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적 상처와 탈식민적 전환

2010. 7. 10. 17:08정치와 사회

식민적 상처와 탈식민적 전환 — 이중의 무능력을 넘어서

‘식민적 상처’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참 싫었습니다.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상처’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피해의식도 꺼려졌죠. 더 나아가서는 그런거 다 잊어버리고 그냥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나하고 생각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니 ‘식민적 상처’라는 말을 인정했을 때, ‘식민지인’이 되어 버리는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상처’라는 말은 다시 떠올리기 힘든 기억과 같은 과거에 봉인된 어떤 ‘사건’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과거의 어떤 비가역적인 사건(식민지화)에서 연유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상처 자체는 지금도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의식하지 못한 채 매 순간 묻어두고 넘어가고 있을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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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인의 신체에서 금화를 짜내는 유럽인들 _ 약탈보다 큰 문제는 신체에 각인된 '식민성의 상처'이다. 이 상처의 진정 무서운 점은 스스로 복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체, 사고방식에 새겨진 식민성은 쉽게 극복되기 어려운 성질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근대성’과 함께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은 일간지를 펼쳐보기만 해도, 심지어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한번 훑어보기만 해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일반적 동의, 좌익과 우익의 구분법(진보와 보수의 구분법) 등 우리가 흔히 ‘일반적 상식’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모두 생소한 것들이었죠. ‘급진적’이라고 이야기되었던 ‘사회주의’마저도 우리에게는 이식된 무언가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상식’으로 사고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구화된 신체, 근대화된 사고방식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실 유럽에서 이러한 사상, 사회시스템이 개발되기 이전의 지구사회는 매우 다질적인 정치체, 다양한 사회시스템들이 공존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살던 사람들 각각이 어떤 행복을 느꼈고, 어떤 불만을 가졌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한반도에 살았던 조선인들의 정서조차도 유럽적인 척도 아래서만(봉건적 신분제 사회) 사고할 수 있는 우리는 그들과 공명하는 데 있어서도 극단적으로 무능합니다.

사실 우리의 무능력은 ‘기억’과 공명하는 데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끊임없이 생산되는 서구의 담론들을 독해하는 데서도 우리는 쉽게 무능력을 노출합니다. 일례로 들뢰즈의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용들, 직접인용이 아니라도 문장 곳곳에 스며들어가 있는 ‘철학사적 DNA’들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움츠러듭니다. 발딛고 서 있는 지적 전통이 완전히 다른 상태에서 이식된 근대, 강요된 서구화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 담론이 아무리 ‘해방적’일지라도 ‘이해하는 데’ 급급할 따름인 것이죠. 비서구인들이 늘 누군가(서구인)의 ‘제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식민적 상처’란 바로 이러한 이중의 무능력이 확인될 때 온전히 드러납니다. ‘역사’도 없고, 생산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바로 우리 자신이고, 이는 우리가 근대화, 서구화의 바깥(외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식’을 가지고 살면서, 동시에 그 상식을 생산하는 데엔 무능한 상태, 우리는 어떻게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잃어버린 기억(전통)의 복원이나 유럽으로의 완벽한 동화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식민화)을 없던 일로 돌릴 수도 없고, 까맣고 노랗고 붉은 ‘유럽인’이란 늘 ‘유사-유럽인’으로서의 분열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중요한 것은 이 근본적인 난점들이 알려 주는 점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데 있습니다. ‘식민성’의 강력한 포획장치가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사고할 때조차 ‘유럽적인 것’을 척도로 삼게 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전통으로의 복귀와 유럽으로의 동화 모두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는가, 더욱 중심을 향해가는가 하는 문제만을 생산할 뿐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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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도의 바깥, 바깥의 삶 _ 사빠띠스타 혁명군은 신자유주의적인 척도가 지배하는 공간 바깥에서의 삶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곳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그들의 무기(말)를 따라 '이탈'하는 운동(투쟁, 삶) 통해 새롭게 생성되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히려 이 단일한 척도의 바깥에 놓여 있는 ‘식민적 상처’(외부성)가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상처’로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결코 떠날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것에서 그 어떤 긍정적인 것도 나올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이죠.

‘근대성’이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유럽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역사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탈식민적 전환이 필수적이다. ‘근대성’이 탈식민화되고 미래를 향한 신화적 전진에서 벗어날 때만 대화는 가능하다.  — 월터 미뇰로 지음, 김은중 옮김,『라틴 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서문 중에서


‘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 그 속에 감춰져 있는 ‘근대성’, 근대성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져 있는 ‘식민성’은 ‘유럽중심주의’라는 단일한 척도 속에서 작동합니다. 이 작동이 멈출 때 우리는 하나의 ‘전환’을 이룰 수 있죠. 저는 사실 저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침’이나 ‘전수’와는 다른 것이죠. ‘가르침’ 받은 것으로 우리 스스로를 판단할 때 우리는 그 척도에 예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관계 속에서는 어떤 ‘우정-대화’도 일어날 수 없죠. 반대로 그 가르침에서 반대 방향으로 이탈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가르침’의 기준점에서 이탈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중요한 것은 유럽과 식민지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우리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살아 내는 것입니다. 라칸도나 정글에서 봉기한 사파티스타 혁명군이 총을 들고 싸우는 것과 동시에 세계를 향해 ‘말’하고, 그곳에서도 여전히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유럽에서 생산되는 담론들, 이를테면 ‘벗어나기’를 쉼없이 강조했던 들뢰즈의 사유와 ‘대화’ 할 수 있는 공간도 열릴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누구누구의 ‘위대한’ 사유가 아니라 ‘친구’인 누구누구의 재미있는 사유와 마주칠 수 있는 것이구요.

사는 것이 곧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움직임이 거리낌 없는 행복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운동이라면, 우리는 늘 어떤 ‘상처’와 그것을 생산하는 단일한 척도의 바깥으로 이행해가야 합니다. 그 ‘바깥’이 바로 ‘경계’를 이루는 우리 자신의 삶일테구요. ‘탈식민적 전환’은 그러한 단일한 척도 바깥에서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발명’의 다른 이름일 것이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가장 급진적인 삶, 가장 창조적인 삶으로 이행하는 ‘전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