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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의 호주 방문을 보도한 <디 오스트레일리안> |
ⓒ 디오스트레일리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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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사망(death of neo-liberalism)' 여부를 놓고 한국과 호주의 정상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주고받았다.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이 호주를 국빈방문 하기 위해서 출국 직전에 이루어진 일이다. 국제 관례상 드문 일이다.
먼저 공격한 쪽은 케빈 러드 총리다. 그는 3월 2일자 <중앙일보>에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신봉자라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신자유주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호주 유일의 전국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 인터뷰를 통해 응답했다.
현직 국가 정상으로서 신자유주의를 맹렬하게 공격하는 케빈 러드 총리와 신자유주의 가치를 옹호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 두 정상의 공방을 보자.
러드 총리 "신자유주의의 죽음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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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 러드 총리의 7700자 에세이를 소개한 월간지 <먼슬리>. 사진은 2006년 10월호에 표지모델로 나왔던 케빈 러드 총리. |
ⓒ 먼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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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드 총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부터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를 맹공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탐욕스런 월가의 자본가와 시장의 자유방임을 무한대로 허용한 조지 W 부시 정부가 전 지구적 금융위기를 불러왔다"고 공박하면서 "나는 신자유주의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말해왔다.
러드 총리는 지난 1월말 주간지 <먼슬리>(the Monthly)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신자유주의와 시장 자유 근본주의가 일부 극소수의 탐욕에 의해 종말을 고했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스스로 자본주의를 잡아먹는 식인주의(cannibalism)를 막아내는 형국이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러드 총리는 이 글에서 "실패한 신자유주의는 벌거벗은 황제 같다"고 비유하면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존 하워드 전임 호주 총리, 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마거리트 대처 전 영국 총리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비판했다.
러드 총리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뿌리가 1970년대에 경제위기 대처방안으로 시작된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에 있다고 진단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세금 감면의 지속적인 물결'이 정부의 교육 및 기술훈련 투자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소수만 잘사는 사회를 초래했다고 분석한 것.
러드 총리는 2008년 중반부터 해외에 나갈 때마다 국제적인 금융규제 제도를 새로 만들자고 설파하기도 했다. 2008년 7월에 한국을 방문했던 러드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서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과 러드 총리의 정치행보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감세정책과 '작은 정부'를 고집하면서 시장의 자유를 극대화하려 하는 반면, 러드 총리는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서 정부의 기능을 확대하자는 쪽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번 <중앙일보> 기고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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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3월 2일자 26면에 실린 케빈 러드 호주 총리의 기고문. |
ⓒ 중앙일보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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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경제 회복되면 과거의 자본주의로 돌아가야"
3월 2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러드 총리의 기고문은 그가 월간 <먼슬리>(The Monthly)에 실었던 에세이를 발췌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 7700단어를 432단어로 압축한 요약본인데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보다는 금융위기 부분이 주로 소개됐다.
3월 4일자 <디 오스트레일리안>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 번역된 기고문을 읽고 '대체로 동의할 수 있다(he can agree with "most of it")'고 말했다"고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 대통령의 발언을 덧붙였다.
"오늘 아침에 러드 총리의 칼럼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고, 그가 쓴 글에 대해 대체로 동의한다(This morning I read with much interest the column of Mr Rudd and I agree with much that he wrote)."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디 오스트레일리안> 그레그 셰리단 외신부장과 청와대에서 한 인터뷰에서는 "대체로 동의한다"는 전제만 했을 뿐, 케빈 러드 총리와는 다른 견해를 펼쳤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정부 역할을 가능한 줄이는 게 원칙"이라면서 "다만 지금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상태가 됐으니 정부나 국제사회가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금융시스템의 변화가 요구되면서 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상황인데, 미국의 대처에 따라서 세계경제의 회복 속도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 "국제사회의 공조 하에서 재정지출을 늘리면 회복시기가 빨리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해소되는 순간 정부의 역할은 원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위기가 해소된 뒤에도 정부는 시장의 기능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