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쌍용차 사건,의자놀이

2012. 9. 26. 16:06정치와 사회

사회

미디어

기자 수백명이 못한 일을 작가 한 사람이…

등록 : 2012.09.25 21:05 수정 : 2012.09.25 21:05

성한표 언론인

[미디어 전망대]

‘기자 수백 명이 못한 일을 작가 한 사람이 해냈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다룬 작가 공지영씨의 르포르타주 <의자놀이>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한 직장에서 일했던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3년 동안 22명이나 목숨을 잃었는데, 서울 도심 대한문 앞에만 가면 천막 치고 노숙하던 그들을 언제든지 볼 수 있었는데,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를 자문하기도 했다.

 

지난 6월 중순 <한겨레> ‘미디어 전망대’에 글 한 줄을 남기긴 했다. 쌍용차 사태의 후속 보도에 소홀한 기자들을 나무라는 글이었다. 나도 기자 출신이니, 후배들을 닦달하기 전에 스스로 르포 같은 걸 쓰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일 뿐, 잡다한 세상일에 매몰되어 쌍용차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을 때쯤 발간된 <의자놀이>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것이다.

 

공 작가는 책이 나온 바로 그날(8월6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나와 “언론이 하도 소설을 써서 (작가인) 내가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보수언론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마치 자기네들만 살려고 하는, 이기적인 노동귀족으로 몰아갔는데, 이 모든 것이 다 허구”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작가가 말하는 ‘소설’은 물론 일부 언론의 의도적인 왜곡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에서도 우리는 용역과 경찰의 공격에 비해 노동자들의 저항이 더 과격하게 비치는 현장 사진을 자주 봤다. <의자놀이>는 왜 그런 사진이 찍힐까를 설명하고 있다. 현장에 있던 한 노동자의 증언을 인용한 대목이다. “경찰과 용역, 그리고 회사 관리자들이 한 조가 되어 (강철 볼트를 장전한) 새총을 쏘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사람들이 흩어져 숨더라고요. 왜 그러나 봤더니 잠시 후 방송 헬기가 날아왔어요. 경찰이 용역들에게 방송 헬기가 뜬다는 걸 알려준 거죠. 헬기가 가고 나니까 다시 총을 쏘더군요.” 그 방송사 카메라가 잡은 영상에는 (새총에 저항하던) 노동자들의 이상한(?) 몸짓만 담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의자놀이>가 가져온 사회적인 반향은 참으로 컸다. 쌍용차 사태를 파헤치는 국회 청문회가 열렸고, 종교계를 대표하는 33명이 모여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100일 국민실천’을 제안하기도 했다. 청문회의 증언과 자료들을 통해 몇 가지 사실도 드러났다.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은 2009년 쌍용차 노사 협상 타결이 임박한 것을 알고도, 상부 지시까지 무시한 채, 권총형 전기충격기(테이저건) 등으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를 투입했으며, 중국 상하이차가 쌍용자동차에서 철수한 이유가 경영 위기가 아닌, 검찰의 기술 유출 수사 때문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사실들이 일부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성과를 거뒀지만, 청문회 묵살이라는 보수언론의 차단벽을 뚫고, 쌍용차 사태의 해결이라는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에는 역부족이다. 어떤 논설위원이 청문회의 실마리가 된 <의자놀이>를 칼럼으로 비아냥거릴 정도로 보수언론의 쌍용차 알레르기가 극심하다. 공지영씨는 “제발 저 같은 소설가는 꼭 다음에는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이 (국정조사와 추적보도 등을) 많이 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제 기자들이 ‘기사’로 이어갈 차례다.

성한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