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마르크스,그람시

2008. 7. 28. 23:10정치와 사회

"마르크스가 19세기 사상가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의 사상은 한계를 지니면서 한계를 지니고 있지 않다.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복잡하고 다원화된 현대사회를 분석하는 도구로서 마르크스의 사회철학을 무비판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며, 한계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의 사상은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시대의 눈으로 마르크스를 볼 때 그는 그의 시대에 충실하였다는 뜻이다."

  민주시민사회론을 다룸에 있어서 루소, 홉스, 로크는 계몽사상을 통해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 대한 사상들을 펼치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는 그들은 공통적으로 시민사회의 문제들을 정치적 측면에서 해결하고자 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근대 국가의 성립 원리를 시장경제의 형성과정에서 드러난 분열과 갈등을 통제하거나 조정하는 데에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부터 다루게 될 헤겔, 마르크스, 그람시 역시 큰 흐름에서 본다면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은 시민사회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헤겔은 시민사회론에 있어서 역사적 범주로 보았다는 것이 앞서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이다.  헤겔이 근대 시민사회의 모순에 대한 대안을 정치적 범주에서 찾았다면 마르크스는 경제적 범주 속에서 해방의 논리를 찾는다. 한편, 마르크스의 경제적 노선에 비판적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 사상가 중 그람시를 들 수 있는데, 그람시는 역사적 블록, 헤게모니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사회의 구조적 연관관계를 새롭게 해명하고자 하였다.

 

I. 헤겔
  시민사회론에 있어서 헤겔이 차지하는 위치는 바로 근대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 즉 시민사회를 역사적 범주로 인식한 데에 있다. 그의 이론이 현대 시민사회론의 구성에 있어서 이론적 밑바탕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점이다. 헤겔 시민사회론은 일차적으로 인간을 욕망 존재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규정을 바탕으로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문제삼는 것의 핵심은 어떻게 사적 욕망을 추구하는 개인이 상호결합하여 사회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경제적 범주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여러 이론에 대한 비판을 수행함과 아울러 그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 그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 또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형성하는 근본원리를 노동, 소유 등의 사회적 양식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결국 우리가 헤겔 시민사회론에서 고찰해야 할 핵심적인 문제는 경제적 범주에서 출발하는 그의 시민사회에 대한 분석이 어떻게 정치적 범주 속에서 해소 혹은 극복되는가 하는 점이다.
  헤겔 이전의 시민사상은 대체로 시민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해결책을 정치적 측면에서 찾았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비판을 자신의 이론적 전개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헤겔은 같은 맥락에서 문제의식을 갖는다. 이 점은 그의 비판적 핵심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통하여 쉽게 드러나고 있다. 비판의 핵심은 개인으로부터 소외된 권력으로서 사회적 제도는 '맹목적인 전체성'일 따름이며, 이러한 제도 아래에서는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해소 지양을 통한 자유의 실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헤겔도 동일한 문제의식의 선상에서 근대적 역사의 방향성을 설정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의 시민사회론의 핵심이다.
  헤겔에 의하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개인은 인정을 향한 자신의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시민사회의 성원으로서 인정되면서 동시에 이제 국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인간은 자신의 현실적 삶에 적합한 인륜적 의식을 획득해 간다. 헤겔에 있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핵심적 사항이 바로 이 점이다. 개인은 국민으로서 존재할 대 비로소 진정으로 또 현실적으로 보편적인 존재가 된다. 다름 면에서 보면 개인으로 하여금 이러한 현실성과 보편적으로 인정된 가치를 지니게 하는 것이 국가이므로, 개인의 행위는 국가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국가에 의한 것이고, 그것은 정치적 행위이자 보편적 행위이다. 이러한 원리를 시민사회로부터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 비추어 말한다면, 개인은 동일한 신분을 가진 타인과의 유대를 통해 단체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그는 보편자로서 진정한 개인이 되는가 하면, 보편자에 대한 보편자라는 그 자신의 관계를 정치적 조직체로 승화시킨다. 그러므로 헤겔에 있어서 분열된 근대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은 시민사회를 통하여 분화된 다양한 이익집단을 정치 구조 속에서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런것들을 통해서 헤겔이 통찰한 시민사회의 역사성과 그것을 토대로 제시되는 근대의 방향성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II. 마르크스
  마르크스에 있어서 헤겔의 정치사상은 시민사회론에서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마르크스가 설정한 문제의식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즉, 인륜의 타락상을 드러내는 시민사회의 대립이 국가라는 보편성의 담지자에 의해서 해소될 수 있다면 그 보편성의 정체가 명확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어떤 특수이익의 집합에 지나지 않거나 그것을 호도하고 있음이 판명된다면, 헤겔 사상체계는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이 이러하다면 헤겔의 시민사회론에 대한 그의 비판은 곧 시민사회--국가라는 이원성이 지닌 여러 모순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헤겔이 말하는 국가는 시민사회의 물질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환상적인 공동체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에 대한 환상의 확대는 시민사회의 물질적 관계의 고도화에 비례한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비판하는 근거는 한마디로 여러가지 특수이익의 대립과 지배적 이익의 옹호가 그 배후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자유와 자율적인 개인의 실현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성립한다는 점에서는 마르크스도 헤겔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만, 그는 시민사회의 또 다른 측면인 소외와 억압의 계기를 중심문제로서 파악하고 있다. 말하자면 시민사회는 해방과 억압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시민사회의 본질적 구조를 자유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억압과 소외의 측면에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헤겔과 마르크스 시민사회론의 근본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헤겔은 한마디로 왜곡된 현실을 합리화한 것이다. 헤겔은 경험적 현실 속에서 국가를 형성하고 조건짓는 사회적 역사적 세력들로부터 국가를 추상하여 하나의 실체로 구성한다. 마르크스가 볼 때, 헤겔의 시민사회론에서 도달되는 궁극적인 귀결, 즉 정치적 해방을 통해 실현되는 자유는 진정한 의미의 현실적 자유가 아니다. 마르크스에 의하며, 헤겔이 오류를 범한 근본적인 원인은 시민사회에 있어서 개인의 위치와 개인 상호간의 사회적 관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개인에 관한 헤겔의 원자론적 모델은 잘못 된 것이다. 인간은 그 사회적 본질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다. 헤겔의 이러한 잘못된 이원화로 말미암아 오히려 시민사회는 사적 개인의 영역과 국가라는 보편성의영역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인간 소외는 삶을 이렇듯 두 영역으로 분열시킨 결과로서 생겨난다. 그리하여 헤겔이 말하는 정치영역은 내용 없는 형식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헤겔이 파악한 근대국가란 현실사회로부터 소외된 정치적 요소를 신격화한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결론 속에는 근대 시민사회에 대한 그의 폭넓은 통찰이 담겨 있다. 이것이 마르크스에 있어서 시민사회론의 핵심이 된다.
  한 인간의 사적 지위는 그의 소유관계에 의해 결정되므로, 이러한 소유관계는 헤겔의 전제에서와는 달리 더 이상 사적인 관계가 아니가. 오히려 사유재산의 영역이라고 해야 할 시민사회가 정치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정치는 소유관계를 합리화하는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헤겔이 말하는 국가는 정반대의 것이 된다. 또한 관료를 보편계급으로 본 헤겔의 전제는 도착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보편계급으로서 관료는 특정한 역사 현상을 자기충족적인 초역사적 규범으로 실체화시킨 것이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현실적인 보편계급은 오히려 프롤레타리아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는 특수한 계급이 아니다. 이 계급이 시민사회에 속해 있는 계급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시민사회의 계급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모든 계급의 해체로서의 계급이다. 이 계급이 받는 고통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보편성을 띠기 마련이며 그가 당하는 수난도 일반적 수난이다. 그러므로 근대 시민사회의 모순과 갈등은 특수한 해결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르크스에 있어서 시민사회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해소 극복되는 구심점이 어디에 있는가 살펴보면, 사회를 변혁시킬 계급은 어떤 특수한 하나의 계급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대표'로서의 계급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은 곧 인류의 해방이며 혹은 인간성의 해방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헤겔이 근대 시민사회의 모순에 대한 대안을 정치적 범주 속에서 찾았다면, 마르크스는 경제적 범주 속에서 해방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예속은 노동자의 생산에 대한 관계에 내포되어 있으며, 모든 유형의 예속 상태는 다만 이 관계의 변형이나 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고전 정치경제학적 범주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철저히 한 것도 바로 이러한 그의 관점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시민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계급이론으로 구체화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 근거를 두고 있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대립되는 입장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헤겔이 시민사회의 역사적 위치를 긍정적인 면에서 본 반면, 마르크스는 그 부정적인 측면을 보고 있다는 거이다. 이렇듯 대립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두 사람이 모두 시민사회를 역사적 범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은 간과해서는 안되는 사실이다. 마르크스도 욕망의 체계를 시민사회의 단초적 형태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그것이 담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변천의 내용의 연관을 따져보아야 한다. 이러한 연관에서 본다면, 헤겔의 시민사회론은 시대의 전환이라는 감격적인 역사적 상황에 침투하여 여명처럼 열리는 찬란한 위치를 차지한 고대로부터 이어져오는 정치사상의 맥락에서 시대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성숙해가는 시민사회의 경제적 메커니즘 속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갈등을 경험한 마르크스의 시민사회론은 자본주의적 관계가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음을 간파하고, 경제적 관계를 바탕으로 시민사회의 소외구조에 대한 대안을 마련한 것이다. 헤겔과 마르크스 이후 전개되는 시민사회론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대안이 현실적일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III. 그람시
  마르크스 이후 마르크스의 입장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마련하려고 한 대표적 사상가는 그람시이다. 마르크스가 헤겔의 정치적 노선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마련했다면, 그람시는 다시 마르크스의 경제적 노선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서구에서 실패한 원인을 노동계급과 객관적 조건의 미성숙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즉 그 실패는 사회주의적 변형을 위한 객관적 조건의 성숙에 대한 주체적 자각의 결여에서 빚어진 필연적 결과였다. 그런데도 카우츠키, 부하린 등 그 당시 제 2인터네셔널의 많은 사상가들은 증대하는 노동자계급의 수적인 힘이 결국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자동적 이행을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만을 반복해왔다. 이것은 마르크스에 대한 전형적인 경험론적이고 결정론적인 해석에 입각한 주장이다. 그람시가 반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마르크스 해석이다.
  그람시에 따르면, 이러한 편협한 이론적 틀은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대중의 정치적 해방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정치적 수동성 조장시킨 원인이 된다. 그리하여 혁명적 실천에서 유리된 마르크스주의는 점점 더 추상적으로 되고, 정치적 헤게모니 획득을 위한 구체저인 정치전략을 고취하는 데 있어 비효과적인 것으로 되고 만다. 이러한 독특한 문제의식 때문에 그람시는 사회의 구조적인 연관관계와 서구사회의 특수성에 대한 상세한 탐구를 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의 구조적인 연관관계를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로 설명한다. 이것의 전형적인 정식화는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의 서문에서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일반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지적 생활과정을 제약한다"고 서술하고 있는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람시는 이것이 토대와 상부구조의 분리를 전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양자의 분리는 경제주의나 이데올로기주의의 오류로 이끌어가게 된다. 마르크스의 경제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모든 정치적 행동은 토대에 의해 직접적으로 결정되며,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모든 변화는 토대의 직접적인 표현으로서 제시되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람시에게 있어서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해석을 배제하면서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함으로써 사회의 구조적 연관관계를 해명하는 일이다. 이때 그람시는 '역사적 블록'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사용하게 된다.
  그람시에 따르면, 토대와 상부구조는 하나의 역사적 블록을 형성한다. 역사적 블록은 한편으로는 특수한 구조, 사회적 힘의 총체와 생산세계, 다른 한편으로는 광범위한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영역 사이의 유기적 연관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이나 상황이다. 상부구조의 복잡하고 모순적이며 조화롭지 못한 총체는 생산의 사회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역사적 블록의 접합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는 유기적이고 변증법적이다.
  토대는 필연성과 객관성의 전체 세계를 포함한다. 토대는 인간활동의 객관적 조건이고 인간의 정치적 활동의 출발점이며, 해결되어야 할 모든 모순의 진원지이다. 모든 상부구조적인 활동들은 객관적인 토대에 기초할 때에만 성공적일 수 있다. 그러나 토대는 기계적으로 상부구조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토대의 작용은 상부구조의 수준에서 조직되고 의식되지 않는다면, 그 효과를 나타낼 수 없다. 상부구조는 집단적 의지의 의식적 실현이며 의식적 실천의 세계이다. 이런 점에서는 "토대는 인간을 압도하고 인간을 자신에게 동화시키고 인간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외적인 힘이기르 멈춘다. 그것은 자유의 수단, 새로운 윤리 정치적인 형태와 새로운 이니셔티브의 원천을 창조하기 위한 도구로 변형된다."
  새로운 역사와 헤게모니의 실현은 토대로부터 상부구조로의 이행을 가리킨다. 그람시도 혁명의 힘이 사회의 경제적 구조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객관적 조건은 수십 년 동안에 성숙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상부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지금까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받아들였던 것보다 훨씬 더 자율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람시가 사회주의적 변혁의 열쇠를 발견한 것은 상부구조에서였다. 그람시의 상부구조론은 헤게모니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헤게모니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토대와 상부구조의 변증법적 통일을 함축하고 있다.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한마디로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은 발전된 서구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 이루어질 수 있는 변혁의 전망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헤게모니 개념은 현실적인 위기에 대해 대처 또는 극복할 능력을 상실한 서구 자본주의의 실상을 분석하고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시민사회론은 바로 이러한 헤게모니가 어떻게 형성되며 전개되는가에 대한 이론적 체계이다. 그의 이러한 시민사회의 위상 설정은 기존 시민사회론의 틀을 벗어난 것이며, 이것은 그가 시민사회의 정치학을 강조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주의를 비판하느 동시에 자본주의의 반정치적 시민사회론을 극복하는 독창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람시의 시민사회론에서 이후 현대 시민사회론의 단초가 되는 것은, 시민사회가 부르조아지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헤게모니 형서의 장인 동시에 헤게모니 형성을 둘러싸고 대안적 전략이 경쟁하는 장이기도 하다는 이중적 관점이다. 즉 현대 시민사회론은 시민사회가 국가 외부에 위치한 공적 영역으로서 조직과 제도의 민주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준다는 시민사회의 긍정적인 측면을 그람시로부터 수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민사회의 정치는 개방적인 것이며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행위의 실현 가능성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

 

글을 맺으며
  앞의 글들은 부산대학교 하일민교수가 저술한 {시민사회의 철학}(한길사, 1995)의 맺음말에서 전문 발췌한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 책이 없었다면, 맺음말이 없었다면 이보고서는 작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민사회라는 주제로 헤겔, 마르크스, 그람시를 다룬 책을 발견했다는 즐거움도 잠시,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골치거리가 생긴것이다. 특히 헤겔의 사상의 경우 내용도 어려웠고, 저자의 분석에 있어서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마르크스와 그람시의 경우 수업을 통한 사전지식이 조금 있어서인지, 아니면 용어에 있어서 익숙함 때문인지 덜 고생했지만 역시 요약이라는 것은 나의 한계 이상의 일이었던 것이고, 뻔뻔스럽게 맺음말을 그대로 옮겨 적기로 했던 것이다.
  '민주시민사회론'이라는 과목을 수강신청하면서 무엇에 대해서 배우는 과목인지 무척 궁금하였다. 민주주의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배경--시민혁명과 같은 것--을 배우는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시민에게 있어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배우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수업시간에 다루는 것은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사상적 배경이었다. 이것은 철학이라는 것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나에게 있어서는 넘기 어려운 산들이 바로 앞에 놓여 있는 것과 똑같은 형세이었다.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민주시민사회론'을 배우면서 헤겔, 마르크스, 그람시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정작 그 질문을 받기까지 민주주의를 논함에 있어서 무엇때문에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를 대변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배우는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로크나 루소도 있을텐데, 현대에 있어서는 민주주의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많은 학자들도 있을텐데 왜 그들에 대해서 배우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전의 나의 지식에 들어있는 '민주주의'의 배경을 살펴보면, 맞는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계몽주의 이래로 프랑스 혁명 전후의 역사적 배경으로 돌아간다. 그 당시에 있어서 자칭 민주주의자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의 타도의 대상은 국왕으로 표상되는 봉건제도였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구별은 두지 않았다. 그들은 연합하여 혁명들을 수행하였고, 사상에 따라 흩어지기고 하고 필요에 따라 연합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고전적인 공산주의자들 이후 공산주의에 대해 이론을 정립한 것은 마르크스이다. 그 당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호칭에 있어서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쓰지 않고 민주주의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보면, 현재 구분되고 있는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모두가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인본주의의 뿌리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에 있어서도 사회학자들의 삼분의 일이 마르크스라는 사상가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시대 구분에 있어서, 생활양식의 분류에 있어서, 계급이나 계층을 설명함에 있어서 아직 마르크스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를 분석함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더욱이 마르크스의 이론은 잘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다양화된 생활양식에 있어서, 산업사회가 아닌 정보사회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에 의한 보편적인 시민사회의 분석은 불가능해졌다. 시민사회 하나하나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가 필요로 한 때이다. 이에 따라 마르크스를 포기하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경제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마르크스를 포기하고 다원주의로 표현되는 방법을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느 방법이 옳은 것일까 생각하기에 앞서, 다원주의를 논함에 있어 그람시라는 사상가가 있었다는 사실은 반가운 이야기이다. 그로부터 시작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들이 마르크스에서 벗어나지 않는, 또 다른 방법으로 현실 자본주의의 병폐를 폭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현상을 분석함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를 그대로 적용함에 있어서 부작용이 있음을 지난 몇 년의 경험에 의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유럽의 사상들--옛것이나 현대의 사상들--을 그대로 적용함에 있어서 유사한 면도 있지만, 결정적인 부분에 있어서 적용시키기 힘든 경우도 살펴볼 수 있다.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이러한 부분들에 대한 토론을 막는 지배세력의 도구로 사용되지만, 현재의 우리모습에 대한 연구가 다방면에 있어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사회학자들에게 주어진 과제일 뿐 아니라, 보통 시민들에게 있어서도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