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 "4대강사업은 도둑질"

2010. 6. 27. 08:04정치와 사회


강우일 주교 "4대강사업은 도둑질"

한나라 중진 "4대강은 民과 정권의 싸움. 어떻게 싸울 수 있나"

2010-06-24 07:48:41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가 23일 이명박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4대강사업을 십계명중 7번째인 "도둑질하지 마라"를 위반한 '도둑질'로 규정하며 강도높은 질타를 가했다.

강우일 주교 "하느님의 선물인 자연, 존중하고 보호해야"

강 주교는 이날 주교회의 기관지 <경향잡지> 7월호에 실은 기고문에서 '가톨릭교회는 왜 사회문제에 관여하는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천주교가 4대강사업 저지에 나선 이유를 십계명 중 7번째 계명 '도둑질하지 마라'를 들어 설명했다.

강 주교는 '가톨릭교리 교리서'를 인용해 "이 계명은 단순히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태초에 하느님이 창조한 땅과 그 자원, 자연계 전체는 온 인류가 공동 관리하도록 맡기신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모든 인간이 이를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음을 밝히는 명령"이라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인류 문명은 강에서 시작됐고, 강은 모든 생명체의 고향이고 생태계의 중심에 있다"며 "현대에 이르러 인간의 탐욕이 도를 지나치면서 강이 오염되고 말라가며 사라지고 있다. 인간이 둑을 쌓고 모래를 파가고 흐르는 물길을 막아 강의 숨통을 끊고 있다"고 탄식했다.

강 주교는 이어 "강물이 마르고 강이 고여 썩으면 생명체의 먹이사슬이 끊어진다. 그러면 인간도 생존할 수 없다"며 "그러므로 교회는 현재 4대강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공사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천주교가 4대강사업 저지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교회는 동아리가 아니다"

강 주교는 이에 앞서 천주교가 사회정의 실현에 나서야 하는 이유와 관련,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과 초연하게 산야에 묻혀 명상과 기도에만 몰두한 분이 아니다"라며 "예수님은 30여년을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살면서 세상이 차별하고 억압하고 외면한 보잘것없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시며, 위로하고 격려하신 분"이라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또 구약성경의 탈출기(출애굽기)를 인용해 “하느님은 고역에 짓눌리는 이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을 고통과 억압에서 해방시키려고 우리를 그곳으로 파견하시는 분”이라며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향해 폭넓은 시야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주교는 이어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본질적으로 피곤하고 고달픈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며 "이런 피곤함과 도전을 마다하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며 사회의 불의와 싸우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길임을 강조했다.

강 주교는 더 나아가 “교회를 세상의 불의와 고통, 연민과 수난을 마다한 채 마음 상하지 않고 지내는 인생 ‘동아리’ 정도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종교단체일 수는 있어도 진실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다"라며 사회문제를 외면하면 교회를 꾸짖기도 했다.

정운찬, 강 주교 설득하려다가 오히려 핀잔

강 주교가 의장을 맡고 있는 천주교 주교회의는 천주교 최고 의결기구로 지난 3월12일 공식결의를 통해 4대강사업 반대를 천주교 공식입장으로 결정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자 지난 14일에는 강 주교를 비롯해 최덕기 주교, 이용훈 주교 등 3명의 주교가 직접 경기도 양수리에서 열린 생명평화 미사에 참석해 가두 행진까지 벌였다.

강 주교는 당시 미사에서 “천주교 신자들도 4대강 사업을 막고 아름다운 강산을 지키자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며 4대강사업 저지가 천주교의 변함없는 공식입장임을 강조한 뒤, "정부로부터 4대강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지만 듣고 나서 더 큰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문제는 단순히 소통이나 홍보부족이 원인이 아닌 것 같다"라고 꾸짖었다.

정부는 천주교 주교회의가 지난 3월 4대강사업 저지를 선언하자 화들짝 놀라, 정운찬 총리가 강 주교가 교구장을 맡고 있는 제주로 직접 내려가 4대강사업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설득하려 한 바 있다. 요컨대 정 총리 등의 해명을 듣고 강 주교가 더욱 4대강사업 저지 결심을 굳히게 됐다는 의미다.

한나라당의 중도파 중진은 23일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세종시가 정치권 안에서 촉발되고 완결되는 문제라면, 4대강 문제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라며 "4대강은 민(民)과 정권이 부딪히는 문제다. 종교계가 다 들고 일어났다. 야당보다 더 어렵고 힘든 싸움이다. 저걸 어떻게 싸울 수 있나"라며 이 대통령의 4대강사업 밀어붙이기를 개탄했다.
김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