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 김대중의 '진가'를 모르고 있다"
2011. 3. 8. 15:35ㆍ정치와 사회
프레시안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DJ가 권양숙 여사를 붙잡고 통곡한 장면을 많은 사람이 기억할 것이다. 또 노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방 후 우리 국민이 가진 두 분의 진보개혁 대통령 김대중과 노무현, 두 분은 어떤 관계였나?
김성재 :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김대중대통령은 참으로 좋아했다. 나에게 '이제 내가 마음 편히 청와대를 떠날 수 있게 됐다'고, 기쁜 마음으로 퇴임을 했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이 취임 직후 대북송금 특검을 강행하자 크게 섭섭해 했다.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평생 헌신적으로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될 뿐 아니라, 보수세력에게 빌미를 주어 국가와 민족에게 초래될 불행을 염려했다.
프레시안 : 당시 반응을 들은 것을 말해줄 수 있나?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압박으로 갑자기 자살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노무현대통령은 아직 젊은데, 잘 이겨내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라도 검찰로부터 매일 모욕당하고 여론으로 압박당하는 처지에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했다." ⓒ프레시안(손문상) |
김성재 : 직접적이라기보다, 포괄적으로 얘기하겠다. 대북 특검은 정치적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DJ정부를 딛고 일어서야 된다는 정치적 생각이 있었다고 본다. 내부에서도 그런 논의가 있었다는 것도 들었다. 처음에는 (대북송금 특검을) 안 할 것이라고 했다. 국무위원도 다 반대했고, 주변 참모들도 다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특검 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김대중대통령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노대통령 최측근인 청와대 고위인사가 내게 특검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접 말했다. 그래서 내가 김대통령께 보고했다. 대통령께서 안심했는데, 뒤집어진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을 분당 했을 때 김대통령께서 정말 분노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속으로 감추고 이렇게 말했다. '김장관, 어쩌면 노대통령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그렇게 분노를 했음에도 '김 장관 그러나 우리가 참읍시다.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이 큰 틀에서는 결국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갈 거요. 한나라당에서 대통령이 됐다면 돌이킬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을 거 아뇨. 그걸로 위안을 삼읍시다' 이것이 당시 대통령의 말씀이었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자시절에 대통령께 찾아와서 대통령님의 정책을 계승할 것이라고 말했고, 대통령께서는 흡족해했다. 그러나 계승보다 판을 엎어 놓았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로 사분오열되고 분당으로 몰려가는 처지에 있었다. 그런데 대북특검을 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한나라당은 얼씨구나 하고 뭉쳐서 공격했고, 민주당과 개혁세력은 분열됐다. 결국 이것이 분당으로까지 치달렸고,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을 승자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김대중대통령께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믿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할 것을 권유했고, 정상회담 후에는 관계가 좋아졌다. 특히 이명박정부가 민주주의, 남북관계, 민생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 힘을 합쳐 이명박대통령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압박으로 갑자기 자살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고,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노무현대통령은 아직 젊은데, 잘 이겨내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라도 검찰로부터 매일 모욕당하고 여론으로 압박당하는 처지에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이 기회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사, 김대중대통령께서 얼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하고 아꼈는가를 말하려고 한다. 내가 정책기획수석을 할 때 노무현 전 의원이 부산 총선에서 낙선한 후 나를 만나자고 했다. 나는 노무현 전 의원과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같이 한 친숙한 관계였다. 인사동 음식점에서 만났는데, '김수석 내가 대통령후보로 나가려고 하는데 나를 좀 도와주소'라고 했다. 나는 '좋은 생각 같은데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했더니, '대통령하려면 국정 수행경험이 필요해요' 했다. 이후 대통령께 노무현 당시 전 의원을 만난 보고를 했다. 대통령께서 '노무현 의원은 참으로 정의롭고 소신있는 유능한 정치인이요. 앞으로 기회를 봅시다'고 했다. 얼마 후에 노무현 전 의원은 해양수산부장관에 임명되었다.
▲ "김대중정부의 복지정책은, 복지를 인권에 의한 국민의 권리로 인식해서 시민권, 사회권으로서의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따라서 김대중정부에서 복지는 분야별 복지와 함께 통합적인 경제사회정책으로 추진되었다." ⓒ프레시안(손문상) |
김성재 : 솔직하게 말하면 노무현정부는 복지에 대한 철학이 부족했고, 따라서 김대중정부의 복지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어떤 의미인가?
김성재 : 김대중정부의 복지정책은, 복지를 인권에 의한 국민의 권리로 인식해서 시민권, 사회권으로서의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따라서 김대중정부에서 복지는 분야별 복지와 함께 통합적인 경제사회정책으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노무현정부는 복지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복지를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로 생각하지 않고 지방정부로 이관했다. 국가의 책무를 방기했고 지역이 경제, 사회, 문화적 격차가 심하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지방정부의 2/3정도가 한나라당 정부라는 것도 간과했다. 그리고 지방의 복지재벌, 토호세력들이 정치권과 결탁하고 정부 지원예산을 거의 독식하고 있다는 현실도 외면했다.
그리고 노무현정부가 복지예산을 많이 증액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복지예산 총액에 당시 건교부 서민주택 예산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의 일반 예산에서의 복지예산은 줄었고, 기금 등의 특별예산으로 일부 보충됐다. 특별예산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기금 운용에 따라 언제든지 가변적이 된다. 특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할 때, 인권의 원칙에 근거하지 않고 재정의 한계선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장애인 차별에 대한 시정 권리가 축소되어 이 법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계는 노무현정부를 비판하고, 이 법이 통과된 직후부터 개정운동을 시작했다. 보육도 시장에 맡겼고, 의료민영화도 추진하려고 했다. 그래서 시민, 복지단체와 장애인계로부터 노무현정부는 복지를 도리어 후퇴시켰다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한편 재벌과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업종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한 규제를 풀었고, 한미 FTA도 강행하려 했다. 결국 안타깝게도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정부의 길을 닦아 준 셈이 되었다.
프레시안 : 김 관장은 DJ정부 시절 복지와 관련해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복지정책을 놓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까지 들어와서 갑론을박 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 코멘트를 하신다면?
김성재 :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에 관심을 가진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발표된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정책은 안타깝게도 무늬만 복지이고, 속빈강정 같은 그야말로 포퓰리즘의 전형 같다. 진정성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과거와 달리 변화된 시대와 우리 현실에서 복지를 말하려면 인권에 의한 복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려는 공동체정신과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복지는 소득보장 한 분야만이 아니라 의료, 교육, 주거, 일자리 등 통합적인 사회정책으로써의 복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때문에 복지인식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 정책팀이 발표한 것을 보면, 재원문제는 둘째치고 여전히 과거적이다. 특히 생애주기별 복지라는 것은, 현재도 영유아복지와 노인복지가 서로 중요성과 재원 면에서 우선순위의 정치적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통합이 아니라 연령별, 세대별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으로 복지보다 반사회정책으로 귀결될 우려를 갖게 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 훌륭한 복지정책을 제시하면 좋겠다.
프레시안 : 김대중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시대를 산 정치인인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화시대에 정치를 시작했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통 사람들과의 교감 능력이 탁월했다. 게다가 자살이라는 비극적 최후를 택하면서 일반인들의 정서 속에서 김대중보다는 노무현에 대한 감정이 울림이 훨씬 큰 것 같다. 어떻게 보나?
김성재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극적이고 비극적이어서 국민들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크다고 본다. 또한 소탈했던 인간미에 대한 향수가 있다. 탈권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의 역사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재단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고 연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대중 도서관과 상호 협동을 하나?
김성재 : 그렇다. 도서관에 자주 찾아오기도 한다. 여기서 정책 토론회도 한다.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을 처음 만들 때도 같이했다. 나는 노무현정부의 공과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하려고 했다. 잘 못한 것은 극복하고 잘 한 것은 더 발전시켜 가야 노무현대통령의 역사가 산다. 김대중대통령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찬양가도, 잘못된 비판도 삼가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 김 관장과 인터뷰하면서 느낀 느낌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우리는 아직 김대중이라는 정치 지도자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가 될 것 같다. 아직도 박정희 시대라는 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고, 일부 민주화 됐지만 박정희 시대를 완전히 극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 김대중 도서관이 해야 할 역할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 계획은 어떤 것인가?
▲ 이야기 나누는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와 김성재 김대중도서관장 ⓒ프레시안(손문상) |
김성재 : 사실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대통령의 진면목을 잘 모르면서 겉으로, 정치적으로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김대중대통령의 책도 제대로 보지 않고, 심지어 자서전도 정부여당 사람들이 더 많이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김대중대통령 서거 이후 김대중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한 달 평균 1500명 정도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다. 방문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전시관을 둘러보고 김대중대통령을 다시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역사가는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사후 10년이 지나야 한다고 말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김대중대통령의 진가는 더욱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의 특별기획으로 올해 8월 김대중대통령 서거 2주기 때 학술 심포지엄과 '김대중연보'를 발간할 계획이다. 3년 동안 준비했는데, 항목으로는 약 2만 정도,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연보이다. 김대중대통령이 일생동안 만난 중요한 사람들의 이름이 거의 수록되어 있다. 이 연보를 보면 대통령께서 언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작년 말부터 준비를 했는데, 김대중전집을 5개년 계획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그동안 나왔던 전집과 30여권의 단행본 그리고 출판되지 않았던 국회발언록, 강연원고, 인터뷰 내용 등과 사진 자료들도 모두 포함시킬 계획이다. 또한 국내외적으로 교류 및 공동연구 제안도 상당수 있어 적극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다. 김대중도서관의 본래 목적사업인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빈곤퇴치를 위한 김대중평화아카데미 등의 제반 연구, 교육 사업들도 지속적으로 할 것이다.
프레시안 : 그런 사업을 하는데 국고 지원은 있나?
김성재 : 전직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해 매칭펀드 방식으로 일부 지원받고 있다. 김대중대통령께서 재임 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화해 차원에서 기념관 건립을 위해 200억을 지원했는데, 최근 다행하게 기념도서관이 건립되고 있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념관도 지어지고, 노무현 전 대통령 측도 기념관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 11월 2일 개관 7주년을 기념해서 전직대통령 기념관, 도서관의 역사적 필요성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많은 관심과 호응이 있었다. 전직 대통령기념관들이 건립되면 대통령 정치문화도 발전되고, 대통령을 하려는 사람들도 국민과 역사를 의식해서 더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도서관은 연세대 자율운영기관이기 때문에 대학본부에서 건물유지 및 관리비만 지원해주고 모든 프로그램과 사업은 후원금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돈이 없어서 할 일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을 제대로 하면 필요한 재원은 충당된다. 감사한 것은 자발적인 후원회원들이 약 1000명 있고, 직원들도 적은 인원수이지만 김대중대통령의 뜻을 이어서 펼쳐간다는 사명감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다. 관심을 가져준 프레시안에도 감사한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정치와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아직 김대중의 '진가'를 모르고 있다" (0) | 2011.03.08 |
---|---|
"우리는 아직 김대중의 '진가'를 모르고 있다" (0) | 2011.03.08 |
"DJ는 이미 1987년에 강력한 노벨평화상 후보였다" (0) | 2011.03.08 |
장하준 복지론 (0) | 2011.02.21 |
민주화의 상징, 함세웅 신부 (0) | 2011.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