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균 서울대 교수] 민중의 벗·스승이었던 진보 '느티나무'

2014. 12. 1. 09:53정치와 사회

[김진규 서울대 교수] 민중의 벗·스승이었던 진보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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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벗·스승이었던 진보 '느티나무'

기사입력 2004-02-16 10:12 |최종수정2004-02-16 10:12
[오마이뉴스 조호진 기자]
"진보진영 인사들에게 빛을 주신 분" 오종렬 상임의장은 김 교수를 이렇게 표현하면서 죽음을 애통했다. 김 교수가 생전에 술을 좋아했다며 술을 따르는 오종렬 상임대표.
ⓒ2004 오마이뉴스 조호진
고 김진균 교수 약력

1937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고 김진균 교수는 1961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한 뒤 1968∼1974년까지 서울대 상대 교수를 거친 뒤 1975년부터 2003년 2월까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1980년∼1984년까지 4년 동안 해직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84년 진보적 학자들과 함께 산업사회연구회(현 산업사회학회) 설립을 주도하면서 변혁운동의 이념적 토대를 쌓았으며 1988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을 맡았다. 이어 전노협 고문 및 후원회공동대표(1990년∼1995년), 사회진보연대 대표(1994년∼2002년), 민주노총 지도위원(1995년∼2004년), 민중연대 고문(2002년∼2004년), 전태일 기념사업회 고문(2003년∼2004년)을 맡는 등 진보진영에서 중심 역할을 해왔다.

고인의 주요 저서로는 '비판과 변동의 사회학(1983년)', '사회과학과 민족현실 Ⅰ·Ⅱ(1988년·1991년)', '근대국가와 민족주의(1995년)', '한국의 사회과학과 학문의 과제(1997년)' 등이며 '혁명의 사회이론(1984년)', '조직사회학(1987년)' 등을 공동 편역했다. 특히 1999년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를 맡아 인터넷 언론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

지난 14일 향년 67세로 별세한 김진균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진보진영의 동지들과 생전에 그를 따르던 후학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고인은 일생을 민중의 벗으로 살았으며, 진보진영에서는 전체를 아우르는 커다란 느티나무로 불렸었다.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언론노조, 서울대민교협, 노사정위원회, 상지대학교 등 각계각층이 조화를 보냈으며, 사노맹동우회 조화도 눈에 띄었다.

14·15일 이틀 동안 이소선 여사, 오종렬 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손호철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대표, 김대환 신임 노동부장관, 한명숙 환경부장관, 정범구 민주당 의원, 이우재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조문을 하고 갔다.

고 김진균 교수 장례위원회(장례위원장 백낙청, 홍근수, 오세철, 오종렬, 권태환, 권영길, 손호철, 이수호, 정광훈)는 '민중의 스승 고(故) 김진균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명칭을 정하고 4일장을 지내기로 결정했다. 17일 오전 10시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영결식 및 노제를 지낸 뒤 이날 오후 2시께 마석 모란민중공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고 김진균 교수의 유족으로는 부인 정혜영(65) 여사와 아들 태진(39), 영진(38)씨, 딸 지인(34)씨 등 2남 1녀이며 같은 서울대 동교 교수이자 진보학자인 김세균(57)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고인의 친동생이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예식장 5·6호실이다.(02-760-2018)

"나침반 역할을 하면서 운동진영을 하나로 만든 큰 어른"

김 명예교수를 기리는 추모의 발길이 장례식장과 진보네트워크 참세상에 마련된 추모 홈페이지(bulnabia.jinbo.net)에 줄을 잇고 있다. 진보진영 인사들은 이론적 토대구축과 함께 운동진영 통합에 애를 쓴 삶을 추모했고, 후배 교수들은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했던 모습을 회상했다. 다음은 김 교수에 대한 추모의 말이다.

오종렬 상임의장 = "15년 전인 89년 5월 전교조 결성 과정에서 고인을 처음 만났다. 고인은 고난의 길을 가는 진보진영 인사들에게 빛을 주셨고 할 일도 많은데 홀연히 떠나셔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장례위원에 들어갈 때 소름 끼쳤다" 김 교수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외면하는 한국사회에 대해 분노했다.
ⓒ2004 오마이뉴스 조호진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 = "사회주의 몰락 등 운동진영이 혼선을 겪을 때 선생님께서는 나침반 역할을 하신 진보학계의 대부였다. 그리고 운동의 경향성을 너른 품으로 보듬어 운동진영을 크게 하나되게 만드는 역할을 한 큰 어른이면서도 성격은 매우 소탈했던 어른이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장관 = "항상 진지한 자세로 모범을 보여준 선배님이었으며 특히 제자와 후배들에 대한 사랑이 깊었다. 예전에 내가 쓴 글을 읽으시고 직접 코멘트 해주시고 관련된 글까지 주신 기억이 난다."

손호철 민교협대표 = "느리지만 확실하게, 조용하고 꾸준하게 일하면서 한길을 걸어오시면서 학술운동, 교수운동의 큰 버팀목이셨다. 민중운동 진영의 일부 인사들이 정치권력을 가까이 하는 상황에서도 고인은 흐트러짐 없이 진보적 입장을 지켰다."

이우재 열린우리당 의원 = "4.19운동과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에 함께 한 동지이자 한 동네에서 함께 살았던 절친한 친구였다. 인격적으로 성실한 친구였는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수고한 고인의 뜻을 남은 사람들이 이어받아야겠다."

이애주 서울대교수 = "고인께서는 민족을 생각하는 관점이 깊을 뿐 아니라 몸소 실천하신 스승이셨다. 민교협 초창기 당시 정신적인 지주였으면서도 후배들에게 따뜻하게 해준 품이 넓은 선배님인데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이상길씨는 추모 홈페이지에 고인과 나눈 잔잔한 모습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올렸다.

"불나비 사랑"을 멋지게 부르셨던 선생님. 막걸리도 좋아하셨던 선생님. 진보네트워크 칼럼에서 "수제비" 일화와 많은 가르침을 남겨주신 선생님. 그리고 또, 우리 일하는 젊은 친구들을 너무나 사랑하셨던 선생님. 작년에 자그마한 오피스텔형 연구실을 개소하며 찍은 동화상을 보며, 이제부터는 선생님. 천천히 천천히 쉬어 가시면서 한편으로는 그 동안의 연구서들를 정리하시면서 이 한국사회의 큰 문제점과 그 해결책을 단 한 권으로 잘 만들어 주시리라 기대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일찍 훌쩍 떠나 버리시는군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 줄을 잇고 있는 추모의 발길. 4일장을 지낸 뒤 마석 모란민중공원에 안장된다.
ⓒ2004 오마이뉴스 조호진
김 명예교수의 후배들은 지난해 1월 정년기념논총 헌정사에서 "김진균 교수는 행동하는 지성의 표본이며 진보 학술운동과 민주 교수운동의 대부였다"면서 "선생님은 아카데미 안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민중운동의 한복판에 계신, 진보 사회학도들의 스승이기에 앞서 민중의 벗이었다"고 그의 발자취를 높이 평가했다.

4.19세대인 그는 30여 년간 진보학계와 민중운동의 중심활동을 하는 동안 사회주의 몰락과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닥쳤지만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로 진보진영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는 지난 2000년 대장암 진단을 받은 뒤에도 진보네트워크 참세상에 '불나비'라는 필명으로 활발하게 칼럼을 쓰면서 노동자들의 권익향상을 주장했다.

"행동하는 지성의 표본, 진보 학술운동과 민주 교수운동의 대부"

그는 극한 상황에 몰린 노동자와 농민운동가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을 고통스러워하면서 '분신을 투쟁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수구언론과 자본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지난해 12월 18일 '장례위원'이라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글에서 이 같은 고통이 드러나 있다.

"(상략) 올해 배달호, 김주익, 곽재규,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 노동자들이 분신으로 떠났고 멕시코에서는 농민운동가(고 이경해) 한 분이 자살했고 김승훈 신부가 떠났고 이주노동자들이 숨어 다니다가 올데 갈데가 없어서 죽었다.(중략) 한국사회가 사람 목숨을 이렇게 가볍게 대접하는가? 살아 있어서 절규하는 이야기를 왜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는가? 내가 장례위원 명단에 들어갈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그가 타계한 14일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전 노동자 박일수(50)씨가 '비정규직 차별철폐'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살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 노동자 유석상(45·의장2부)씨가 산재치료중인 병원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자본과의 대립 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그가 떠난 그 순간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월 정년퇴임 및 출판 기념회에서 "전 세계가 자본주의 획일적 체제에 편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와 일반 민중은 불안정한 삶에 내몰리고 있다"면서 "80년대 중반 민중-계급론을 도입하여 민족사회학 내지 민중사회학 구성을 위해 노력했던 긴장을 지금도 놓칠 수 없다"며 후배들에게 학문과 실천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기완 고문은 '김진균 교수님 영전에'라는 제목의 조시(弔詩)에서 "악랄한 자본 축적이/ 역사 진보로 둔갑하고/ 중략 / 학문은 이긴 자의 쓸모로 강요되는/ 이 허무의 한복판에 떡하니 나서/ 학문할 바, 창조할 바, 세계진보의/ 실체를 디리대던 선생이시여/ 중략 / 밤을 찢어발기는 싸움은/ 한 점 이슬로 남는다더니 그냥 그렇게 한 점 이슬로 가시는 겁니까"고 애통해 했다.

/조호진 기자 (tajin@ohmynews.com)

 


덧붙이는 글
민중의 스승 故 김진균 선생 민주사회장

장례일정 : 2월 17일(화) 발인식 8시 3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영결식 10시 대학로

하관식 13시 30분 마석 모란 민중공원

고문

가재영 강만길 강민조 강순정 강신석 강창덕 강희남 고영복 고은 곽태영 구중서 국순옥 권오헌 김광렬 김규철 김금수 김낙중 김병권 김병태 김상기 김상일 김선분 김선적 김승균 김시업 김영옥 김용수 김우창 김윤수 김재봉 김준기 김중배 김지하 김채윤 김현 김흥현 나창순 남상헌 노수희 노정선 단병호 도강호 류금수 류종완 리영희 문경식 문규현 문대골 문병란 문정현 민영 박경서 박덕신 박상증 박순경 박순희 박영신 박용길 박정기 박정숙 박창균 배다지 배영동 배은심 배종렬 백기완 법타 변형윤 서경원 성대경 송기숙 송재소 신경림 신용하 신인령 신창균 안병직 안재구 여정동 영공 원경 이갑용 이강립 이관복 이광우 이규재 이규환 이돈명 이동환 이만갑 이만열 이문교 이상희 이세춘 이소선 이우성 이원보 이이화 이재판 이정이 이종린 이준우 이지형 이천재 이필두 이해동 이해학 이호철 이효재 임기란 임방규 임재경 임형택 장두석 장을병 장회익 전창일 정운찬 정지영 정창렬 정효순 조순 조찬배 주종환 지선 진관 진병호 천영세 청화 최상원 최열 최영도 최현오 최형 최홍기 하일민 한기명 한상렬 한완상 함세웅 현기영 황건 최병모

장례위원장: 백낙청 홍근수 오세철 오종렬 권태환 권영길 손호철 이수호 정광훈

집행위원장:박석운 서관모 이석행 이종회 한충목

의전위원회(홍성태 한준 백승욱 안정옥 이인규) 재정위원회(최갑수 조형근 현민) 총무위원회(박하순 송유나 박준도 오병일 장여경 황규만 김지희 이은희 신배현경 이현대 홍석만 류의선 이상훈 호성희 이종훈 ) 문예위원회(신재걸 박선봉 이은진 김천일 최도은 유영주 허성호 박원종) 운구위원회(오길성 김태현 오건호 이창근 노중기 장세훈) 치산위원회(정근식 박무영) 홍보위원회(장대현 주제준 최영옥 정영섭 임필수 조선희) 대협위원회(김정근 박석민)

장례위원

<학계>

강남훈 강내희 강명구 강신준 강인순 강정구 강치원 강희경 계승혁 고갑희 고순희 고철환 고형일 고홍석 공제욱 곽노현 구승회 권광식 권기철 권인호 김광철 김귀옥 김기택 김누리 김도균 김동민 김동우 김동춘 김명환 김문봉 김민수 김부기 김상곤 김상조 김상환 김서중 김석준 김선건 김성구 김수행 김순태 김승석 김영규 김용익 김윤자 김은영 김의수 김인 김인걸 김인재 김재훈 김정호 김정훈 김종엽 김준 김진업 김창호 김한성 김해룡 김현철 김형국 김형조 김호기 김홍명 김환석 김희성 김희숙 나간채 남구현 남기곤 남동신 남춘호 노중기 노태구 도지호 도진순 류종영 문성학 문진영 문현병 박거용 박경 박경태 박광석 박광준 박노영 박병덕 박사명 박상환 박성수 박순성 박승희 박영 박영근 박오복 박재우 박정근 박정원 박준식 박태호 배경환 배영동 백도명 백수인 백수임 백승욱 백원담 백일 백좌흠 백창제 서강목 서윤석 서종문 서창원 서창호 서충남 성낙돈 손명환 손혁재 손현숙 송규범 송동윤 송석홍 송영배 송주명 송태복 신광영 신동하 신병현 신양균 신원철 신인령 신정완 신현준 심광현 심상완 안경환 안병덕 안삼환 안상헌 안정옥 안현수 양동휴 양재혁 양태순 양해림 염무웅 오건호 오명석 오수성 오순희 오영희 오용록 오유석 오제명 원석조 원인성 위상복 유명숙 유병제 유세종 유일상 유제호 유철규 유초하 유팔무 유홍림 윤덕홍 윤상철 윤수종 윤영삼 윤진호 윤찬영 이광택 이기홍 이남주 이두범 이민환 이병창 이병천 이병혁 이병훈 이삼열 이상영 이성균 이성대 이성백 이성원 이성철 이세영 이순근 이시재 이애주 이양희 이영식 이영호 이용구 이은진 이일영 이재봉 이정희 이종구 이종수 이종숙 이종오 이중호 이지만 이지원 이창수 이창호 이철 이필렬 이해영 이헌석 이헌창 이현주 이호창 이화영 임경훈 임동욱 임승달 임영일 임종대 임춘성 임호일 임홍배 장상철 장세훈 장시기 장재성 장지상 장하성 장하진 장회익 전민구 전성우 전종일 전형수 전형준 전효관 정건화 정긍식 정대화 정동현 정영태 정운찬 정이환 정일준 정진상 정태석 정학섭 정해구 조국 조돈문 조명래 조석곤 조성일 조순경 조순제 조영건 조은 조인형 조재훈 조형제 조효래 조흥식 조희연 주경복 주경철 주동황 진영종 채수환 채종화 최갑수 최권행 최무영 최병두 최상천 최영찬 최영태 최장집 최정운 최태룡 하일민 한상권 한인섭 한정숙 한준 한홍구 허남진 허석렬 허평길 홍덕률 홍성태 홍장표 홍재성 홍춘의 홍훈 황상익 황한식 황훈성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임현진 홍두승 박명규 송호근 장경섭 서이종 정일균 장덕진 이재열 정근식 정진성

<노동 민중>

강규혁 강기갑 강대웅 강동진 강명욱 강미순 강봉균 강승규 강완묵 강재구 강철웅 강호연 고광덕 고대언 고명호 고민택 고성효 고재순 고종환 고천만 곽경호 곽태영 곽태원 구수영 구현석 구희현 국종근 권낙기 권미란 권영국 권오관 권오창 권용택 권태훈 금기송 금민 길이하 김경석 김경운 김경진 김광엽 김광옥 김국래 김대용 김덕종 김덕호 김도형 김동진 김명준 김목 김미희 김병일 김병일 김부겸김상복 김상완 김상환 김석준 김선동 김성란 김성진 김성태 김성현 김세옥 김소영 김순심 김승호 김시현 김영도 김영삼 김영선 김영욱 김예준 김용만 김용빈 김용수 김용애 김용욱 김용태 김용호 김윤석 김은진 김이경 김인수 김일호 김장한 김재석 김재수 김재식 김정곤 김정규 김정근 김정길 김정호 김제영 김종수 김종인 김주열 김준기 김준기 김지영 김지예 김지은 김지희 김진덕 김진순 김진주 김진훈 김찬수 김창한 김창현 김창희 김태일 김태진 김태현 김태호 김택현 김필숙 김해관 김해근 김헌정 김현미 김현진 김형계 김형근 김형준 김형탁 김혜경 김혜란 김호규 김호현 김홍기 김홍제 김화식 김환택 김희준 나순자 나핵집 남경남 남무현 남상국 남상헌 남상현 남희섭 노수희 노정욱 노중선 노회찬 도강호 도성훈 도영호 도정일 류기환 류춘용 류춘자 모성룡 문경식 문상기 문선곤 문정선 민동원 민병무 민병용 박경석박경순박민웅 박배일 박병규 박봉규 박선배 박성만 박성인 박성준 박세길 박수동 박승흠 박양희 박영희 박용석 박용성 박용환 박웅두 박장근 박정목 박조수 박종범 박주영 박주희 박준도 박준성 박준환 박진석 박진영 박진희 박창 박춘호 박충렬 박표균 박하순 박해전 박홍귀 박흥식 배기남 배용환 배인정 배재석 배철 배현철 백규현 백순환 백종호 백충기 변상출 변찬규 서정길 서준식 서해성 석윤수경 선재규 성도영 성방환 성유보 손석형 손성종 손송주 송경용 송경희 송용기 송유나 승광은 신동근 신동진 신석준 신성재 신승철 신장식 신재걸 신철영 신학림 신학철 심동환 심재환 안영돈 안지중 안효상 양규헌 양길승 양동철 양명철 양봉규 양승순 양연모 양태경 양해동 엄재철 여운 여운호 염경석 염창훈 오기섭 오병욱 오병일 오세필 오우환 오창엽 오춘산 우병국 원영만 원학운 위희수 유만종 유문수 유승무 유승준 유의선 유지현 윤금순 윤병범 윤수정 윤영규 윤영상 윤용배 윤재식 윤종목 윤호숙 이갑영 이경수 이경진 이근랑 이기곤 이낙호 이덕우 이덕준 이득선 이명순 이문교 이문상 이문옥 이문옥 이미숙 이미영 이미혜 이병덕 이병익 이병재 이보운 이부영 이상욱 이상학 이상현 이상훈 이석문 이선근 이성균 이성우 이성훈 이세우 이수봉 이승렬 이승원 이영기 이영섭 이영원 이용근 이용길 이용길 이용대 이용식 이용진 이우봉 이욱상 이원보 이은숙 이은순 이은우 이은희 이재원 이정규 이정태 이종회 이종훈 이주영 이준용 이지욱 이진규 이찬배 이철우 이철의 이태권 이필두 이항근 이헌구 이현대 이형원 이혜선 이호동 이훈구 이흥석 임성규 임수태 임승인 임영국 임필수 임혁준 임혜숙 장대현 장동화 장명재 장봉주 장상환 장여경 장재호 장창원 장혜옥 장화식 전갑주 전기호 전기환 전기회 전상봉 전상하 전영웅 전재규 전종득 전택수 정관식 정대연 정도상 정동익 정병록 정병찬 정보선 정세진 정소성 정수용 정식화 정용건 정용길 정우달 정원영 정일부 정재욱 정종권 정해선 정후택 조덕원 조문익 조범은 조삼수 조성호 조순덕 조영건 조영권 조용준 조은숙 조정남 조회환 조희주 주경희 주진우 주향미 지재식 차동철 차문석 차상철 채기승 채만수 천영세 최광은 최규석 최규엽 최규진 최단옥 최달식 최도은 최동식 최명식 최병도 최상윤 최선임 최선임 최순영 최영남 최영옥 최용국 최용규 최용우 최용준 최의팔 최일붕 최재춘 최정식 최진수 최혁 최현숙 최현오 추영호 탁무권 탁학수 하연호 하해룡 한강범 한도숙 한병석 한인호 한정목 한진 한찬욱 한충목 한현갑 허재우 허정수 현광일 현광훈 현상윤 현정길 현정희 호성희 홍광표 홍명옥 홍석만 홍주표 홍혜옥 황규만 황금춘 황민호 황선길 황수근 황우찬 황이민 황인석 황일남 김종섭 유영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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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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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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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상 : 장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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