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겟돈

2015. 4. 7. 04:54자연과 과학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모두 쌍둥이다. 유전적으로 똑같아 병균에 취약하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 세계 시장을 석권하던 ‘그로 미셸’ 종은 파나마병이라는 곰팡이에 의해 한순간에 멸종했다. 때마침 파나마병에 강한 ‘캐번디시’라는 새로운 품종이 발견됐다.

 

세계에서 한해 1억4천만t이 생산되고 이 가운데 1800만t이 수출되는 바나나는 이 품종 한가지다. 바나나는 밀·쌀·옥수수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는 주요 식량이다. 한데 또 다른 파나마병이 캐번디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10~20년 안에 두 번째 ‘바나나겟돈’(바나나+아마겟돈)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다.


국내 연구진이 새로운 유전자 교정 기술로 바나나 구하기에 나섰다. 제3세대 유전자가위(크리스퍼/카스9)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김진수 서울대 화학부 교수는 “다음 세대에게 바나나를 먹게 해주자”는 취지로 ‘바나나 세이빙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유전자가위는 지퍼(디엔에이)가 고장 났을 때 이빨이 나간 부위(특정 유전자)만 잘라내고 새로운 지퍼 조각을 갈아 끼우는 ‘유전자 짜깁기’ 기술이다. 1·2세대가 삯바느질·재봉틀이라면 3세대는 자동미싱이랄 수 있다. 이미 수많은 연구소에서 에이즈 치료 등 유전체 연구와 동식물 형질전환에 쓰고 있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는 이 기술을 생식계통에 적용하면 인간복제와 슈퍼인간 탄생이 가능하다며 모라토리엄(중단) 선언을 주장하기도 한다. 크리스퍼가 바나나 구세주가 될지, 판도라 상자의 열쇠가 될지 관심을 가질 일이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