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새에 관한 명상

2012. 9. 22. 08:02자연과 과학

철새계의 철인, 200시간을 쉼없이 날다

등록 : 2012.09.21 21:12수정 : 2012.09.21 21:12

새만금 간척 이후 국내 최대의 도요·물떼새 도래지로 떠오른 금강 하구 유부도에서 지난 15일 도요새 무리가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다. 군산/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물새팀장 제공

[토요판/생명] 유부도에서 만난 도요새

▶ 승객 500여명과 연료 240t을 실은 412t 무게의 쇳덩어리인 보잉 747기가 태평양을 횡단하는 걸 신기하다고 느꼈다면, 큰뒷부리도요는 존경의 대상이 될 만하다. 이 새도 몸의 절반을 연료인 지방으로 채우고 태평양을 종단한다. 그러나 독수리처럼 활공할 넓은 날개도, 물 위를 헤엄칠 물갈퀴도 없는 이 새는 200시간 동안 쉬지 않고 날갯짓을 하는 무서운 인내력을 지녔다.

가장 멀리 나는 큰뒷부리도요
알래스카서 뉴질랜드까지
해마다 태평양 건너 왕복비행
도중에 서해로 와 먹이 비축

논스톱 비행 신기록 ‘E7’
8일 동안 1만1680㎞
영화로 만들어진 ‘얄비’는
4년 동안 지구~달 거리 중
3분의 1 정도를 날아

새만금 갯벌이 망가진 뒤 우리나라 최대의 도요·물떼새 도래지가 된 금강 하구 유부도에 “뿅~뿅~뿅~” 하는 청다리도요의 맑은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갯벌에는 밀물에 쫓기면서 도요새들이 바삐 먹이를 찾고 있었다. 몸이 작은 좀도요, 민물도요, 물떼새는 종종걸음을 치며 작은 갯가생물을 잡았고 긴 부리를 지닌 도요들은 느긋하게 갯벌 속에 숨어 있는 갯지렁이와 게를 노렸다. 갑자기 도요새들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더니 휙 각도를 바꿔 갯벌로 스며들었다. 맹금류인 새홀리기 한 마리가 갯벌의 평화를 깼다.

“도요새를 날리지 마세요.”

지난 15일 도요새 탐사에 나선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의 오동필 물새팀장이 참가자들에게 당부했다. 도요새들이 이곳에서 충분히 먹이를 먹어 지방을 얼마나 비축하느냐가 삶과 죽음을 가르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깃털이 두드러지는 붉은어깨도요는 대표적인 피해자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서 5400㎞를 날아 황해에 도착해 ‘급유’를 한 뒤 다시 시베리아 북부 툰드라로 날아가 번식하는 이 도요새는 중간 기착지인 ‘새만금 주유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전세계 개체수의 20%가 줄었다.

이런 장거리 이동 도요새가 수천㎞를 비행한 끝에 내려앉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 오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흑꼬리도요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논스톱으로 날아오는데 내려앉기 전 ‘뾰~뾰~뾰~’ 하는 소리를 집단으로 내면서 선회합니다. 긴 여정이 끝나고 이제 다 왔다는 신호겠지요. 그러곤 너무 힘들다는 듯 죽은 듯이 앉아서 쉽니다.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죠. 하지만 무척 허기진 듯 먹이가 눈에 띄면 우선 먹습니다.”

흑꼬리도요의 친척인 큰뒷부리도요는 진정한 장거리 여행자이다. 자신의 신체 구조까지 바꿔 가며 장거리 비행에 극단적으로 적응했다.

큰뒷부리도요는 지금 이 시각 태평양을 세로로 건너질러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로 비행하고 있다. 1만㎞가 넘는 이 망망대해를 8~9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 한숨 자지 않고,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쉬지 않고 날갯짓을 한다.

조류 연구자들은 일찍부터 이 새의 대양 횡단을 짐작하고 있었다. 8월 말부터 알래스카에서 이 새가 사라진 뒤 뉴질랜드에서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리에 식별표지를 붙인 큰뒷부리도요가 가을철 아시아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혹시 이들이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에서 쉬었다 가는 건 아닐까. 그러나 이동로에 위치한 하와이제도 위로 해마다 10만마리의 큰뒷부리도요가 지나가지만 지난 35년 동안 이 섬 안에서 목격된 개체는 40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새의 장거리 이동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2007년 나왔다. 미국 국립지질조사국 조류학자들은 피부 밑에 건전지 크기의 무선송신기를 삽입한 큰뒷부리도요 9마리를 알래스카에서 날린 뒤 인공위성으로 이들의 경로를 추적했다. 이들의 놀라운 대양 횡단 비행 궤적은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알려졌다.

이때 세계 최장거리 비행 기록을 세워 유명해진 큰뒷부리도요가 ‘E7’이었다. 8월30일 해가 지기 2시간 전 이륙한 이 새는 8일 동안 1만1680㎞를 쉬지 않고 날아 9월7일 저녁 뉴질랜드 피아코강 어귀의 습지에 착륙했다. 평균 시속 60㎞의 속도로 지구의 반대편으로 비행한 것이다.

큰뒷부리도요를 주인공으로 한 자연 다큐로 다음달부터 전국 극장에서 개봉될 부산경남 민방(KNN)의 <위대한 비행>에는 2만7000㎞에 이르는 알래스카~뉴질랜드~서해~알래스카 여정을 4번 완수하고 지난해 죽은 ‘얄비’ 이야기가 나온다. 4년 동안 얄비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 중 3분의 1을 난 셈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이 도요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알래스카 유콘강 하구에서 배를 채워 ‘공처럼’ 뚱뚱해진다. 출발 직전 레이더 기지와 충돌해 죽은 큰뒷부리도요 수컷을 조사한 결과 몸무게 367g 가운데 201g이 지방이었다.

장거리 이동 도요새는 몸무게의 절반을 지방으로 채우고 이를 태워 얻은 에너지로 비행한다. 도착지에서 몸무게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 결과 이들 도요새에게는 몸의 조직과 장기가 변하는 극단적 생리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긴 여행을 떠나기 전 최대한 많은 지방을 몸에 채우기 위해 비행 동안 불필요한 소화기관 등의 장기는 가능한 한 축소시킨다. 앞서 출발 직전 죽은 도요새의 가슴 근육은 한쪽이 27g이나 됐지만 간은 7g, 콩팥은 한쪽이 1.5g에 지나지 않았고 위장은 텅 비어 있었다.

대표적인 장거리 비행 도요인 붉은어깨도요(위쪽)와 부리가 위로 약간 구부러진 큰뒷부리도요가 서해 갯벌에서 먹이를 먹고 있다. 군산/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물새팀장 제공
중간 기착지에 도착하면 신체는 다시 극적으로 변화한다. 심장, 다리 근육, 콩팥, 위, 간, 창자가 다시 커진다. 하지만 출발 직전엔 다시 지방에 공간을 내주고 움츠러든다. 이런 생리변화를 보고한 네덜란드 과학자의 논문 제목은 ‘위장은 날지 않는다’였다.

큰뒷부리도요는 비행 중 필요한 수분을 지방을 분해해 충당하며, 잠은 고래 등 해양동물처럼 뇌의 절반씩 가수면 상태에 빠지는 식으로 자는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대양을 가로지르는 비행이 새의 강인함과 인내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큰뒷부리도요는 위도에 따라 적어도 5가지 다른 바람을 이용한다. 특히 출발 때는 알류샨 저압대의 주기적 폭풍을 타는데, 순풍을 받아 1000㎞ 거리를 시속 144㎞까지 속도를 낸다.

이정표나 지형지물이 있을 리 없는 대양에서 이들은 낮에는 태양의 편광을 보고 밤에는 별자리를 이용해 2000~5000m 상공을 난다.

큰뒷부리도요는 해마다 가을철 번식지인 알래스카에서 월동지인 뉴질랜드로 이동하지만, 반대로 봄철엔 태평양을 횡단하지 않고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을 들러 알래스카로 가는 우회로를 택한다. 그 이유로는 남행길과 달리 북행길엔 바람을 활용할 수 없고, 중간에 두둑하게 지방을 축적하고 번식지에 도착하는 것이 유리하며, 만일 지방층이 고갈되더라도 4000㎞ 거리엔 ‘비상착륙’할 곳이 전혀 없다는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행길에선 지방이 고갈된 큰뒷부리도요가 마지막 1600㎞ 비행을 포기하고 뉴칼레도니아에 착륙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박진영 국립환경과학원 박사는 “붉은가슴도요, 꼬까도요 등 도요새도 장거리 이동을 하지만 큰뒷부리도요의 예는 아주 극단적인 이동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군산/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