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Hegel의 정치사상

2009. 3. 25. 16:08정치와 사회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의 정치사상

 

 

1. Hegel 정치사상의 형성배경


(1) 사상적 기초

 

헤겔의 정치사상에 대한 사유방식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다음의 여섯가지 사상을 언급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는 기독교 사상을 얘기해볼 수 있다. 기독교사상은 헤겔이 어린시절부터 습득했던 것으로서 그의 사상체계의 기조를 이룬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은 그의 변증법을 체계화한 계기를 마련했으며, 기독교의 경직성을 비판하는 과정은 후에 쉘링의 입장을 수용해 결국 주관과 객관, 보편과 특수의 통일이라는 동일철학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헤겔은 그와 같은 동일철학으로 변증법적 조화와 통일에 의해 대립물을 융화시킴으로써 독일 관념론이 갖고 있는 이원론적 대립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나아가 그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접한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그에게 절대자를 추구하고 「법철학 강요」에서 국가를 신적 의지의 현실태로 상정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것은 또한 헤겔에게 역사 속에는 우리 인간의 손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법칙이 있으며, 이 법칙에 의해 역사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정해진다는 관점에서 역사를 신의 자기실현과정으로 파악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둘째로는 독일 관념론을 들 수 있다. 칸트에서 시작한 독일의 관념론은 경험론에 대한 비판을 시발로 이성과 현실, 주관과 객관의 대립들을 극복하고 동시에 변증법적 사고방식을 이룩해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선구자인 칸트, 피히테, 쉘링까지는 이원론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는데, 헤겔에 와서는 그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헤겔은 칸트와 피히테 등의 반성철학이 갖는 유한성을 비판하고 그 반성철학을 유한적 반성의 극복을 통해 헤겔 자신의 사변철학과 융화시킴으로써 주관과 객관, 이상과 현실, 자연과 정신, 보편과 특수 등의 이원론 입장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키려 한다.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방식은 그의 학적 체계에도 적용되어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을 통해 모든 사유를 행하게 된다.

 

셋째로는 고전경제학이 있다. 헤겔은 스튜어드의 저서 「정치경제학 원리의 연구」를 통해 고전경제학을 깊이 접하게 되는데, 그는 거기에 나타난 시장 메카니즘의 운동과 분석을 통해 인간사에 있어서 노동과 산업 및 생산이 점하는 위치를 의식하게 되고, 또한 정치·종교·문화생활 전역에 미치는 경제의 일차적인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통찰은 자신의 시민사회에 대한 개념 및 그 속의 소외의 개념을 파악하게 하며, 나아가 소외의 극복방법까지도 논의하게 하는데 이것은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미친다.

 

넷째로는 자유주의를 들 수 있다. 자유주의는 당시 전 유럽을 풍미했던 사상으로서 청년시절의 헤겔에게 있어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후 접하게 된 고전경제학에 대한 탐구, 초기 자본주의의 병폐에 대한 인식, 당시 독일 현실에 대한 이해, 프랑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등의 영향으로 차츰 근대시민사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유주의에 회의를 갖게 된다. 이러한 헤겔의 입장 변화는 현대정치에서의 사회주의나 복지국가에서 나타나는 ‘국가에 의한 자유’ 개념이 발생하는 원동력이 된다.

 

다섯째, 낭만주의를 들 수 있다. 낭만주의는 청년기의 헤겔에게는 적극적으로 수용되나, 장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낭만주의의 지나친 보수성 때문에 지나치게 급진적인 계몽주의와 더불어 지양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여섯째로는 희랍주의가 있다. 희랍주의는 근본적으로 논리적이며, 또한 폴리스에의 참여를 권리라기보다는 의무로 규정하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러한 입장은 헤겔이 독일 현실에 대한 불만을 갖고 보다 이성에 부합하는 국가를 제시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2) 시대적 상황

 

중세 절대왕권은 그 성립 과정에서 상업의 발달로 힘입어 성장한 시민계급의의 원조를 얻어 봉건영주의 권력을 타파하고 통일적인 권력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일단 강력한 통일권력으로 성립되게 되자, 이후 절대왕권은 이제는 자신을 키워준 시민계급의 성장을 막고 그들에 대한 억압권력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러자 시민계급은 이제 경제적으로 성장해 버린 상황에서 낡은 절대주의 정책에 구속감을 느끼고 차츰 절대주의 그 자체를 타도해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으며, 그것은 시민혁명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일련의 시민사회 성장 과정은 이념적으로는 고전적 자유주의, 사회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로 표현되는 근대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헤겔이 생존하던 당시(1770~1831)의 유럽은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 나폴레옹의 출현과 그의 몰락 등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이 시기에 유럽 각국은 시민혁명을 겪었거나 겪으려고 하였지만, 헤겔이 살았던 독일은 절대주의나 시민사회 형성에 있어서 다른 국가들과 크게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이 시기의 독일은 절대주의의 형성에 있어서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절대주의 또한 독일적 특수성을 띠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독일이란 300여개의 크고 작은 지방국가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았으며, 교황청의 세력확장 기도와 유럽 열강들의 세력싸움, 그리고 1618년에 일어난 30년 전쟁은 안 그래도 요원해 보이는 독일의 통일을 더욱 어렵게 했다.

 

이렇듯 독일은 다른 서구 열강에 비해 시민국가로서의 통일과 근대시민사회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매우 후진성을 면하지 못한 채, 결국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고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양대 세력만이 형식상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을 뿐, 대부분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된다.

 

즉,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정치·경제적으로 후진적이었던 독일은 자유도시, 독립적인 군주, 귀족, 길드, 그리고 종교적 분파가 국가의 권력을 흡수하고 활동을 마비시키면서 각자의 독자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혼돈상태에서 독일 관념론의 과제이자 헤겔의 과제는 이러한 혼돈의 정리, 즉 이분법적인 정치·경제·사상의 통일이었다.

 

그러한 통일은 이론적으로는 자신의 변증법에 기초를 두지만, 현실적 입장에서 프랑스의 근대화된 군대의 독일 침략을 경험함으로써 강력한 통일체를 필요로 하게 됐으며, 그 수단의 하나로 강한 군대를 상정한다. 헤겔은 그러한 강력한 통일체 아래서 독일 관념론이 그토록 염원하는 자유가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이었다.


2. 변증법


헤겔의 체계는 시종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에 변증법을 옳게 이해한다는 것은 헤겔의 정치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헤겔은 변증법을 삼단계로 나눠 논리전개를 하고 있다.

 

제1단계는 유한적 사물에 대한 추상적 혹은 오성적 인식의 단계로서 이 유한적 사물에 대하여 타당한 어느 규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고정한다. 그러나 유한적 사물은 변화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곧 그 규정과는 모순되는 새로운 규정을 발견하게 되고, 여기에 비로소 오성의 고정된 규정은 그 절대성을 상실하고 인식의 모순에 부딪치는데,

 

이것이 제2단계로서 변증법적·부정적 혹은 이성적 단계이다. 여기서는 제1단계에서 생각되고 있던 규정에 대하여 모순되는 규정이 생기고 이 두 모순적 규정이 대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 두 규정이 모순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단순히 유한적 사물만을 보려고 했기 때문이며, 유한적 사물이 그 속에서 변화해 가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 두 규정은 결코 모순된 것이 아니고 다같이 전체속에 계기로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이 제3단계로서 사변적 혹은 긍정적·이성적 단계이며 이때 두 규정은 통일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의 3단계적 전개는 계속 반복 진행하면서 절대자의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법철학 강요」는 그의 또 다른 저서 「엔찌클로페디」의 제3부 ‘정신철학’ 중의 ‘객관정신’ 부분을 상술한 것인데, 여기서 그는 ‘정신철학’ 부분을 ‘주관정신’, ‘객관정신’, ‘절대정신’으로 삼분하고 다시 ‘객관정신’의 단계를 ‘법(추상법)’, ‘도덕’, ‘인륜’으로 삼분하여 발전한다고 보았으며 나아가 ‘인륜’의 단계를 ‘가족’, ‘시민사회’, ‘국가’로 삼분하여 변증법적으로 발전한다고 본다.


3. 시민사회


시민사회와 국가의 구별은 근대에 있어서야 비로소 가능하게 됐으며 근대이전에 있어서는 국가와 사회와의 개념적 구별이 성립하지 않았다. 그것은 근대에 있어서 자본주의 경제가 성립·발전하는 가운데 국가와는 별도로 시민사회가 성립하고 발전했다는데 있는 것이며, 근대의 자유민주주의는 이와 같이 사회와 국가를 구별하고 양자의 관계를 이원적으로 대립하는 관계로 보고 시민사회를 위한 수단적인 것이 국가라고 하는데 성립하는 것이었다.

 

헤겔에 있어서 시민사회는 가족 또는 개인의 제인격이 자유로이 그들의 특수이익을 추구하는데 성립하는 것이었다. 모든 개인이 자기 스스로의 욕망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 그 욕망이나 이익이 다양하기 때문에 타자와의 결합이 필요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만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욕망의 다양성은 노동의 분화를 증가시키고 이에 따라 개인들이 상호의존하게 되는 것이 시민사회이다. 즉, 시민사회의 원리는 자기 욕망의 충족에 있는 것이며, 거기에서 타자는 무 또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러나 자기 욕망의 추구가 결과적으로 타인을 위한 것이 되며, 또 시민사회를 위한 것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헤겔의 입장이 자유방임을 승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보는 시민사회는 인륜의 상실태였으며 인륜의 변증법적 자기전개의 과정 중 하나의 단계였고, 그것은 다른 것에로 지양돼야 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시민사회는 사회·경제적 성격을 띠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법적사회이기도 하다. 시민사회는 의식적으로 자유롭게 인정된 법에 의해 분열이 방지되고 개인·사회가 조절되는데, 이 법은 자연법이 아니라 실정법이며 경제적인 욕망을 보장하는 법이다. 재산권의 문제를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에서의 문제로 다루는 이전의 철학자들과는 다른 헤겔의 독특한 시각이 여기서 나타난다.

 

그런데 시민사회는 법적인 보장만 받는 것으로는 분열이 충분히 방지되지 않는다. 그것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부의 축적이 진행돼 소수자에로의 집중현상이 일어나고, 그 반면에는 노동의 추상화와 개별화로 천민계층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시민사회가 분열되는 위기가 조성되며 이와 같은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이 요구된다.

 

그런데 경찰조차도 시민사회의 분열을 최종적으로 막을 수는 없으며, 그보다 직업단체가 필요한 것이다. 헤겔은 신분을 실체적 신분, 실업적 신분, 보편적 신분으로 3등분했는데 각 신분은 직업단체에 소속되며 단체를 매개로 하여 그들의 의사를 표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 개인은 직업단체에 소속되고 직업단체에 애착을 느낄 때 비록 인륜이 상실된 단계에 있으면서도 인륜적으로 지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국가관


(1) 「독일 헌법론」에서 나타난 시각

 

「독일 헌법론」은 독일이 세계국가체계 안에서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주변국으로서의 상대적 후진국에 처했던 현실을 배경으로 쓰여졌다. 거기에는 프랑스혁명의 이성과 자유이념 및 프랑스의 근대화되고 통일된 힘을 독일에도 실현시키려는 의지가 독일의 근대국가 수립이라는 형태로 표현되고 있다.

 

헤겔은 「독일 헌법론」에서 국가의 본질을 ‘소유물에 대한 방어력을 갖춘 통일체로 보고 그것을 형성하는데는 하나의 공동의 군대와 국가권력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국가의 본질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는 당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없었던 독일의 무력함을 통찰한데서 얻어진 것이다.

 

헤겔은 독일이 무력한 것을 독일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공동의지와 행위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하나의 통일국가가 아니라, 300여개로 분열된 채 각자 이해관계를 달리하여 공동의지도 공동행위도 존재하지 않는 분열된 집단이기 때문에 결과하는 필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렇듯 방어력을 본질로 한 헤겔의 국가 개념은 대외적 주권을 강조하고, 국가의 활동범위를 군사·외교·재정으로 한정하고 있다. 아울러 헤겔은 국가의 근본인 국가권력이란 대외적으로 국가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이라고 본다.

 

한편 헤겔은 이와 같은 국가의 본질이란 반드시 외적인 형식으로 나타난다고 보고 그것을 정부라 했다. 아울러 정부를 근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성격이요, ‘하나의 일반적인 중심점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처럼 국가권력이 집중되는 중심적인 정부가 주변에 있는 개인으로부터 전체를 위하여 필요불가결한 것임을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필수적인 것만을 요구할 때, 개인은 생생한 자유를 누리게 되고 정부도 안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헤겔은 유럽의 근대화 과도기에 나타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비판한다. 참되면서 강력한 국가는 획일성과는 정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법률을 갖는다는 이유에서이다.

 

그와 더불어 근대국가의 역사적 성격에 의해 그 근본적인 모순으로 우려되는 정부와 개인의 자유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헤겔은 근대국가의 또 다른 필수적인 형식으로 일반법과 대의제도를 언급하면서, 근대에 있어 자유는 국가의 법률적 구속 하에서만 가능하고 대의제도 없이는 더 이상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피력함으로써 근대적 자유를 규정한다.


(2)「법철학 강요」에서 나타난 시각

 

나폴레옹 전쟁의 충격으로 1806년부터 1814년 사이에 프러시아를 비롯해 바바리아와 뷔르템베르크에서 전격적으로 진행된 독일 각 지역의 개혁운동은 정치·사회적으로 비교적 많은 변모를 가져와, 헤겔이 「독일 헌법론」에서 그토록 비난했던 모습의 독일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됐다.

 

그러자 헤겔은 차츰 태도를 바꿔 독일에서 국가와 사회생활은 매우 조심스럽게 근대화되고 변혁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러한 성과를 유지하는데 매우 신경을 써야 할 것이고 이러한 개력에 대해 소요를 일으켜 중단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구질서를 뿌리채 뽑아버리고 변화와 근대화를 요구하던 헤겔의 목소리가 이제 기존질서를 신중히 보존하고 또 절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변하게 되는 데  「법철학 강요」는 그러한 배경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헤겔의 「법철학 강요」에서 보여지는 국가는 통상적으로 생각되는 국가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통상적인 국가가 인간의 현실적 필요의 충족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 조직체인데 반해, 헤겔에 있어 국가는 정신의 실현체인 동시에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측면으로 보는 국가인 것이다.

 

따라서 헤겔 정치사상이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은 현실과 이념의 완전한 통일 위에 국가의 존재를 보는 것으로, 그것은 인간의지의 선택에 의한 과정에서 발생하여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진 인륜의 현실태로서 존재하는 그것이다. 따라서 헤겔에 있어 국가는 인륜태로서의 국가이며, 자유의 현실태로서의 국가인 동시에 신의 의지로서의 국가인 것이다. 즉, 헤겔의 국가는 인륜 및 자유의 실현이라는 두 계기의 객관적인 통일로서 이루어지며 이는 곧 신의 의지의 현실태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헤겔에 있어서 국가는 실질적으로 가족의 원리와 시민사회의 원리의 통일이라고 할 수 잇다.

 

 여기에서 인륜이란 가족, 시민사회, 국가 등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의 내부에 존재하고 잇는 정의성을 말하는 바, 헤겔은 추상적인 법이나 도덕보다는 한층 더 높은 것으로서 이를 내세우고 있다. 즉, 서로 독립해 있는 순수한 보편성으로서의 추상법과 순수한 특수성으로서의 도덕과의 관계를 지양하는 것이 구체적인 인륜적 실체인 것이다.

 

개인은 자기가 인륜적 인간임을 의식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인륜 속에서 제약되고 또 인륜에 의하여 활동한다. 개인의 활동은 주관적 정신의 의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응하여 직접적 또는 자연적 정신인 가족(개별성), 자주적 개인이 상호상대적 보편 가운데 관계하는 상대적 관계의 상대적 전체로서 그것의 분열태 및 현상태로서의 시민사회(특수성),

 

전체를 하나로 하여 전개한 특수적 의지의 자유로운 독립성을 보유하는 보편적이고 객관적 자유로서의 유기체적 현실성인 국가(보편성)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인륜적 실체는 가족으로부터 발전하여 시민사회를 거쳐 인륜적 이념의 현실태로서 국가로 이행하며 이의 각 단계는 상대방에 대하여 서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이 단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가족은 직접적인 인륜적 실체이기 때문에 그 구성원은 사랑에 의해 직접적으로 통일돼 있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이 통일의 측면이 느슨해져서 각 성원은 독립성을 가지며 서로 평등한 관계 속에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기본이 되는 것은 경제활동으로서 모든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적 인격이며, 각자는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하고 타인을 자기의 특수한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헤겔은 시민사회에서의 이와같은 서로 이용하는 이기적인 목적 추구가 필연적으로 다수의 빈민을 낳게 된다고 봄으로써,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시민사회에서 생기는 계급대립이라는 문제를 포착하고 있다.

 

헤겔은 이러한 시민사회의 모순들이 국가에서 해소될 수 있다고 하는 국가 지상주의적 견해를 피력하였다. 즉, 시민사회에서 분산적으로 시민이 된 인간은 국가에서 또 다시 통일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국가는 가족과 같이 사랑에 의한 직접적인 통일이 아니라, 시민사회라는 분열의 단계를 통해 매개된 보다 고차적인 통일인 것이다.

 

 따라서 헤겔은 이 통일의 계기를 명백히 표시하고 있는 국가야 말로 최선의 국가라고 하면서 입헌군주제국가가 최고의 국가형태인 동시에 최고의 인륜성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이 게르만 사회, 즉 프러시아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법철학 강요」에서 말한다.

 

인륜적 이념의 현실태인 국가에 있어서 그 인륜성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자유로서, 인륜성의 외적질서에 있어서나 내적의식에 있어서도 이 자유의 개념은 실재하며 현실화 돼 있다. 즉, 자유의 개념은 추상적일뿐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태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인륜적 이념의 현실태요, 인륜성의 본질이 자유라고 한다면 국가는 자유의 이념이 현실화된 존재, 즉 구체적 자유의 현실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헤겔은 국가를 인륜의 현실태요 자유의 현실태라 하였는데 이것은 곧 신적 의지의 현실태이다. 왜냐하면 신의 의지는 곧 자유의 구현이기 때문이며 국가란 신의 이념이 지상에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에 있어 국가는 정치적 또는 역사적 기원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유된 것으로서의 국가이다.


5. 관념국가로서의 독일


국가개념을 언급하면서 헤겔은 국가의 활동범위를 외교·군사·재정으로 보았는데, 이에 따라 헤겔은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언급을 통해 독일이 실제적인 국가가 아니라 관념적인 국가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첫째, 독일의 외교권은 30년 전쟁의 결과인 베스트팔렌조약에 따라 연방국 제후들이 영내에서의 주권을 획득함으로서 그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따라서 독일은 제국을 단위로 하는 대외주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고, 자연히 외교관계는 각 연방의 이해관계에 따라 독자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나마도 베스트팔렌 조약이 각 연방의 자유를 외국이 보장하는 것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외국에게 내정간섭의 여지를 주었고, 국내 파벌에 외국세력을 끌어들여 각 연방국들을 외국의 종속적 위치로 전락시켰다. 그리하여 전체로서의 독일은 사라졌고 그 부분들이라 할 수 있는 각 연방들고 독립성을 잃게 되었다.

 

둘째, 제국의 군대는 현실적으로는 존재하나 그 내용면에서는 통일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제국군대는 상비군이 아니라 전쟁이 나면 그때야 각 연방이 뽑아 보낸 파견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제국 황제에게 보다는 자신들의 제후에게 충성하였다. 더구나 제대로 소집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독일에서의 전쟁은 대부분 연방간의 내란이었고, 외국에 대항하는 경우에도 각 연방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전쟁 도중에도 단독으로 조약을 맺고 철수하기도 했다.

 

셋째, 재정권은 국가적 차원에서 존재하지 않고 마을, 도시 등의 단위로 이루어졌으며 조세제도도 없고 황실은 황제 소유의 영지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유지되었다.

 

이렇게 국가의 기본공권을 결여한 채 국가라고 주장되는 신성로마제국의 국가적인 형식은 황제와 제국의회였다. 그러나 그것은 명목상의 문제였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실질적인 힘이 없었으며 자기가문의 세력을 늘리는데 주력하는 하나의 연방 제후와 같은 입장이었다.

 

 제국의회도 제후들의 공동 목적을 갖지 못한 채 이해상쟁이 되고 있었으며, 다수의 결정에도 소수가 불복하면 무효가 되어 실제로는 현실성이 없었다. 그밖에 제국의 고등법원이 있었으나 대부분 주요 문제는 법원에서보다는 전쟁을 통해 결정났다.

 

이러한 신성로마제국과의 비교를 통해 헤겔은 독일의 현존상태를 ‘둥근 돌이 모여 만든 피라미드’라고 하고, “독일은 국가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신성로마제국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관념 국가’인 것처럼, 독일에서도 현실적으로 국가는 존재하지 않으나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이분법적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6. 현실 지양의 역사적 필연성


헤겔은 독일에 있어서 철학의 과제가 현실에 대한 양분법적 입장을 지양하고 전제를 인식하는 것처럼, 역사적 과제도 현실과 사고의 앙분현상인 관념국가를 지양하고 하나의 전체, 즉 이성적 이념에 부합하는 국가를 수립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의 변증법적 입장에서 헤겔은 현존하는 관념국가가 전체역사 안에서 생성된 것으로서 필연적인 것이었으나 그 필연성은 이미 생명을 다하였으며, 새로 생성되어야 할 새로운 현실을 위해 필연적으로 지양되어야 할 역사의 한 단계라고 본다.

 

이러한 현실지양은 인간의 주관적 이성의 개입에 의해 실현된다. 이때 인간의 주관적 이성은 무의식적인 욕구, 개념파악, 역사의 실천이라는 행위를 통해 그 모습이 드러난다고 헤겔은 본다. 일반인의 상식 수준에서 현실지양의 필연성은 무의식적으로 욕구되는데 당시 독일에서는 좀 더 순수하고 좀 더 자연스러운 상태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었고 현실과 불화하게 하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기존의 삶과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욕구되는 정체불명의 것 사이의 모순을 점차 느껴가게 되었고, 그런 느낌은 곧 그 모순이 제거되길 바라는 욕구가 된다. 철학은 이러한 정체불명의 것을 개념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개념적으로 파악되는 진리인 이념은 기존현실의 부정성을 확실히 드러내주고 그것의 지양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현실지양의 필연성은 개념적으로 파악했어도 자동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닌 바, 실천이란 생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힘에 의해 얻어진 것이다. 즉, 독일에서 국가수립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통찰된다 하도라도 기존의 개별적인 특권이나 사적 이익들은 쉽게 포기할 수 없이 때문에 이 역사적 필연성에 대해 계속 저항하므로 국가는 이러한 저항을 물리칠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7. 국가와 종교


헤겔에 있어 국가는 하나님의 정신의 구현체이며 이 국가를 통하여 수행되는 모든 것은 하나님 존재의 활동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는 세속적 인간의 의지에 의해 수립된 것이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습으로서의 신의 이념인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법은 하나님의 의지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형식이며 정신의 객관적 존재형태라고 본다.

 

헤겔은 국가와 기독교를 절대자로서의 정신으로부터 일관하여 본질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종교와 국가도 상호동형에 서있는 것이다. 국가의 본성이 현존하는 의지로서의 신적 의지이며 한 세계의 현실적 조직으로까지 전개하는 정신이고, 기독교도 또한 정신의 절대적 진리 이외의 어떤 것도 그 내용으로 갖고 있지 않으므로 국가와 종교는 그것이 동일 내용의 형성에 있어서 교회와 국가로 분리되더라도 기독교적 정신이라고 하는 기반 위에 상호합치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이렇듯 헤겔에 있어 종교와 국가는 필연적으로 상관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는 그 안에서 구속력과 확신을 자각시킴에 있어서 현실성에 있어서 한정된 것을 고차적인 영역으로 이행시킴으로서 그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있다. 이때 국가의 고차적 영역으로의 이해과정은 필연적으로 종교에 귀착된다. 그리하여 종교는 국가의 본질을 하나님의 의지로써 믿도록 하는 기초로서, 국가의 기본인 인륜적 심정도 종교적 심정에 기본하여 갖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출처 : 한 숨 돌리고픈 휴게소...
글쓴이 : 리어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