 재산관리인이라는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 후보의 BBK 관련 행각과 BBK의 부도와 초대형 주가조작 의혹. BBK와 자신이 아무 상관이 없다는 새빨간 거짓말. 이 후보가 국제금융센터 아시아본부의 여의도유치를 자신의 치적으로 챙기는 반대급부로 AIG에 국부 1조1천억 원을 유출하였다는 의혹 등등등...
AIG라는 말을 금기어로 삼고 있던 조선·중앙·동아는 추석 전 여의도에서 AIG 공사현장 근처에서 지반침하로 인해 대규모 도로매몰 사건이 발생했던 사건도 숨기고 있다. 조선·중앙·동아는 현재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조선·중앙·동아는 이러한 노골적인 편파보도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그들이 간절한 소망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 것이다. 조선·중앙·동아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권력과의 야합에 힘입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향유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권력을 향유하였던 그늘에서, 우리나라와 국민들은 국가부도 사태로 수십만의 노숙자와 수백만의 해고를 겪었다. 국가의 국민보호 의무는 헌법조문으로만 존재하였으며, 국민은 중세에 코와 귀가 베였던 농노들처럼, 정치적 기본권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성직자’, 조선·중앙·동아
21세기의 우리나라에서 조선·중앙·동아는 가히 중세 성직자의 지위를 누리며 대한민국 국민들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 중세의 성직자들이 성경 해석권한을 근거로 사익을 추구하였던 것처럼, 이 세 신문은 우리나라 사회에서 사회적 사안에 대한 최종적 해석권한을 근거로 불의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중세 시대 ‘코’와 ‘귀’를 베었던 농노들처럼 대개 순응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들이 말하는 것만을 듣고 보며, 이들이 말하지 않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않는다. 조선·중앙·동아가 권력을 누리는 원천은 이들이 비판신문으로서 정론을 개진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이 누리는 권력의 유일한 원천은 이들이 전체 여론시장의 2/3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조선·중앙·동아가 한 번 기사화한 ‘사실’은 기타 중앙일간지와 지역신문들에 의한 재생산을 통해 거의 90%의 국민들에게 단번에 전달되며, 이것은 그 후 바로잡기가 대단히 어렵다.
세계 경제 규모 11위인 국가의 국민들이 이토록 단순하고도 위험한 담론생산 구조를 수긍하고 있는 것은 특이하다. 우리나라는 외양만 번지르르할 뿐, 국민들이 실상에 있어서는 전체주의 국가를 용납하고 있는 것이다(이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코’와 ‘귀’가 베이고도 순응하는 중세의 농노와 다를 바 없다.)
조선·중앙·동아는 지난 10년 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자신들의 사익 추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두 정부를 압박하였다. 끈질기고도 야비하게.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사안에 대한 최종적 해석권한을 남용하며, 국민들에게 자기들이 보는 세상을 전하였다. 그들은 그들만의 ‘잃어버린 10년’을 일반 국민들이 ‘모두의 잃어버린 10년’으로 믿도록 거짓선전하고 있다.
이들의 선전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나는 가능성이 대단히 낮다고 본다. 1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분야와 영역이 공개되었으며, 조선·중앙·동아 이외의 다양한 정보 생산·유통 경로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선이 다가올 수록 국민들은 메이저언론의 보도를 불신하게 되며, 이 점은 이미 두 번의 대선을 통해 입증된 원칙이기도 하다.
현재의 조선·중앙·동아는 자신들의 거짓말에 취해 현실감각이 마비되었다. 자칭 1등신문 조선일보는 기자들의 조선일보 신뢰도가 3% 내외인 현실을 사세 몰락의 전주곡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조작하여 퍼뜨리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10% 내외의 응답 밖에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애써 모른 체 하고 있다.
그러나 비응답 국민들 가운데 의도적 응답회피자들을 절반 정도로 가정하더라도 50:10(%)의 구도는 25:5(%)의 구도로 수축하게 되며, 대선은 현재 응답회피자들의 결정이 판세를 가르게 될 것이다. 대선민심은 국민 개인의 견고한 정치적 지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조선·중앙·동아가 애써 보지 않으려는 대선민심은,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율 30% 내외와 (혹독한 여론몰이에도 흔들리지 않는) 참여정부 지지세력 20%의 대립구도에서 큰 변화가 없다고 보면 된다. 한나라당과 조선·중앙·동아에게는 미안하지만, 현재의 ‘대세론’은 ‘모래위의 성’인 것이다.
과거 유럽에서 중세사회가 붕괴되는 데에는 수백 년이 걸렸지만, 현대의 정보사회는 동일한 변화를 불과 며칠 내에 이끌어낼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에서 - 바로 메이저언론의 노골적인 편파보도의 부메랑 효과로 - 이 잠재력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거의 100%이다. 그리고 반민족적·반국가적 정치 언론세력 조선·중앙·동아는 대선 실패 후 회사의 존망이 경각에 달려있는 현실을 번득 깨닫게 될 것이다.
덧글:
혹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失政) 가운데 하나로 언론개혁 실패를 꼽고 있다. 그러나 합법적 수단에만 의존하여 통치하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개혁’ 과제를 국민의 선택과 권한에 속하는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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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 동양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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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번 대선 승리를 전후하여, 시민사회가 대한민국의 현재의 담론생산 구조를 혁신적으로 조정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을 희망하며 제안한다. 이 작업은 조선·중앙·동아를 현재 이들의 ‘성직자’ 지위에서 끌어내리는 데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들은 시민들의 권익을 대변할 신문을 창간하고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신문은 사회자본 갹출로 창간되고, 시민들의 구독료로 유지되어야 한다.
이 신문은 구체적으로 다음의 콘덴츠를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구질서 혁파를 위해 적어도 두 면(面) 정도를 특별면으로 배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조선·중앙·동아의 왜곡보도를 - 하루나 이틀 후 - 고발·수정하는 면, 둘째, (전국의 지역 언론들과 제휴하여) 후진적인 지방자치단체의 비리와 구태를 전국적으로 고발하는 면.
마지막으로 이 신문은 한국사회의 발전을 추동하는 담론을 진취적이며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안의 인과관계를 천착하는 심층기획 기사와 공적 토론의 기회를 상시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규모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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