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4. 19:13ㆍ건강과 여행
“예수에 대한 뭇 해석에 열려진 태도 필요” | |
‘도올 성서 이해‘ 토론회를 열면서 편파적 자료 사용·특정 관점 부각 토론 성서 무오설·경전 절대주의 비판 ‘경청’ | |
▶토론회가 열리기까지
오늘의 자리가 마련되기까지 험난한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도올 선생과의 대화자체를 불필요하게 생각했고 이런 자리를 계획한 저희 조직신학회에 차가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토론자를 모시는 일에서부터 장소사용 문제에 이르기 까지 쉬운 일은 없었습니다. 평소 반기독교적 사상가로 호가 나있던 도올 선생께서 신학을 말하고 성서를 가르치는 일 자체가 싫었던 것입니다. 신학자들 중에도 금번 출간된 두 책, “기독교 성서의 이해”와 “요한복음 강해”를 한 동양 철학자의 어설픈 작품으로 폄하했고 심지어 전통 기독교 해석을 뒤엎는 이단자로 배척한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물음은 있되 대답 없는, 역으로 박제화된 답만 있는 교회현실
그러나 본 토론회가 신문 기사화된며칠간 토론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보여준 백여 명의 기독교평신도들의 전화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는 도올 선생이 내건 신학적 화두에 흑백논리로 접근한 기성 교회의 시각에 평신도들이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물음은 있되 대답이 없는, 역으로 박제화된 답이 있어 물음 자체를 허락 않는 교회현실에 대한 이의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금번 토론회를 위해 물심양면의 격려를 준 목회자들이 있었음을 말씀드립니다.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진실이 담겨있다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목회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진실 담겨있다면 들어야
아울러 도올 선생의 기독교 및 성서이해의 한계와 문제점을 밝혀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전화를 준 뭇 평신도분들과 지적 성실성을 지닌 목회자분들의 뜻으로 본 토론회가 열릴 수 있게 된 것으로 믿고 깊이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공동체 토론을 원했던 도올 선생과 편치 않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토론자로 응해주신 두분 원로 조직신학자이신 김광식, 김경재 박사님 그리고 역사적 예수 전문 번역가인 김준우 박사님 그리고 토론자를 청하기 가장 힘들었던 분야인 구약성서학자 김은규 교수님들께도 머리숙여 고마운 마음을 표합니다.
▶지금까지의 논쟁점
한겨레 조연현 종교담담 전문기자 역할 커
주지하듯 EBS 방송을 통해 도올 선생의 “요한복음강해”가 진행되면서 그리고 그 서언격으로 집필된 “기독교성서의 이해”가 출판되면서 신문지상과 온라인상에는 도올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의견표명이 줄잇게 되었습니다. 한국 기독교 영성가를 소개하고 있는 한겨레 종교담당 전문기자인 조연현 선생의 역할이 컸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 훼손 음모론’과 ‘국외자의 지적 오만’ 반론
사회자로서 본인은 지금까지의 논쟁점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본 토론회의 입장을 천명하고자 합니다. 크게보아 종래의 비판은 목회적 차원의 감정적 비판과 이단으로 정죄한 신학적 비판으로 대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화 없는 일방적 비판이었다는 점에서 두 입장은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목회적 차원에서 교회를 훼손하는 음모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정통적 신앙노선을 손상시켜 신앙인을 더욱 혼동으로 치닫게 했다는 것입니다. 철학자의 지적 오만의 문제 역시 도올 선생에게 집중된 비판이었습니다. 이천년 지속된 전문 신학의 영역을 국외자가 함부로 칩입했다는 것이지요.
구약성서 부정적 이해가 교회 자극 기폭제
신학적 차원의 비판은 도올의 기독교 이해에 대한 이단 정죄로 이어져 있습니다. 교회 제도권 안에 머물러 있는 학자였다면 출교처분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천년 기독교 전통을 뒤짚어 본 도올의 시각은 관용을 중시하는 카톨릭 교회로부터도 상당한 저항을 받았습니다. 구약성서의 부정적 이해가 기독교교회를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신구약을 예언과 성취의 구도로 읽는 기존시각과 복음과 믿음을 율법적으로 해석해온 목회적 현실에서 구약무용론이 마르시오니즘과 동일시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강해, 편협함 넘어 이단으로 평가
예언자적 시각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습니다. 이런 비판은 요한복음을 헬라적으로 이해하는 도올의 입장과 잇대어 있습니다. 도올 선생은 육화된 로고스 예수를 인간 모두를 신으로 부르는 위대한 영성의 시발점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는 인간과 신의 하나 됨을 목적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도올 선생은 이것을 영지주의와 싸우면서도 그와 닮아간 요한복음의 본질로 여기나 성서학자들은 이를 구약성서로부터 기독교가 탈맥락화된 결과라고 거부합니다. 무엇보다 정경화 과정 자체에 대한 도올 선생의 비판적 이해는 신학자만의 학문세계를 세간에 불편한 진실로서 알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경들과 최근 발견된 나그함마디 문서 속에서 초기 기독교 해석의 다양한 모습(열려진 정경)을 보며 이후 폐쇄적 정경화 과정을 로마의 정치적 맥락과 연계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정통 기독교 신학의 시원으로 알려진 니케아 칼케돈 신조를 아리우스적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뒤집는 도올선생의 입장은 요한복음강해와 맥을 같이하나 정통 교리신학자들의 눈에 편협함을 넘어 이단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영지주의에 대한 강한 긍정도 도마 올라
하지만 선생은 사적 예수 연구 결과물을 상당히 수용하면서도 역사적 예수 상에 만족치 않고 신앙의 그리스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신을 정통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성서 자체가 역사적 문서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서슴치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예수에 대한 탐구가 중도하차된 것에 대한 학자적 불만도 적지 않게 토로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다른 차원의 비판입니다 만, 전체적으로 볼 때 영지주의 세계관에 대한 강한 긍정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토론에 들어가며
시간과 지면의 제약으로 간략하게나마 회자되고 있는 논쟁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세간의 논의는 이단 시비로까지 확장되어 선한 의도로 본 논쟁에 참여하고픈 사람들의 의지를 묶어 놓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균형잡힌 시각들이 생겨나고 있긴 하나 여전히 부족한 실상입니다. 이에 본 토론회는 도올 선생이 제시한 ‘불편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은 의도로 풀어가고자 합니다. 먼저는 본 토론회의 근본 의도를 말씀드리고 이어 토론회의 진행과정을 간략히 언급하겠습니다.
도올 선생의 진리탐구 진정성과 진면목 인정
토론자들의 준비모임에서 의견을 나눴듯이 우리는 요한복음 강해를 대중적 매체를 통해 전달한 도올 선생의 수고와 진정성을 인정합니다. 물론 신앙적 동기에서는 아니었으나 기독교 서구의 텍스트 중에서 성서, 그중에서 요한복음을 택하여 그 의미와 주요성을 풀어낸 것은 분명 기독교를 흔들기 위함이 아니라 진리탐구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 책 속에서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물론 그와 관계하려는 실존적 계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한신대학교 1학년 시절 청년부 헌신예배 설교자로 기록된 옛 주보를 지금껏 간직한 사실과 그것을 책에 삽입한 것을 보면서 뭇 사상을 넘나들었으나 그가 다시 돌아올 지점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한신대 1학년 시절 헌신예배 설교자 기록 주보 간직
물론 그가 돌아온다면 오늘의 가시적 기독교는 아니겠지요. 요한적으로 이해된 기독교, 그것은 ‘플레타르키아(민본)’의 종교, 곧 동아시아적으로 이해된 신앙의 그리스도는 아닐까 생각합니다. 본 주제는 기독교 복음의 토착화 과제로 이어져도 좋을 듯싶습니다. 여하튼 우리는 본 책속에서 저자 가슴속에 남아있는 엄마, 그가 지닌 신앙적 에토스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고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에 대한 그의 말걸음은 폄하의 대상이 아니라 진지한 응답을 필요로 합니다.
신학 학문세계와 목회 현장 괴리 너무 큰 것은 불행
또한 두 책속에 언급된 무수한 신학적 논의들은 교회 현장에서는 낯선 이론이겠으나 신학자들 세계 안에서는 한번쯤 격렬하게 토의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 토론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습니다. 신학자들의 학문 세계와 목회현장간의 괴리가 너무 큰 것은 서로를 위해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신학은 교회를 섬기는 학문이면서도 교회의 방향을 이끌 책임이 있는 학문입니다. 물론 신학자들 역시도 저마다 자신의 관점을 갖고 특정 입장을 대변하기에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누구라도 비판과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홀로 완전한 사상과 이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점에서 도올 선생의 편파적 자료사용 내지 특정 관점의 과다 부각 등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토론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서·철학·철학·동서양 아우르는 기독교 이해 ‘추종 불허’
하지만 누군가 지적했듯이 성서 무오설과 경전 절대주의에 입각한 한국 교회 및 목회적 현실에 대한 선생의 비판은 신학자가 해야 될 몫이었음을 숙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자는 여전히 도올 선생의 신학적 아마츄어리즘에 대해 조소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부분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성서와 역사 그리고 철학 나아가 동서양을 아우르며 기독교를 이해하는 도올 선생의 사상적 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도 눈에 띠지 않습니다. 도올 선생과 같이 동서사상과 언어에 능통한 평신도 기독교 사상가가 나온 것을 너무 불편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의 생각과 사상 역시 일리(一理)를 지녔다고 볼 만한 아량과 관용은 한국 교회현실에서 아직 요원한 일인지요?
그 때문에 교회가 휘둘린다면 되레 우리 교회 바탕 되물어야
제 신학적 이론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나 이단 시비는 성숙한 기독교의 모습은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 없이는 신학이 불가능하지만 예수에 대한 뭇 해석에 대해서는 열려진 태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제 그가 던진 ‘불편한 진실’은 논의될 주제이지 피해 갈 주제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한국 교회가 휘둘린다면 오히려 우리 교회가 반석위에 터 닦여진 것인가를 되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기독교 신학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조직신학자들의 모임에서 신학 대토론회가 논의되고 준비되어 오늘의 자리를 갖게 된 것을 조직신학회 회장으로서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뭘 토론할까
이런 의도 하에 본 토론회는 다음의 주제를 따라 적당한 시간을 할당하여 3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신구약성서 관계에 대한 차이나 입장 조율
첫째는 도올 선생으로부터 두 책을 쓰신 동기와 계기, 신학적 문제의식,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에 대한 말씀을 청해 듣겠습니다. 이 글과 함께 자료집에 담겨 있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네 분의 토론자 분들을 중심으로 신구약성서 관계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통해 도올 선생과의 차이 내지는 입장의 조율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구약 무용론을 주장한 도올 선생의 신학적 입장의 정당성과 그에 대한 반론이 제시될 수 있겠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부정적 시각 검토
셋째로는 신약 성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에 대한 논의를 진행시킬 것입니다. 도올 식의 기독교 성서 이해에 대한 토론자들의 찬반 토론이 준비될 예정입니다. 이에 더하여 정경화 과정에 대한 이해 역시 비판적 대화의 주제로 부각될 것입니다. 넷째로 성서중에서 요한복음을 중시한 도올 선생의 의도를 듣고 요한복음을 헬레니즘의 시각에서 보는 신학적(탈구약적) 의중의 편파성 여부를 집중 토론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과 영지주의와의 관계 역시 중요한 토론거리이며 로고스 기독론의 빛에서 동양적 신학, 토착화 신학의 가능성까지도 생각해 보고 싶은 자리입니다. 아울러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도올 선생의 부정적 시각 역시 토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설명하는 탈정통적 입장 평가
마지막으로 기독교 정통주의 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아타나시우스 대신 아리우스 주의를 선호하며 그 빛에서 기독교를 재구성하는 도올 선생의 입장에 대한 토론자들의 평가를 듣고자 합니다. 기독론과 삼위일체론에 대한 교리적 중요성을 인정하되 로고스 기독론에 근거 이를 전혀 다른 맥락에서 설명하는 도올 선생의 탈정통적 입장에 대한 긍/부정적 평가가 주어질 것입니다.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신(靈)중심적 기독교 신학이 말해지는 지금 아타나시우스/아리우스 논쟁의 의미를 현대적 차원에서 재검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끝으로 취재하는 언론에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의 토론회를 도발적 언어를 사용하여 흥미위주로 기사화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 조직신학회가 한국 교회를 향한 도올 선생의 진정성을 보았기에 그리고 선생께서 참된 토론의 장을 원하였기에 원로 신학자들이 기꺼이 참여하신 장인 것을 숙지하셔서 오늘의 토론회가 한국 교회 앞날에 유익함이 되는 자리였음을 널리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멀리 가까이에서 이런 바램을 갖고 이 자리를 찾아주신 여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계획된 주제 모두가 정해진 시간 내 토론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본 모임을 진행시켜 보겠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 정배 교수(사회·한국 조직신학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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