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창시자 / 대니얼 카너먼3

2014. 3. 15. 16:07경영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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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
주류 경제학 ‘구멍’ 파고든 ‘행동경제학’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 美 프린스턴대 교수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대니얼 카너먼(왼쪽)은 인간의 의사결정 편향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했다.

이몽룡은 춘향전자의 주식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에 따라 주식을 5000만 원어치 사들였다. 하지만 이 정보는 완전히 틀린 것이었고 춘향전자 주가는 쭉쭉 떨어져 이몽룡의 5000만 원은 반으로 줄었다. 주식이 휴지조각이 될 위험을 피하려면 당연히 지금에라도 손절매를 해야 하지만 이몽룡은 주식을 구매할 당시의 가격 5000만 원과 현재 가격 2500만 원의 차이에 따른 손실(2500만 원)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편향된 논리에 따라 그는 처음에 자신이 주식을 구매했던 것이 올바른 판단이며 이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주식 가격이 하락해도 계속 보유하려 하며 자신의 행동이 이성적이라고 여긴다. 결국 춘향전자의 주가는 더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그는 더 큰 손해를 입고 만다.

자기 과신의 오류

즉 손실 회피 성향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지닌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거나,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이지 않거나, 자신의 판단에 따른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주가 하락기나 부동산 하락기에도 과거의 성공 경험이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며 위험한 투자를 즐기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운전사에게 ‘자신의 운전 능력이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보면 90% 이상이 ‘나는 평균 이상으로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답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인간의 ‘낙관주의적 편향’의 좋은 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믿는다.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미국 중소기업이 5년 동안 생존할 확률은 35% 정도다. 하지만 중소기업 경영자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이 큰 성공을 거둘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느냐’고 물어보면 60%가 ‘상당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답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기업 인수합병(M·A) 때 인수 기업이 피인수 기업을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사들여 시너지 효과는 달성하지 못한 채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는 상황을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고 한다. 승자의 저주 또한 낙관주의적 편향으로 인한 인간의 비합리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인수 기업의 경영자가 피인수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 훨씬 비싼 가격을 지불한 데는 ‘저 기업을 내가 경영하면 훨씬 큰 성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과신 때문이다.

카너먼 교수는 “사회적으로 비관주의보다 낙관주의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불확실성보다 자신감이 더욱 인정받기 때문에 자기 과신의 오류가 나타난다”며 “이를 누그러뜨릴 수는 있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게 대다수 인간의 특성”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과신의 오류 또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때가 많다. 많은 개인 투자자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의 돈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이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몇몇 펀드매니저가 포함된 주가 예측실험을 보면 정확도가 47%에 불과했다. 이는 동전 던지기를 해서 나온 결과 50%보다 못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기예측의 정확성에 65%의 신뢰도를 보였다. 자신의 판단능력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사건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뿐 아니라 위험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다.

행동경제학의 의의

인간은,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활동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경제학은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자연과학 학문 위주로 수여되는 노벨상에 경제학이 신설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너먼 이전의 경제학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가장 관련이 깊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다소 단선적이고 표피적으로 바라봤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니 다양성이 부족했던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경제학자도 아닌 외부자가 주목할 만한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은 것만으로도 카너먼 교수의 업적은 작지 않다. 그의 이론은 경제학이라는 거대한 학문의 물줄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인간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행동경제학은 이미 상당수 기업과 정부, 각종 조직이 활용하고 있으나 광범위한 학문 연구가 진행된 것은 2002년 카너먼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이후부터다. 이제 10년 정도밖에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기에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달리 말해 행동경제학 연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경제학, 심리학, 경영학 등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큰 영감을 줄 여지가 크다는 뜻도 된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인간의 오류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너먼 교수는 인간의 의사결정 인자를 2개로 나눈다. 그는 ‘빠른 직관과 즉각적인 반응’으로 구성된 시스템 1과 ‘정확하지만 느리고 게으른 이성’이 지배하는 시스템 2가 우리의 두뇌 속에서 상호 작용한다고 말한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하다.

누구나 시스템 2의 영향 속에 있기를 바라겠지만 실제는 그 반대다. 카너먼 교수는 시스템 1, 즉 직관이 인간의 판단과 생활을 지배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고 단언한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장점을 모두 혼합한 결정, 즉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소 맥 빠지는 대답이지만 그는 “어떤 선택을 할 때 속도를 줄이고 시스템 2에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한다. 천천히 생각하고, 질서정연한 절차를 부과하는 힘을 연마하라는 뜻이다. 너무 뻔한 대답이라고? 진실은 언제나 가장 통속적인 법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