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15일 정치권의 복지논쟁에 대해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 논쟁은 일단 접어두고 구체적 논쟁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장 교수는 이날 조선일보에 기고한 ‘무상 복지, 부자 복지’란 제목의 첫 기명칼럼에서 “물론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와 같은 기본적인 개념 논쟁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불필요하게 대립만 악화시키기 쉽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대표적 진보좌파 지식인으로 꼽히는 장 교수의 조선일보 칼럼 연재는 일찍부터 관심을 모았다. 장 교수는 대표적인 반(反)신자유주의자로 한미FTA를 반대해 왔으며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의 초청 강연에서 MB정권의 경제 정책 맹비난하는 등 친한나라당 신문인 조선일보와 다른 입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복지논쟁에서 “문제는 논쟁의 상대들이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충분히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들이 극단적인 대립관계에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기가 쉽다는 것”이라며 “최근 우리나라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복지문제가 좋은 예”라고 ‘부자복지’, ‘부유세’, ‘무상복지’ 등을 지적했다.
장 교수는 먼저 무상복지 용어에 대해 “무상(無償) 복지란 있을 수 없다. ‘무상’ 교육이나 ‘무상’ 진료를 받을 때 당장 돈을 내지는 않지만 결국은 세금으로 그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라며 “‘공구’(공동 구매)이지 ‘공짜’가 아니다”고 개념을 명확히 했다.
장 교수는 “소득세나 재산세를 안 내는 가난한 사람한테는 공짜가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들도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는 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또 “그들 중 일부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부자들까지 덕을 보는 ‘부자 복지’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며 “재산세와 같이 부자들만 주로 내는 세금이 있고 소득세같이 돈을 많이 벌수록 비율적으로 많이 내야 하는 누진세가 있는 상황에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은 복지 혜택을 받는다면 그들은 같은 상품에 대해 몇 배 돈을 더 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부자복지’를 반박했다. 부자들에게 쓸데없는 복지로 재원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많은 돈을 내고 있는 점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보편적 복지를 통해 부자들이 혜택 보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하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면 된다”고 오세훈 서울시장, 이명박 대통령의 ‘부자급식론’을 꼬집었다.
장 교수는 “이렇게 볼 때 한쪽은 누구나 돈을 내게 되는데 마치 가난한 사람은 돈 하나도 안 내고 혜택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호도하고, 다른 쪽은 혜택은 똑같이 보고 돈은 더 내야 하는 부자들이 더 크게 덕을 보는 것으로 왜곡하는 것”이라고 용어로 인한 정치권의 불필요한 논쟁 상황을 비판했다.
장 교수는 또 “개념적으로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나누어지지만 누구도 완전한 선별이나 완전한 보편성을 주장하지 않는다”며 “아무리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도 공공 초등교육에 반대하지 않으며, 아무리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도 성형수술비를 공공 의료를 통해 제공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현실에서는 두 개념이 공존하는 상황을 지적했다.
장 교수는 “재원 조달의 문제에 있어서도 부자 편을 드는 사람들도 재산세와 누진세의 필요성을 인정하니 부자들이 조금이라도 높은 세금부담을 져야 한다고 인정하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 편을 드는 사람들도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철폐하자고 주장하지 않으니 가난한 사람도 조금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인정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결국 중요한 것은 원론적으로 보편적 복지가 맞느냐 아니냐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타협을 하는 것”이라며 “어떤 질병에 대해 의료비 중 얼마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가, 어떤 수준까지의 교육이 세금을 통해 제공되어야 하는가, 노후연금은 몇 살부터 얼마나 받아야 하는가, 실업보험 급여가 실직 전 보수에 연동되어야 하는가 등 구체적인 문제가 토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세원(稅源) 조달문제도 현재 우리 소득 수준에 비해 낮은 담세율(擔稅率)을 얼마나 올려야 하는가, 직접세와 간접세의 비율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어떤 세금을 얼마나 올리고 어떤 것을 얼마나 내릴 것인가, 복지 지출을 늘리는 대신 기존 정부 지출 중에 줄일 것은 없는가 등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장 교수는 이념논쟁을 일단 접어두고 구체적 논쟁을 하라며 “그러다 보면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의 차이, 메울 수 없는 이념의 간극으로 보이던 것들 중의 많은 부분이 충분히 타협이 가능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문제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러면서 많은 분야에서 생산적인 타협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민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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