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민 환(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세밑이다. 이 무렵이면 거리엔 캐럴송이 울려 퍼지고 젊은이들이 물결을 이루곤 하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 거리도 사람들 표정도 어둡기 짝이 없다. 불황 때문이다.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일지 모른다고 내다보는 전문가도 없지 않으니 참 큰일이다.
주변부 어려움은 매우 심각하다. 가장 어려운 데가 농촌일 것이다. 며칠 전에《동아일보》는 젖소 송아지 값이 2만 2천원이라고 보도했다. 인공수정 한번 하는데 3만원을 내야하고 그것도 두 번 세 번은 해야 한다는데, 그렇게 해서 얻은 송아지 값이 2만 2천원이라면 한 마디로 기가 찰 노릇이다. 헐값에 팔아치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기르자니 사료 값 뽑는 게 불가능하다니, 대책 없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라고 만든 것 같다.
송아지 값이 책 한 권 값 서점에 들러 서가에서 고 김충렬 교수가 지은《중용 대학강의》라는 책 한 권을 빼들고 계산대에 갔다가 나는 잠시나마 당혹감 같은 걸 느꼈다. 책값이 2만 3천원이었다. 젖소 송아지 한 마리 값이 손 안의 책 한 권 값에도 미치지 않는다니, 이건 잘못 돼도 한 참 잘 못 된 게 틀림없다.
대학을 흔히 상아탑이라고 한다. 이 말에 빗대 6,70년대에 사람들은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소를 팔면 자식 등록금을 너끈히 마련할 수 있었는데 이제 가난한 농사꾼들은 자식새끼의 다음 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 가슴이 답답해진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송아지 값 자체가 아니다. 사실 송아지 값이 책 한 권 값만도 못하게 되리라는 건 오래전에 예측한 일이다. 한미 FTA를 체결해 미국 시장에 공산품을 팔아야 한국 경제가 살 수 있다는 거시적 전망 하나를 믿고 우리 정부는 미국에 쇠고기 시장의 빗장을 완전히 풀었다. 호주산 쇠고기나 캐나다산 쇠고기에도 비틀대던 육우농가가 미국산 쇠고기 쓰나미까지 맞게 됐으니 상황이 어느 정도일지 보고 듣지 않아도 뻔하다. 육우농가가 이 지경에 이를 걸 알고서도 우리 정부는 그들을 위해 무얼 했는가?
정부는 농민 처지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기업에 대해 경제가 어려우니까 구조조정을 하라고 닦달한다. 물론 기업이 불황을 이기려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하고 인력도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세기적이라는 이 불황에 직장에서 쫓겨나면 그 사람들은 또 어디서 무엇을 해 가족을 먹여 살릴 것인가? 747이니 뭐니 이 정부가 제시한 장밋빛 청사진에 취해 있던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세상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핏덩이 간난아이 돌보듯 고전을 줄줄이 꿰고 사는 다산연구소의 박석무 선생은 며칠 전에 여보적자(如保赤子)라는 말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라님은 백성을 마치 핏덩이 간난아이 돌보듯 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한다.《대학》에는 강고(康誥)라는 이가 그 말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간난아이는 품에 안고 있어야 한다. 품에서 떼어놓으면 목숨조차 부지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위해 가난한 이들이 참고 견뎌야 한다고 말 할지 모르지만 나라란 가난한 사람들이 배부르고 등 따습게 살게 하라고 만들어 놓은 제도 아닌가?
FTA든 구조조정이든 불가피하다면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라 경제가 좋아지고 기업 경영도 좋아지면 언젠가 그 덕이 가난한 이들에게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가난한 이들에게 마냥 후덕(後德)만 기다리며 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복지제도를 대폭 확충하고 그 예산도 많이 늘려야 한다. 그 다음에 마음을 다 해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여보적자라는 말 뒤에 심성구지(心誠求之)라는 말이 따르는 걸 보면 나라 마음이 열려야 민심이 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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