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病'은 어떻게 극복됐나?

2009. 9. 27. 02:34정치와 사회

네덜란드의 갈등조정 시스템<상>

[정치개혁 강좌]<11> '네덜란드 病'은 어떻게 극복됐나?

기사입력 2009-09-25 오후 3:52:04

  • 크게보기
  • 작게보기
  • 기사스크랩
  • 바로가기 복사
  • 프린트
<희망정치연구회>가 진행 중인 정치개혁 특강을 연재합니다. <희망정치연구회>는 정치제도개혁에 관한 정치, 사회, 법률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입니다. <프레시안>은 정치개혁, 제도개혁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전문적인 강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해 게재합니다. 글과 함께 하단에 있는 '강의 듣기' 서비스를 통해 생생한 육성 청취도 가능합니다. 이번 정치개혁 특강을 맡은 선학태 전남대 교수의 강의는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편집자>

네덜란드 분열의 역사

민주주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분열과 갈등의 골이 깊은 사회라 해서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사회 분열과 갈등은 민주주의 위기나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갈등과 분열을 조정 관리해 내는 민주적 시스템을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느냐 여부에 있다.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네덜란드 민주적 시스템이 우리의 주목을 받을만하다.

네덜란드는 17세기 상업의 융성으로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스페인 지배, 프랑스(1803-13) 및 독일 나치 점령 등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불행의 역사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네덜란드 시민사회는 한때 종교 이념 계급 등을 축으로 갈등과 분열이 동시다발적으로 소용돌이치는 매우 불안정한 양상을 드러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종교적 앙금은 신자들 간에 서로 접촉도 결혼도 하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다니는 학교도 지지하는 정당도 서로 달랐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운동의 저항이라는 계급갈등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이익단체들도 분열됐다. 즉 프로테스탄트파 가톨릭파 그리고 자유주의계열 사회주의계열 등은 각각 별개의 노조와 사용자집단들로 갈라져 서로 충돌했다. 이런 이익단체들은 각각 성향이 비슷한 정당을 지지하는 등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복잡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스케치가 1950년대 이전의 대체적인 네덜란드 자화상이다.

노동재단과 사회경제협의회 설립과 정책협의 제도화

그렇다면 네덜란드가 어떻게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마감하고 민주적으로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번영을 과시한 유럽 강소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다스리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네덜란드의 민주적 시스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게 바로 네덜란드의 사회파트너십 시스템이다. 사회파트너십 시스템이란 시민사회의 이익단체들 간 혹은 그들과 정부 간의 소통과 타협, 정책협의를 통해 여러 사회경제적 어젠다를 사회협약으로 끌어내는 프로세스다. 이건 정책결정을 정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관료 전문가 중심의 국정운영 드라이브와는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을 달리한다.

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폐허가 된 경제의 재건이라는 절박한 국면에서 네덜란드의 칼빈 가톨릭 사회주의 등에 속한 노사 집단은 사회파트너십 시스템을 구축해 단체협약을 끌어내고자 절치부심 했다. 이에 따라 나치 점령기에 레지스탕스 운동에서 노동과 자본 간에 은밀히 기획된 '노동재단'(Foundation of Labor: FL)이라는 자율적인 민간기구가 탄생한다.

FL의 권유에 따라 1950년 정부에 의해 노사정이 참여하는 '사회경제협의회'(Social and Economic Council: SEC)가 설립됐다. SEC는 정부의 모든 사회경제정책에 관해 자문에 응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가진 공식적 기구이다. 이런 까닭에 정부는 새로운 경제 및 사회 입법안을 의회에 상정하기 전에 SEC의 자문을 얻어야 하는 법적인 의무를 갖는다.

이처럼 FL과 SEC는 중앙 차원에서 노조와 사용자단체의 대표, 그리고 정부대표들이 서로 만나 협상과 의견 조율을 통해 노사 상생협력을 끌어내는 사회협의체 또는 정책협의체이다. FL은 임금 및 고용에 대한 일차적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데 반해, SEC는 보다 구조적이고 중장기적인 사회경제정책에 관심을 갖는다.

FL과 SEC의 상호 연계된 이사회에서 자본과 노동의 정상조직, 그리고 사회부 및 경제재정부의 각료들은 경제정책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중요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 아래 보다 구체적인 정책분야에서 노조와 사용자단체의 대표가 참여하는 다른 공식적인 자문 및 협상위원회들이 활동한다. 여기에서 논의되는 주요 테마들은 고용, 사회보장, 건강보험, 산업정책, 직장에서의 안전, 직업훈련, 환경정책, 보건정책, 공공주택, 교통, 사회간접 자본 확충 등 실로 국정 전반의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이슈들이다.

FL와 SEC의 설치로 네덜란드 사회파트너십은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되고 경제운영 프레임으로 자리 잡는다. 그 핵심은 사회 저변층의 정책 이해관계자들이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소통 타협 협상 합의에 따라 사회경제적 이슈들을 조율하는 데에 있다. 그들의 정책 참여를 배제한다면 갈등과 분열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네덜란드 사회파트너십 시스템은 여러 사회경제정책의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하게 되고, 이를 통해 노사 대립과 갈등을 잠재워 사회통합과 화합의 길을 여는 길잡이가 된 것이다.

네덜란드 병과 바세나르협약

하지만 전후 정책협의체에 의한 경제운용에도 불구하고 1967년에 물가인상이 자동 임금인상에 반영되는 '물가연동임금제'로 인해 1960년대 말에는 실질임금이 폭발적으로 인상됐다. 이러한 고임금화는 1973~83년에 고인플레이션, 평균 10%의 실업률을 기록하는 요인이 됐다. 네덜란드 정부는 실업문제를 조기은퇴 질병 장애 실업보험 등의 복지급여 확대로 흡수했는데 이러한 접근은 1970년대 후반 GDP 대비 사회지출을 크게 증가시키는 재정적자를 가중시켰다. 특히 관대한 사회보험은 노사의 높은 기여금에 의존해 기업경쟁력을 약화시켰다. 게다가 기업들은 정규직 근로자의 해고 어려움 등 노동시장 경직성에 불만을 터뜨리는 상황이었다.
▲ 바세나르 협약 체결에 기여한 빔 콕 전 네덜란드 총리. ⓒ연합뉴스

우리는 당시 이러한 사회경제적 리스크를 '네덜란드 병'이라 부른다. 병세는 당시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의 충격으로 더욱 깊어 갔다. 이러한 위기 국면 속에서 1982년 11월 출범한 기민당과 자유당으로 구성된 중도우파의 루버스 연립정부는 FL과 SEC의 사회적 파트너들과의 정책협의를 생략한 채, 기술관료 및 전문가 집단의 자문에 의존해 일방적으로 긴축프로그램을 밀어 붙였다. 정부와 노동 사이에 긴장과 대립이 팽팽했다. 사회파트너십 시스템 작동이 멈춰버린 게 당연하다.

하지만 위기의 자궁은 기회를 잉태한다. 노조와 사용자들은 FL에 합류하여 단체교섭을 재개하고자 했다. 사회적 합의 제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중도우파 연립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사회파트너십 시스템이 부활하는 기운이 감돌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 노조는 임금인상 자제(물가연동임금제 폐지)에 관심을 보이는 이니셔티브를 잡았다. 고임금은 결국 자승자박(自繩自縛)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특히 노조 지도부는 대량실업의 현실 속에서 기업의 투자 수익성 및 경쟁력 향상을 통해서만 고용증대가 가능하고 이를 위해 사용자집단과 정부와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이에 긍정적 신호를 받은 연립정부 또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임금억제, 복지예산 조정, 기업이윤 제고 등의 수용을 노동과 자본에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네덜란드 병'을 치유하기 위한 네덜란드의 정책파트너십 시스템이 복원된 것이다.

FL은 SEC와의 정책조율을 통해 1982년 '바세나르협약'(Wassenaar Accord)을 체결했다. 여기에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협약이 체결되기까지 행정적 재정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협약의 방점은 대량실업을 극복하기 위한 임금자제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에 있다.

당시 노조는 자발적 임금자제로 기업의 투자를 촉진시키고 이를 통해 일자리가 창출되며 복지 의존 계층을 감소하여 정부재정을 건실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협약에서 자본은 근로시간을 단축시켜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증대, 새로운 일자리 창출 약속으로 화답했다. 그리고 정부는 직업교육 훈련을 통해 실업노동자의 노동시장 참가유도, 세금감면, 복지개혁, 건전재정, R&D 재정투자, 기업보조 확대 등을 약속했다. 요컨대 바세나르협약은 노사정 이해관계의 선순환 메커니즘으로 상생발전을 겨냥한 것이다.

'신노선'협약과 유연안전법

바세나르협약을 계기로 부문별 산업별 기업별 사업장별 수준에서의 협약이 등장했다. 예컨대 1994년에 산별협약이 86.6%로 증가했고 기업별 협약도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 글로벌 시장에 보다 효과적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바세나르협약의 여세를 몰아 1993년 FL은 그 연장으로서 '신노선협약'(New Course Accord)을 체결했다. 협약은 '소득보다 일자리 우선' 전략에 따라 노조의 자발적 임금인상 자제, '노동 없는 복지'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복지개혁, 정부보조금과 일자리 창출을 연계하는 정부와 사업주의 '적극적 고용정책',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파트타임 근로 장려 등의 정책패키지를 담아냈다. 영미식 해고 자유가 아니라 파트타임 노동, 일자리 나누기로 방식으로 노동시장 유연화를 하자는 게 인상적인 대목이다.

노사정 간에 정치적 교환의 성격을 띤 바세나르협약과 신노선협약에 힘입어 1990년대 중반이후 네덜란드 경제는 호전됐다. 더불어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1994년 총선 결과로 노조 의장이던 빔 콕(Wim Kok) 수상을 중심으로 노동당, 자유당, 민주주의'66(D'66)으로 구성된 이른바 '자줏빛'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그런데 새 연립정부는 SEC의 정책자문을 요청하는 정부의 의무를 폐기하려고 했다. '시장의 확대, 정책협의의 축소'라는 자유당과 D'66의 견해가 반영된 것이다. 사회파트너십 시스템의 앞날이 암울해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먹구름 속에서도 햇살은 솟는다. 1996년 FL와 SEC은 '바세나르협약'과 '신노선협약' 틀 속에서 '유연안전성협약'(Flexicurity Accord) 테마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즉 유연성(보다 많은 파트타임 노동)과 안전성(파트타임 노동의 법적 보호) 간의 균형을 강조한 것이다. 두 자유주의 정당인 자유당과 D'66이 사회파트너십에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유연안전성협약은 연립정부 내의 서로 다른 의견들을 절묘하게 조율시킨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협약은 1999년에 약간의 손질이 가해져 '유연성 및 안전성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 법은 정규근로자의 보호완화(기업의 정규직 해고 규정 완화)와 비정규직노동의 보호 및 사회안전망 강화를 담았다. 정부와 고용주로 하여금 법정 최저임금, 유급휴가, 시간당 임금, 사회보험 가입 등에서 파트타임 근로자들에게 정규근로자들과 법적인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도록 규정했다. 참으로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평등을 줄이는 혁신안이다. 또 이 법은 고용주에게도 침묵하지 않았다. 즉 해고 예고기간의 축소, 해고과정의 간소화 등으로 그들의 요구를 채워 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유연안전법은 한편으로는 노사 간의 타협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노 간 타협을 의미한다. 이로써 비정규직, 파트타임 근로자로 전환되는 사태에 당사자들의 반발과 저항 없이 노동시장 유연화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한마디로 네덜란드의 노동시장 유연화는 라운드 협상 테이블에서 이뤄진 것이다.

폴더 모델의 효과

네덜란드는 글로벌 시장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임금자제 노동유연성 투자촉진 일자리창출 사회보장비축소 등과 같은 사회경제 어젠다를 사회협약으로 끌어내는 사회파트너십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일련의 사회협약 체결과정에서 양보하고 보상하는 방식으로 노동과 자본이 보여 준 실용주의적이고 유연한 스탠스가 돋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네덜란드 사회파트너십 시스템에 기반을 둔 시장조정 경제발전을 '폴더(Polder) 모델'이라 부른다. 이는 해면보다 낮은 간척지로 흘러 들어온 바닷물을 막았던 네덜란드 국민의 신뢰와 협동의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네덜란드 폴더 모델은 1970~80년대 초반에 만연된 '네덜란드 병'을 기적적으로 치유하는 효과로 나타났다. 우선 1990년대 이후 줄곧 성장 물가 재정 고용 등 거시 경제지표에서 유럽연합의 평균보다 우월한 성과를 기록했다. 동시에 일자리 부족을 사회보장에 의한 보상 방식보다는 노동시간 단축과 파트타임 근로의 형태로 유연성 제고를 통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한편, 정규직의 양보를 전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동등한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 이 같은 양보와 보상은 노동시장 유연화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해 산업의 국제경쟁력과 사회적 형평성 간의 선순환 기제에 공헌한 바 크다.

둘째, 새로운 노동윤리와 노동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하나는 시민을 단순한 사회보장 수혜자가 아니라 노동시장 (재)진입을 유도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네덜란드의 전통적인 '저노동참여 고급여수령'이라는 도덕적 해이 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을 노동시장에 끌어들이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종교 전통에 따라 가사에만 몰두하는 존재로 인식된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파트타임 노동의 급증으로 나타나고 있고 여성의 소득은 그들 남편들로 하여금 풀타임 직장보다는 오히려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도록 하는 취업 트렌드를 조성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결사체 거버넌스가 발전하고 있다. 의사결정의 신속성이 결여되고 의회정치를 훼손시킨다는 비판이 없지 않지만 네덜란드 사회파트너십 시스템은 비단 산업관계만이 아니라 환경 문화 교육 등 여러 정책분야가 민간단체들에 의해 규율 조정되는 결사체 거버넌스 형태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이런 결사체 거버넌스에 정부의 지원이 따른다. 즉 결사체들에게 공공정책의 형성과 이행에 참여하는 법적 권한을 주고 민간 차원의 합의가 입법화로 이어지는 데 정부지원이 제공된다. 결사체들의 법적 지위는 주와 시의 법적 지위와 비견될 수 있는 정도이다.

폴더 모델은 한국의 벤치마킹 모델

네덜란드 폴더 모델은 숙명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성장과 복지 간의 관계를 선순환 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네덜란드 폴더 모델은 국제적인 극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네덜란드 국가 자존심의 원천이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스위스에 소재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은 한국 국가경쟁력을 6등급 낮추면서 노사관계의 불안정을 그 원인으로 들었다. 그렇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과격하고 전투적이다. 투자와 성장, 시장효율성과 경쟁력에 걸림돌이 될지 모르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건 피상적 관찰이다. 상처는 보다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과격한 노동운동은 이를 흡수 관리할 수 있는 민주적인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사회발전 노사정위원회'는 이미 유명무실화 된지 오래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에서 그 용도폐기 기도가 관찰되고 있는 형국이다.

네덜란드 노동운동이 과격하지 않는 건 노동자들의 심성이 부드럽고 온화해서가 아니다. 사회경제정책 결정 과정에 그들의 참여를 통해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정책콘텐츠를 개발하는 민주적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과격성 문제를 인과론적으로 들여다봐야 되지 않겠는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표할 수 있는 민주적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그들은 삶의 현장에서 몸부림치고 툭하면 길거리로 뛰어나가는 게 아닐까.

네덜란드 폴 모델에 비춰 볼 때 한국의 노사정 대타협을 끌어내는 사회파트너십 시스템 작동을 위해서는 한국 정치시스템이 바꿔져야 할 전제가 있지만 이에 앞서 사회경제 주체들의 행동 변화가 중요하다. 우선 정책협의체에서 양보와 보상의 메커니즘을 통하여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전략적 행동을 이끌어내는 복지 등 다양한 정책패키지를 개발하는 정부의 행동 변화가 주요 변수이다.

또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인금인상을 자제하고, 이에 사용주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여 고용안정으로 화답하는 행동 변화를 보여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 과정에서 특히 대기업 공기업 정규직의 양보이다. 정규직은 일반 국민들에게 강력한 노조의 보호로 고용보장, 고임금, 풍부한 사내 복지를 누리는 일종의 노동귀족으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규직은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을 비정규직에게 일정부분 양보하는 고뇌에 찬 무서운 결단을 내리는 게 맞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양보하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업 경영진의 행동 변화가 어쩌면 노사관계를 선진화하는 데 꼭 필요한 선행 변수일 수 있다. 연봉 수십 억대를 챙기는 기업 경영진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과 소외를 해소하기 위해 자신들이 받는 엄청난 혜택을 양보했을 때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회경제 주체들의 행동 변화는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 노동, 복지, 비정규직 근로자, 빈곤층, 실업, 소득불평등, 교육, 의료 등의 민생문제와 직결된 정책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와 협의 시스템을 제도화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게 네덜란드 폴더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길일 것이다.

강의 다운로드

/선학태 전남대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정치와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에 수놓은 ‘그리운 노무현’  (0) 2009.10.04
환단고기  (0) 2009.09.29
지핑이 짚은 대통평  (0) 2009.09.25
중국·일본서 더 존경 받은 이순신 장군  (0) 2009.09.22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0) 2009.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