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에세이] 그해 6월의 거리
2008. 6. 11. 10:43ㆍ정치와 사회
[영상에세이] 그해 6월의 거리
역사 속으로 2008/06/09 01:43 굴렁쇠이 함성에 끝이 없다. 6월의 거리는 여전히 뜨겁다. 밥상의 평화를 깬 건 이명박 정부다. 흔들리지 말자던 그 자신부터 허둥대고 있다. 닻을 올리자마자 제대로 위기에 빠졌다.
이 함성은 이유가 있다. 어쩌다가 포퓰리즘의 덫에 빠졌다고 수구의 잣대를 들이댈 일이 아니다. 왜 국민이 뿔났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이명박 정부가 살길이다. 지도자의 오만과 편견과 무지가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을 분노의 광장으로 이끌었다. 굴욕에 가까운 친미·친일 사대주의 외교에도 국민의 울분이 맺혀 있다. 이것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촛불의 배후를 캐는 데에만 열중해 있다. 집회참가자들을 "사탄의 무리"(추부길 청와대 비서관)라 매도하는가 하면, 촛불 배후가 한총련 등 친북좌파세력이란 취지의 망언도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오마이뉴스 보도) 그게 사실이라면 그의 시국관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비겁하다. 나는 배후가 누구인지 모른다. 주동자는 안다. 청와대를 담당하는 관할 경찰서가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과 그 충신들을 먼저 잡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5월의 강을 건너 6월의 바다를 만났지만, 이 뜨거운 '촛불'이 어떻게, 언제까지 대한민국을 붉은 함성으로 달구어질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단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국민들의 격앙된 감정인지, 아니면 이보다 진전된 독재정권 퇴진운동이거나 국민주권 쟁취투쟁인지 넘겨짚을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다시 내 사랑 한반도에 아름다운 투혼이 평화롭게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붙잡히면 끌려가고, 때리면 맞고, 짓밟으면 몸부림치며 6월의 거리를 '비폭력 시위'로 메우고 있다. 투쟁지도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조직적이지도 않다. 지난 역사에서 실천했던 무장도, 준무장도 없는 말 그대로 촛불의 몸부림이요, 촛불의 함성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이 촛불의 행렬이 어디까지인지, 언제까지인지 알 수 없다.
환장한 집단은 멍청한 대통령과 공안당국이다. 그렇다고 촛불 하나 든 것이 전부인 군중을 지난번처럼 무자비하게 물대포 진압으로 해산시킬 수도 없다. 비폭력이 무서울 때가 있는 것이다. 일요일(8일) 새벽 집회 참가자 가운데 몇 명이 각목과 쇠파이프를 들었다고 무력진압할 기회를 얻은 것인냥 촐싹거리는 태도도 달갑지 않다. 그렇더라도 '부드러운' 이 촛불집회의 본질을 훼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물대포로든, 소화기로든 타오르는 촛불은 끄지 못한다. 그렇게 6월정신은 살아있다!
장엄한 한반도의 6월, 나는 거리의 촛불앞에 소망한다. 더 이상 조국의 등허리가 휘어지지 않도록 이 촛불의 함성이 꺼지지 않고 더욱 활화산으로 타오르길 기대한다. 쇠고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굴욕적인 한미FTA 사슬을 끊을 때까지, 신자유주의 벽을 넘을 때까지, 한반도 대운화사업이 백지화될 때까지, 이 나라가 더 이상 짓밟히지 않고 아름다운 산하가 될 때까지. 그리고 이 함성이 아직도 장기투쟁사업장에서 고단한 싸움을 벌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연대의 불길이 되었으면 한다. 밥상의 평화는 그때 비로소 오는 것이다.
87년 6월 영상을 편집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6월항쟁이 끝난 이후 지나온 20년의 시간들, 보람보다는 회한의 그늘이 더 짙다. 남아있다면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그 어떤 그리움 같은 것들이다.
기억하고 싶었다. 모아둔 영상자료를 다시 보았다. 6월민주항쟁 10주년사업 범국민추진위원회의 <솔아! 푸르른 솔아>(41분)와 MBC프로덕션의 <6월민주항쟁>(16분 47초)이다. 가슴이 떨리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날의 감동이 여전하다. 노래는 <유월의 노래>와 <선언2>를 골랐다. 6월항쟁의 한복판에 있었다면 이 노래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해 6월 전국에 울려퍼진 수백만 명의 함성소리가 이 노래에 그대로 실려오는 듯하다.
그해 6월의 거리는
승리다
민주주의와
노동해방과
조국통일과
반전평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87년 6월항쟁은
그래서
승리다
되살아 오는 이 6월에 꼭 쓰고 싶었던 글이다. 그날의 함성, 그날의 투쟁이 21년이 지나도 아름답게 기억되고, 또 오늘 내 삶의 징표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조국이 우리에게 준 특별한 선물일 것이다. 그해 6월도, 오늘 6월도 세월이 가면 또 '뜨거웠던 여름'으로 또렷이 기억되겠지. 아니, 기억해야겠지. /굴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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