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방어도 솔직함도 지나치면 치명타

2008. 8. 31. 02:47정치와 사회

자기 방어도 솔직함도 지나치면 치명타

관전 포인트 <3>-후보 수락 연설

김환영 | 제76호 | 20080823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우리 당이 앞으로 할 일은 얼빠진 전통을 깨는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1932)
“내가 말하는 뉴 프런티어란 약속이 아니라 도전이다.” 존 F 케네디(1960)
전당대회는 ‘말의 향연’이다. 수십 명이 찬조 연설을 한다. 그러나 전당대회의 주인공인 대선 후보의 수락 연설이 단연 하이라이트다. 황금 같은 기회를 살려 승세를 굳히고, 열세를 뒤집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다. 전당대회 역사에서 드러난 후보 수락 연설의 메커니즘을 간추렸다.▶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1976년 공화당 후보가 된 제럴드 포드는 48년 이후 모든 후보 수락 연설을 연구했다. 전당대회 직전까지 연습했다. 포드는 당시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에게 30%포인트 뒤지고 있었다. 그는 훌륭한 연설을 했고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라는 타임지의 평가를 받았다. 그는 카터를 무섭게 따라잡기 시작해 결국 2%포인트 차이로 졌다. 연설의 질에 따라 ‘아름다운 패자’가 될 수 있다.

▶국민이 스킨십을 느끼게 하라 48년 해리 트루먼 민주당 후보는 준비된 원고가 아니라 메모만 가지고 연설했다. 그는 솔직하고 친근한 지도자로 국민에게 각인됐고 재선에 성공했다. 76년 지미 카터 민주당 후보는 “지미 카터라고 합니다. 대선에 출마했습니다”라는 자기소개로 연설을 시작했다. 무명 정치인이던 자신을 친근하게 알리기 위해 당내 경선 초반부터 사용한 표현이었다. 반응이 좋자 수락 연설에도 활용했다.

“우리는 약속만 거창하고 실천은 없는 정치가 지긋지긋하다. 나는 가난ㆍ차별ㆍ전쟁을 없애겠다고 약속하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행동을 약속한다.” 리처드 닉슨(1968)
▶상대편을 은근히 공격한다 네거티브 선거전은 찬조 연설자들에게 맡긴다. 후보가 상대편을 실명으로 거론하는 것은 금물이다. 찬조 연설자로 나선 후보의 부인도 노골적으로 상대편을 몰아붙이지 않는 게 관례다. 92년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다음과 같은 말로 후보직을 수락했다. “나는 일하는 모든 사람, 아이를 키우는 부모, 반칙하지 않는 사람들, 잊혀진 중산층을 대표해 후보직을 수락합니다.” 명문가 출신인 아버지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를 겨냥한 말이었다.

▶말꼬리를 잡히지 않는다 88년 마이클 듀커키스 민주당 후보는 “이번 선거는 이념이 아니라 능력을 따지는 선거입니다”라고 연설했다. 두 가지 각도에서 비판을 받았다. 듀커키스 자신이 자유주의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말에 진실성이 없어 보였다. 또 다른 비판은 ‘대통령은 이념·능력 이전에 지도력·비전이 중요한 게 아닌가’라는 것이었다. 배리 골드워터 후보는 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유 수호를 위해선 극단주의도 나쁜 게 아니다. 정의 추구에 있어서는 온건하다는 게 좋은 게 아니다”라고 발언해 극단주의자로 몰렸다.

“우리 당이 앞으로 할 일은 얼빠진 전통을 깨는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1932)
▶짧은 단어로 비전을 제시한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36년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류 역사에는 신비스러운 순환이 있습니다. 어느 세대는 풍요롭고 어느 세대는 큰 책임을 걸머집니다. 지금 세대의 미국인은 운명과 대면하게 됐습니다.” 루스벨트는 ‘운명과 대면(rendez-vous with destiny)’이라는 말로 국민이 다가올 제2차 세계대전에 대비하게 했다. 60년 존 F 케네디 민주당 후보는 ‘뉴 프런티어(New Frontier)’라는 신개척자 정신을 주창했다. 두 연설은 수락 연설의 백미로 손꼽힌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발생한다. 80년 지미 카터 후보는 “4년 전보다 나는 더 현명해졌습니다”라며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나온 데다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78년 사망한 허버트 험프리 상원의원을 추모하려다 험프리를 ‘혼블로어’라고 잘못 발음했다. 84년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는 “당선되면 세금을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솔직하게 보이려다 범한 정치적 자살행위였다. 72년 조지 매거번 민주당 후보의 경우, 전당대회 행사 진행이 늦어서 수락 연설이 TV 황금시간대에 방영되지 못했다.

전당대회는 계속 진화한다. 후보 수락 연설을 처음 행한 것은 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후보였다. 그 전에는 후보들이 전당대회장에 나타나지 않는 게 관례였다. 투표 후 대표단이 후보를 방문해 후보 임명을 통보했다. 루스벨트는 “바보 같은 전통을 파괴하겠다”며 시카고 전당대회장으로 향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처음으로 도입한 것은 68년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다. 그는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그의 아버지, 그에게 큰 영향을 준 미식축구 코치·교사·목사 등을 언급해 보통 사람들이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2004년 대선 당시 존 매케인은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주요 찬조 연설자로, 버락 오바마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기조 연설자로 나섰다. 이번에는 오바마와 매케인이 주인공이다. 이들의 후보 수락 연설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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