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커피 1잔 하면 물 한 욕조 쓰는 셈

2015. 3. 20. 16:17자연과 과학

둘이서 커피 1잔 하면 물 한 욕조 쓰는 셈

김찬국 2015. 03. 20
조회수 2114 추천수 0

환경상식 톺아보기: 가상수의 세계
에티오피아서 커피 생산 뒤 유통, 소비까지 커피 한 잔에 물 140ℓ 들어

내 소비가 개도국 주민 삶에 영향, 소비 줄이고 공정무역 이용해야

 

water2.jpg » SBS 다큐멘터리 ‘물은 누구의 것인가: 2부 슬픈 장미’ 편의 장면.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를 생산하는데 물 약 10ℓ가 필요하고, 이로 인해 더욱 척박해져 버린 케냐 주민들의 삶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SBS

 
“슬픈 장미”에 담긴 물
 
2013년 “슬픈 장미”라는 부제가 붙은 프로그램이 <SBS>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유럽에서 팔리는 장미의 70% 가량을 생산하는 케냐 주민들이 물 부족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보여주었다.
 
장미는 아름다운 꽃이지만, 장미를 키우기 위해 거대 자본이 농장을 건설하면서 해당 지역 사람들은 물 부족으로 더욱 척박해진 삶을 살아야 하기에 “슬픈 장미”가 된 것이다. 이 작은 장미 한 송이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물이 얼마나 담겨 있는 것일까?
 
당신의 커피 한 잔은 아프리카의 물 140ℓ를 사용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약 200㎖ 정도의 양이다.
 
하지만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마시기까지 이 정도의 물만 사용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커피나무를 재배하여 커피콩을 생산하고, 커피를 말리고 볶은 후 커피분말을 만드는 과정에서, 또한 커피를 포장하고 운송하여 소비하기까지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까지 약 140ℓ의 물이 필요하다.
 
이는 커피 한 잔에 보이는 물의 부피보다 약 700배 이상이나 되는 양으로, 흔히 볼 수 있는 1.5ℓ 대용량 음료 100개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다.
 
더구나 그 물 중 상당량은 좋은 커피 생산지로 잘 알려진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온다. 둘이 마주앉아 커피를 한 잔씩 마신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물을 욕조 한 가득 소비한 셈이다.
 
우리는 종종 물이 부족한 나라를 생각하며 물을 아껴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껴 사용한 물이 부족한 그 나라의 아이들에게 곧바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여기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생산, 유통 및 소비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물을 통해 우리의 삶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사진3]The_start_of_your_morning_coffee.jpg » 에티오피아의 소규모 농가에서 커피 열매가 익어 딸 때가 되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출발 지점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가상수 개념과 예
 
우리는 물을 마실 때나 세수를 할 때만 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식품과 공산품이 생산되어 소비될 때까지 들어가는 물의 양을 뜻하는 “가상수(virtual water)”라는 개념은 우리 삶에서 물이 어떻게 사용되고 이동되는지 보여주는데 유용하다.
 
가상수는 영국의 토니 앨런 교수가 제안한 개념으로 식품과 공산품이 생산되어 소비될 때까지 들어가는 물의 총량을 말한다(토니 앨런, 2012).1) 식품과 공산품에 직접 포함되어 있지 않더라도 생산과 소비 과정에 많은 물이 필요하므로, 가상수는 물의 사용 방식과 국제적 이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다.
 
가상수의 개념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물을 마시거나 샤워를 할 때처럼 눈에 보이는 물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식품이나 공산품 등을 소비하면서 보이지 않는 물(가상수)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쌀 1㎏과 우유 1㎏을 얻기까지 물은 각각 1300ℓ(물 1.3t)와 1000ℓ가 필요하다. 티셔츠 한 장을 생산하는 데 약 4000ℓ의 가상수가 사용되며, 청바지 한 벌에는 무려 8000~1만ℓ의 물이 필요하다. 심지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A4 종이 한 장을 얻는 데도 10ℓ의 물이 쓰인다. 물은 이처럼 직접 마시지 않더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표> 주요 식료품의 가상수 (세계 평균)
 
water1.jpg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먹는 소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약 1만5500ℓ의 가상수가 필요하다. 소를 키워 도축한 후 소고기로 공급하기까지 전 과정에서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하게 된다.
 
이 중, 소가 먹는 사료로 공급되는 작물 등을 생산하는데 1만5337ℓ의 물이 필요하다. 소가 직접 마시는 물이 127ℓ이며, 농장을 청소하거나 소를 씻기는 등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34ℓ의 물을 추가로 쓴다. 이 항목들을 모두 더하면 우리가 먹는 소고기 1㎏당 약 1만5500ℓ의 가상수를 이용하는 셈이 된다.
 
나의 하루 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물이 가상수의 형태로 소비되는지도 살펴보자. 만약 내가 아침 식사로 식빵과 우유를 먹고(335ℓ), 옷가게에 가서 목화로 만든 면 티셔츠를 사고(2700ℓ), 근처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로 점심 식사를 한 후(2400ℓ),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커피를 한 잔 마시고(140ℓ), 저녘 때 집에서 피자를 먹었다면(1260ℓ), 이 과정에서만 나도 모르게 사용한 가상수의 양이 6800ℓ 이상이 된다.
 
가상수는 어떻게 이동하나
 
작물과 제품 등을 생산하는데 소비된 가상수는 세계 여러 국가 간의 무역을 통해 이동한다. 가상수를 수입하여 자국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물이 부족한 나라가 가상수의 형태로 물을 수출하여 물 부족이 심해지기도 한다.
 
우리가 물 부족 국가의 농작물, 육류, 공산품 등을 수입한다면, 그 나라의 물 부족 현상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특히 선진국 도시는 물 부족이 심각하여 식품을 비롯한 여러 상품을 가상수의 형태로 수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개발도상국들은 인구의 증가, 부족한 상하수도 시설과 함께 선진국 물 남용의 영향을 떠안고 있다. 아래 그림은 국제 무역을 통한 국가별 가상수 흐름을 보여준다.2)

water4.jpg » 국제 무역을 통한 국가별 가상수 수지와 가상수 흐름 (1996~2005년). 지도에서 초록색이 진할수록 가상수 수출이 많은 국가(미국, 아르헨티나, 호주 등)이며, 붉은색이 진할수록 가상수 수입이 많은 국가(멕시코, 일본, 한국 등)이다. 화살표는 가상수의 총이동이 연간 15G㎥(G는 기가, 10억을 나타냄) 이상인 국가 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화살표 두께가 굵을수록 이동하는 가상수의 양이 많고, 동그란 점이 시작을 나타낸다. 1G㎥/년은 일 년 동안 1t 트럭 10억대 분량의 물이 이동한다는 의미한다. 그림=Hoekstra & Mekonnen, 2012
 
우리나라는 세계 5위의 물 수입국
 
우리나라는 매년 320억㎥의 가상수를 수입하는 세계 5위의 가상수 수입국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나라의 가상수 수입량이 많은 이유로는 식생활과 산업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농업 인구의 감소 등으로 식량의 해외의존도가 높아졌고, 육류 소비가 증가하면서 축산물 수입 및 사료용 작물의 수입 증가로 가상수의 수입도 증가하게 되었다. 직접 물을 수입하지 않더라도 수입 육류, 곡물, 기호품 등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물 이용에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나일강 상류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인근 국가에 비해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어서 이를 이용한 농업 생산이 국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에티오피아가 무역을 통해 수출하는 90% 이상은 농산물이다. 에티오피아는 많은 양의 농산물을 수출하기 때문에 가상수 순수출국이다.
 
보유한 물의 양이 제한된 상태에서 가상수를 수출하면서 인구밀도에 대비해 실제로 사용하는 물의 양은 더욱 적어지게 되었다. 여기에 인구 증가, 국가 내부 갈등, 국제 무역 등 여러 요인으로 식량까지 부족해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상태이다. 우리가 에티오피아에서 생산된 커피를 소비하는 것은 커피 생산 과정에서 에티오피아의 물을 쓰는 셈이다.
 
아프리카의 주변국보다 물이 풍부하다고는 하지만 에티오피아도 물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에티오피아의 많은 지역에서 여성과 아이들은 먼길을 걸어 더러운 저수지의 물을 긷고, 2012년에만 어린아이 5만4000명이 이런 물을 마시고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물론 보다 적극적으로 에티오피아의 물 부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다. 최근 <한겨레21>에는 메마른 사막의 안개를 양 날개로 모아 물방울을 만들어 먹는 딱정벌레인 스테노카라에서 힌트를 얻어 공기 중의 물방울을 모아 물을 만드는 ‘와카워터’라는 장치를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

 

WarkaWater Tower.jpg » 와카워터 탑의 모습. 사진=<inhabitat>(http://inhabitat.com/nature-inspired-warkawater-towers-use-condensation-to-collect-drinking-water-in-ethiopia/warka-towers-lead/?extend=1)

[사진]스테노카라(Stenocara_dentata).jpg » 와카워터의 모델이 된 사막 딱정벌레 스테노카라. 이른 아침 안개 속에서 뒷다리를 높이 들어 물방울이 맺히면 빨아먹는 방식으로 수분을 구한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와카워터는 대나무로 만든 높이 10m 정도의 장치로서 공기 중의 물방울을 모아 매일 50~100ℓ의 물을 제공한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등이 참여한 ‘아키텍처 앤 비전’ 팀이 고안했다.
 
이 장치에 메마른 에티오피아 주민들의 삶을 위한 촉촉한 마음이 녹아 있다면, 커피와 햄버거와 면 티셔츠 등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물을 이용하는 우리도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을 할 수 있나
 
가상수 개념을 이용하여 내가 마시는 커피가 잘 알려진 커피 생산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를 이들의 기호에 대해 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축구공을 꿰매는 파키스탄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면서 우리가 축구공을 없애지 않았듯이,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생산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초콜릿을 버리지 않았듯이, 우리가 커피를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커피는 세계의 물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어떻게 소비되고 이동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오늘 내가 마시는 커피는 어디서 왔는지, 얼마만큼의 물과 땀을 포함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물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사진4]Female_coffee_farmer_in_Ethiopia.jpg » 에티오피아의 여성 농부가 커피 열매를 수확하였다. 이 커피가 우리의 잔에 올라오기까지 많은 물이 들어간다. 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카카오를 생산하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초콜릿 자체를 버린 것이 아니라, 공정무역 방식의 초콜릿을 구매하여 그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커피를 마실 때뿐 아니라 고기를 먹고 작은 물건 하나를 구매하면서 이러한 소비가 어떤 방식으로 누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상식’이 모인다면, 커피와 소고기와 햄버거에 대해서도 더 나은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소비하는 ‘보이지 않는 물’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 세상의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지구상에 있는 물은 누구의 것이고 우리는 그 물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보자.

 

김찬국/ 한국교원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 환경과공해연구회 운영위원
 
 

1) 토니 앨런 저, 류지원 역 (2012). 보이지 않는 물 가상수: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과 환경에 관한 새로운 생각. 동녘사이언스.

2) Hoekstra, A. Y. & Mekonnen, M. (2012). The water footprint of humanity. PNAS, 109(9), 3232–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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