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북한은 중국 선양에서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계획’ 설명회를 열었다. 원산, 마식령 스키장, 울림폭포, 석왕사, 통천, 금강산 지구를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라는 하나의 벨트로 통합해 개발한다는 내용이었다. 법률 환경에 대한 설명도 뒤따랐다. 연간 외국 관광객 100만명을 유치한다는 목표도 내놨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가 여러 개발구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이 가장 먼저 설립한 특구는 나선특구다. 1991년에 설립됐으니 중국 선전특구보다 고작 10년이 늦었다. 그동안 선전특구는 변두리 어촌에서 국제 대도시로 탈바꿈하면서 중국 대외개방을 선도해 나갔다. 거기에 비하면 나선은 우렛소리는 요란한데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할까. 아직도 미개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뭐가 달라서일까? 초기 조건이 다르기에 결과가 천양지차가 나는 것은 아닐까?
사실 선전특구와 같은 시간대인 1984년에 북한은 이미 합영법을 내놨고 나선특구를 발표한 1990년대 초반에는 ‘외국인투자법’, ‘합작법’, ‘외국인기업법’, ‘외국투자은행법’, ‘외화관리법’, ‘외국인세금법’ 등 법을 쏟아냈다. 선전특구 설립 때보다 더 많다. 그렇지만 선전과 나선은 초기 조건이 달랐다. 중국은 대내개혁으로 계획경제 체제를 시장경제 체제로 이행하면서 대외개방에 필수적인 내적 조건을 충족시켜 나갔다. 대내개혁과 대외개방이 맞물려 돌아간 것이다. 북한은 대내개혁이 없는 대외개방을 이루려 했다. ‘무본지목’(无本之木)이라 할까. 결국 20여년간의 노력은 계획경제 체제로는 시장경제를 접목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개혁개방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 탓에 외국인 투자를 쉽게 유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선특구가 20여년간 크게 빛을 보지 못한 내적 원인이다.
이제 북한은 나선에 이어 원산특구를 선도특구로 내세운다. 나선특구가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대외개방 실험장이었다면 원산특구는 김정은 시대의 실험장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자연히 나선특구 설립 때와는 다른 초기 조건을 갖추었다. 바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라는 사실상의 대내개혁이다. 지금의 북한은 2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장경제요소가 확장돼 있다. 중국의 선전특구 설립 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장경제’ 요소가 깔려 있다. 그러면 북한은 이제 대내개혁으로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의 개발에 필수적인 필요조건을 마련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나선특구의 지난 20년은 오늘의 원산특구 개발에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하향식이라면 북한의 변화는 상향식이라 하겠다. 전자가 자율적이라고 하면 후자는 타율적 성격이 짙다. 차이는 개혁과 개방에 대한 지도자들의 철학, 신념, 의지일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정은의 ‘5·30 노작’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들에서 경제관리방법을 결정적으로 혁신할 것을 강조하며 낡은 틀과 격식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대외개방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의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대내개혁이 대외개방과 선순환을 이루지 못하면 변화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수 있다.
대외개방은 북한에 대내개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북핵이 불러온 국제사회의 제재, 5·24조치로 꽉 막힌 남북관계, 3차 핵실험 뒤 냉각된 중-북 관계 등 주변 환경은 최악이다. 에너지의 소모만 있고 주입은 없다. 대내개혁을 통해 발굴하는 잠재력에도 한계가 있다. 벌써 자금이 바닥난다는 소문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래서 ‘국산화를 실현하는 투쟁’과 ‘자력갱생만이 살 길’이라는 슬로건이 재등장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대외개방이 없는 자력갱생만으로는 새로운 에너지를 주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은 무엇보다도 북한 자신이다. 무엇보다 지난 20년의 자신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환경은 역시 대외개방에 대한 지도자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 철학이라 하겠다. 원산특구의 성공 여부가 여기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북한 대외개방의 병목현상 / 진징이
2015. 4. 7. 04:45ㆍ물류와 유통
[세계의 창] 북한 대외개방의 병목현상 / 진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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