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된 근대화1
2010. 1. 16. 14:42ㆍ정치와 사회
'박정희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탄생했나?
[화제의 책] 조희연의 <동원된 근대화>
기사입력 2010-01-16 오후 1:37:52
종말을 고한 지 한 세대를 넘겼음에도 박정희 체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것은 사회 현상으로서의 '신드롬'이나 퇴행적 향수 또는 정치 공학적 술수의 차원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의미한다.
박정희 체제 18년을 전후한 시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결정적 국면이었다. 근대 세계 체제의 시민권은 곧 국민·민족 국가였고 박정희 체제기는 '국가 형성(nation building)'의 핵심 과정을 포함했다. 그 핵심 중의 핵심이 산업화였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재)생산 시스템의 비가역적 전화야말로 박정희 체제를 (재)생산하는 영구기관이다.
이른바 '국민 경제'의 구성과 확장은 '국민'의 형식적 포섭을 넘어 실질적 포섭을 가능케 했고 모든 구성원을 '집단 살림'의 식구로 만들었다. 집단 살림의 주기적 경기 변동이 영원한 운명을 대신했고, 이것을 떠난 개체의 삶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요컨대 국민 또는 민족은 운명 공동체를 넘어 생활 공동체가 되었고 공동의 운명이라는 추상적 긴박보다 생활 상의 일상적 구속을 통해 동질적 집단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산업혁명은 사회혁명을 추동했고 한국 사회 전체가 급속한 변화에 휘말리게 되었다. 사회적 유동성은 극단적으로 상승하였고 대중정치의 본격화는 민주주의를 비롯한 정치적 감각의 활성화를 초래했다. 역설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독재의 반정립으로 구성 확산되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조화로운 발전'이라는 김대중 정권의 슬로건은 박정희 체제와 단속적으로 연결될 것이며, 뉴타운은 새마을의 번역이다.
박정희 체제는 그것을 스스로 '조국 근대화'라 불렀다. 그러면 박정희 체제의 조국 근대화는 어떻게 가능했고 또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을 내세운 박정희 체제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박정희 체제='개발 동원 체제'
▲ <동원된 근대화>(조희연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프레시안 |
총 2부 6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박정희 시대의 체제적 성격'을 규정한 다음 2부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대중적 동의 기반'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2007년에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역사비평사 펴냄)를 통해 박정희 시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시도했기에, 이번 책은 이론적, 사회과학적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
이 책을 관류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즉 저자는 '진보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보수적 시각에서 강조하는 경제 성장, 대중적 동의를 '진보적 시각의 확장' 속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복합적인' 진보적 분석틀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진보적 분석이 근본적으로 '실천의 과학'이기에 현실 '비평'이 아니라 현실 '변화'를 지향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실천의 논리를 위한 현실의 단순화가 초래한 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박정희 체제를 '특수한' 대상이 아니라 '일반적' 특성을 갖는 대상으로 파악하고자 함을 밝히고 마지막으로 '모순적 복합성'과 '헤게모니의 균열' 개념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분석된 박정희 체제는 한 마디로 '개발 동원 체제'로 정의된다. 그 의미는 '근대화'라는 국민적·민족적 목표를 향해 국가가 위로부터 사회를 강력하게 추동하고 동원하는 체제이다. 이로부터 '동원된 근대화'라는 이 책의 제목이 도출된다.
국가-권력의 헤게모니 확보를 위해 중요하게 동원된 것이 곧 '결손 국가'와 '결손 국민'이었다. 서구적 근대 국가 및 국민을 기준으로 하여 스스로를 후진적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정상적 국가와 국민 형성이 전사회적 목표로 설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 체제는 생체적, 도덕적, 국가주의적 훈육 국가로서 결손 국민을 정상 국민으로 전환하기 위한 국민화 프로젝트의 담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발 동원 체제는 대단히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동원의 작위성으로 말미암아 위기적 성격을 내재하게 된다. 저자는 박정희 개발 동원 체제의 정치사회적 이중성, 즉 효율성과 위기성의 공존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목표임을 강조했다. 위기성의 핵심은 '민중의 주체화'인데, 민중은 근대적인 권리 주체로서 '시민'적 존재이자, 계급적 저항 주체로 설명된다. 박정희 체제는 경제적 근대화를 지배적인 가치로 하고 개인의 자유와 시민사회의 자율성, 민주주의적 지배와 같은 근대의 또 다른 가치를 무시하는 '예외 국가'적 형태였기에 이를 대표한 것은 반독재 민주화운동이었다.
이러한 분석의 결과 저자는 폭압을 뚫고 성장한 한국의 민중과 민주주의는 백인만의 민주주의인 미국, "파시즘의 유산이 질곡하고 있는 일본 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아시아의 '모범적인' 민주주의의 전형"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으로 의미 부여했다.
박정희 체제의 동의 기반이 협소했던 점은 민족주의와 반공주의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박정희 체제는 민족주의를 지배 담론으로 적극 활용했지만, 그것은 '두 개의 국민'을 지향하는 모순적인 기획, 다시 말해 '민족과 대결하는 민족주의'에 불과했다고 한다.
결론에서는 '복합적 진보' 분석틀의 정립을 강조하고 한국의 근현대 역사상 재구성 문제를 논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한국 사회 발전의 '진보적 긍정'으로 요약된다. 즉 박정희 독재는 일본이나 독일과 달리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투쟁에 의해 극복되었으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발전시켜 간 적극적 진통의 역사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 안의 보편성'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면서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로부터 도덕적으로 존경받고 모범이 될 수 있는 공동체와 개인을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와 연결되는 것으로 상정된다.
'정치와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4·19는 역사의 주인 '정신적 도장' (0) | 2010.02.06 |
---|---|
김은혜의 '마사지'와 <PD수첩>의 '오역' (0) | 2010.02.01 |
동원된 근대화 2 (0) | 2010.01.16 |
김대중: 이승만, 김일성, 박정희를 넘어선 (0) | 2010.01.05 |
2009 한국 사회를 빛낸 올해의 판결 (0) | 2010.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