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홋카이도대학의 박물관에는 윌리엄 클라크와 학생들이 겨울 산으로 야외 실습을 나갔던 일화가 소개돼 있다. 나무 꼭대기에 새로운 이끼가 보이자 클라크는 땅에 손을 짚고 엎드려 한 학생에게 자신의 등에 올라가서 그 이끼를 채집하라고 말했다. 학장의 등을 밟고 서는 것을 주저하며 신발을 벗으려는 학생에게 신을 신은 채로 올라가라고 재촉해 결국 그 이끼를 채집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읽는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때 50세였던 클라크는 이역만리에 와서 낮은 자세의 섬김을 통해 일본의 인재를 양육한 것이었다. 그의 감화를 받은 삿포로농업대학의 인재 중 한 명이 일본의 평화주의자이자 저명한 기독교 저술가인 우치무라 간조다.
그러나 경제통합을 넘어 남북 주민의 마음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윌리엄 클라크의 정신을 품고 북한에 가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가진 것과 우리가 먼저 배우고 익힌 것을 나눔으로써 북한 주민의 공감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북한 개발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역량을 강화시켜 이들이 개발을 주도하고 우리는 조력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래야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이룬 발전에 자부심을 느끼게 될 것이며 남북의 사회통합도 한결 수월할 것이다.
통일은 경제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남한에 대박이기 때문에 통일하자는 계산적 이해만으로는 통일의 추동력도 충분하지 않고 통일되더라도 상당한 후유증이 발생할 것이다. 통일은 남북 주민의 마음의 통합에서 비롯되고 완성된다. 그리고 마음의 통합에 있어 핵심은 상대적으로 더 가지고 더 많이 배운 남한 주민의 포용과 배려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의 통일 준비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북한 주민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통일을 위해 무엇이든 나누려는 의식이 우리 가운데 희박하기 때문이다. 2014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 중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로 ‘북한 주민의 삶의 개선’을 선택한 사람은 불과 3.8%로 같은 민족이기 때문(42.4%), 전쟁 위협 해소(26.9%), 선진국 도약(17.6%)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통일은 북한 주민에게 우리의 등과 어깨를 내어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북한 주민이 우리의 등과 어깨를 딛고 올라가 경제를 성장시키고 세계 시민의 당당한 일원이 되며 인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리의 재능과 기술, 물질과 시간을 북한 주민과 탈북민을 위해 사용하려는 마음이 넘쳐날 때 통일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 인생의 가치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로 인해 행복해지는 정도에 달려 있다. 그러기에 통일은 우리의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북한 주민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고상한 고민의 시작이 진정한 통일 준비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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