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5. 16:09ㆍ정치와 사회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
1. 역사적 배경
15세기에 들어오면서 서유럽은 의회의 실패를 맞았고, 봉신에게 분산됐던 정치권력은 왕에게 급속히 집중됐다. 주권자의 개념은 16세기에 들어오면서 일반적인 형태가 됐으며, 왕은 민족적 통일성의 주된 수혜자가 됐다. 이른바 절대주의 시대가 태동한 것이다.
이런 절대주의의 형성 과정은 부르주아지(bourgeoisie)의 출현과 맞물린다. 중세의 무역은 길드(guild)에 의해 통제되어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고, 그 규모 또한 지방의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작은 수준에서 그쳤다. 이것은 사람들 간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부제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후일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점점 확대되고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였고, 이에 따라 무역의 규모 또한 함께 확대되고 수많은 상인모험가가 성공해 지배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것은 무역의 자유시장으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유럽사회에서는 점점 부르주아지들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성장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왕과 제휴하며 모든 권력을 왕에게 집중시키려 한다.
왜냐하면, 확정된 무역의 보호 및 장려나 상품 품질의 표준화와 같은 작업을 추진할 힘이 필요했을 뿐더러, 부르주아지에게 적대적이었던 귀족세력을 누를 교두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장한 왕의 힘을 바탕으로 16세기에 들어서며 절대군주정은 점차 보편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혁은 마키아벨리에게 요약된다.
2. 16세기의 이탈리아
마키아벨리가 저술할 당시의 이탈리아는 밀라노, 베니스, 플로렌스 공화국, 나폴리, 그리고 교황령으로 나눠져 있었다. 이러한 삼분오열된 상태는 마키아벨리에게 매우 좋지 못한 것이었다. “전적으로 하나의 정부에 복종하지 않고는 그 나라가 통일되고 행복해질 수 없음은 확실하다”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강력한 통일된 정부의 옹호자였다.
그는 당시 이탈리아를 통일되지 못하게 하는 주범을 바로 교황이라고 보았다. 교황은 전체를 통일할 만큼 강력하지도 못하며 외세의 개입을 초래하는 정책의 우두머리였고, 따라서 이탈리아를 반목하고 허약하게 만듦으로써 침략가들의 희생이 되게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마키아벨리는 당시 이탈리아를 정치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의 희생물이 된 사회로 보았다. 잔혹한 살인이 난무하며, 방탕과 환락에 절어있고,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한 매우 부패한 사회가 바로 이탈리아였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법률과 정의로부터 유리되었을 때는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나쁜 동물이 된다”라는 경구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3. 마키아벨리의 저서
마키아벨리의 주요저서는 ‘군주론’과 ‘티투스리비우스의 초기 저서 10권에 관한 논고’로 꼽을 수 있는데, 이것은 국가의 융성과 쇠망의 원인 및 정치가가 국가를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수단이라는 동일한 주제의 상이한 측면에 대해 서술한 것이었다. ‘군주론’은 군주정 또는 절대정부에 대해, ‘티투스 논고’는 공화국 로마의 팽창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정부권력의 확장과 정치적·군사적 수단, 국가의 쇄퇴를 초래하는 실책 등에 대해 거의 전부 망라하고 있다. 그는 정치의 목적을 정치권력 자체의 보존 및 증대에 있다고 보았으며, 정치권력의 보존 및 증대 행위의 성공여부에 따라 정치를 판단했다.
4. 마키아벨리의 이론
1) 종교
마키아벨리는 기독교가 굴종, 겸손 등에 최상의 행복을 부여했다면서, “기독교의 이러한 원리들은 인간을 허약하게 만들고 그들을 사악한 마음을 가진 인간에게 쉽사리 희생되도록 만드는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말해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그러나 항상 모든 종교를 부정한 것은 아니며, 때로 믿음은 좋은 일에 대한 양심이 된다고 보았다. 로마를 위대하게 한 것들 중의 하나를 종교의 가르침이라고 보기도 했다.
2) 도덕
인간의 이기적임으로 인해 도덕은 결국 법률과 정부로부터 연유돼야 하는데, 법률과 정부는 통치자가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국가권력을 확장·영속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방편의 성공 말고는 통치자의 행위를 심판할 수 있는 여하의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3) 군주
마키아벨리는 프랑스와 스페인 또한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부패를 지니나 이탈리아에서 날마다 보는 것만큼의 혼란과 문젯거리들을 찾아볼 수 없다면 그것은 프랑스와 스페인이 강력한 군주에 의해 통일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이탈리아의 남은 과제를 절대군주제의 설립으로 일축할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에 대한 논의는 “자신을 보존하려는 군주는 항상 선할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 선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유명한 말로 압축된다.
덕을 망각하고 악하기 쉬운 대중은 공공이익을 쉽게 무시하고, 따라서 전제권력에 의존하지 않고는 미덕을 회복하거나 혹은 그 미덕 없이도 질서정연한 정치를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마키아벨리는 통치자가 유익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들을 사용하는 것도 공공연하게 승인하였다.
그는 군주는 사자와 여우의 성품을 모방해야 하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또한 외국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서 애국심을 가진 시민들로 구성된 강력한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4) 공화주의
그는 절대군주제의 옹호자인 동시에 공화국 로마의 열렬한 찬양자였다. 그 이유는 로마가 가졌던 좋은 제도, 좋은 헌정체계, 좋은 단결력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덕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의미하는 부패는 일반적으로 인민의 정부를 불가능하게 하는 개인적 미덕 및 시민적 성실과 헌신의 쇠퇴인데, 강력한 군주는 이러한 부패가 만연한 이탈리아와 같은 곳에서는 필요하지만 시민들이 덕성을 가지고 있는 로마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국가의 오랜 번영을 약속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군주제에서도 군주는 단지 강력한 힘으로 통치하는 것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인민들을 유덕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즉, 국가의 오랜 번영을 위해서는 한 사람의 위대함 뿐만 아니라 대중의 덕성 또한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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