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철 연대 명예 교수

2015. 5. 20. 14:22정치와 사회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옛 동지들’의 국민모임 참여, 분노를 넘어 절망”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환갑 때 한 바퀴 돌았으니 난 열두살이지.”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는 일흔두살을 열두살로 계산한다. ‘열두살 청년’은 어김없이 술부터 찾았다. 지난 11일 낮 서울 서대문역 근처 식당에서 만난 오세철 교수는 주문한 올갱이해장국이 나오기도 전에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그는 술을 좋아한다. 술자리에서 사람 만나는 걸 더 좋아한다.

학계와 노동계에 걸친 폭넓은 인맥은 주로 술과 투쟁으로 맺어졌다. 오 교수가 2012년 고희를 맞아 내놓은 회고록 제목은 <술, 학문, 예술, 혁명의 사중주>(빛나는전망)였다. 그는 술과 학문, 혁명의 공통점으로 ‘5대 불문(不問)’을 꼽는다. 맑고 탁함을 따지지 않는 ‘청탁불문’, 친소관계와 물리적 거리를 따지지 않는 ‘원근불문’, 함께 하는 사람들의 지위를 따지지 않는 ‘고저불문’, 때를 묻지 않는 ‘주야불문’, 마지막으로 죽기살기로 해야 하는 ‘생사불문’이다. ‘생사불문’ 때문에 그와의 술자리를 버거워하는 이들도 많다. “강단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땅 노동하는 사람들의 삶 깊숙이 뛰어들어 이론과 실천의 융합을 실천해왔다”는 평가도 참여·실천과 더불어 그 숱한 술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술잔을 내려놓자마자 오 교수는 연세대 개교기념일에 참석한 얘기부터 꺼냈다. “연세대 국제캠퍼스 청소·경비노동자들이 행사장에서 총장을 따라다니면서 피켓 시위를 하더라고. 노조 활동하는 분들 내가 다 알거든. 그래도 초청 받아 간 행사라 같이 피켓을 들지는 못하고 조용히 인사만 했지. 다음엔 내가 조직해서 (시위하러) 가야지.”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72)가 지난 11일 낮 서울 서대문역 근처 한 카페에서 국민모임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술 두세잔이 돈 뒤 오세철 교수가 본론을 꺼냈다.

“1990년 초 민중당 활동을 함께하고 이후 탈당해 민중회의를 조직하는 등 25년을 같이 운동했는데 나한테 일언반구 없었어. 마르크스주의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고 내가 보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지. 30~40대 활동가 동지들을 만나면 ‘나에게 영향을 준 교수가 그런 데 갔다’면서 분노합니다.”

정동영 전 의원이 주도한 ‘국민모임’에 참여한 옛 동지들을 두고 한 말이다. 오 교수는 ‘즐좌’ 멤버들의 국민모임 참여를 비판했다.

‘즐좌’는 ‘즐거운 좌파들의 모임’의 준말이다. 2008년 오세철 교수는 자신이 주도해 만든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체포됐다. 구속영장이 기각돼 오 교수가 석방되자 지인들이 즉석에서 즐좌를 결성했다. 술을 곁들이며 가끔 담소나 나누자고 만든 모임이다.

당시 함께했던 이들이 강내희·김세균·김수행·박거용·박상환·서관모·손호철·유초하·최갑수 교수와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다. 즐좌를 함께한 옛 동지들 가운데 강내희·김세균·손호철·최갑수 교수가 ‘국민모임’에 참여했다. 오세철 교수는 “‘자칭·타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변절’”이라고 했다.

지난 11일 낮 서울 서대문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난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72)는 옛 동지들의 ‘국민모임’ 참여에 “분노를 넘어 절망한다”고 말했다. |김종목 기자



오세철 교수는 옛 동지들의 국민모임 참여에 “분노를 넘어 절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정동영이 (관악을에서)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선돼서 국민모임이 (정동영) 개인의 당이 됐을 때 그들이 어떻게 되는가 한번 보고 싶었다”고도 했다. “안 돼서 허망하게 됐지만….”

마르크스주의자 오세철 교수에게 현실 정당정치는 ‘부르주아 정치’고, ‘국민모임’은 ‘부르주아의 한 분파’일 뿐이다. ‘“부르주아 정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배반이다. 정당 이름에 ‘진보’를 붙여도 부르주아 정치를 강화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것은 진보적 인텔리운동을 폐기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모임 창당 발기인대회 자료, 발기인 명단이 실린 신문광고를 서류 봉투에 잔뜩 챙겨 온 오세철 교수는 “국민모임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해야 할) 프롤레타리아 정치를 하는 곳이 아니다”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명한 전망을 공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반대’가 아니라 ‘자본주의 철폐’를 내걸고 사람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선거 출마를 비롯한 현실정치 참여가 “부르주아 국가의 강화 수단이기 때문에” 부정적이지만, 이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단 이데올로기를 분명히 내걸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선거를 선전의 장으로 이용할 수 있고 패해도 의미가 있습니다.”

“국민모임이 아니라 ‘붉은 모임’을 만들려고 한다.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떳떳하게 얘기하고 다 감옥에 잡혀들어갈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하는 오 교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오세철 교수는 “현재는 좌파가 실력이 없고 제3의 길이 보이지 않으니까 정동영 같은 부르주아 정치꾼이 끼어드는 것”이라며 “과거 계급정당을 표방한 민주노동당이 창당 초기 괜히 20% 가까운 지지율을 얻었겠느냐. 그런 식의 좌파연대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무주의와 기권주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좌파가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민주노동당 때와는 다르게 민족주의와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했다. “국제주의가 답이지 민족주의는 답이 될 수 없어요. 각 국 노동자들끼리 서로 자기 몫을 빼앗아 가며 적대하는 상황을 극복하고 노동자들의 국제 연대로 자본에 대항해야 하는 거죠. 노동자에게 국가는 없습니다.”

지난 11일 낮 서울 서대문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난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72)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젊어보였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얘기할 때면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김종목 기자



오세철 교수의 목소리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쩌렁쩌렁 했다. 그는 과거를 회고하기보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말했다. 머리는 새하얗게 샜지만 눈은 누구보다 맑았다. 더이상 대학 강단에 서지 못하게 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인문학은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데 70이 되면 강의를 못하게 딱 막아놨어. 난 학생들을 계속 만나고 싶은데…. 나랑 김수행 교수 같은 사람은 무대 체질이거든.”

그는 요즘도 집에서 해외 마르크스 서적을 번역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현장 노동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동지들에게 말하는 ‘7·8·9 운동’이란 게 있어. 2017년은 러시아혁명 100주년, 2018년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2019년은 코민테른(1919년 모스크바에서 창설된 공산주의 국제 연합) 100주년이거든. 이번 기회에 혁명의 공과를 평가하고, 진짜 마르크스주의자란 어때야 하는지 재점검하고, 세계 혁명당을 어떻게 만들지 토론하고 실천해야지. 그게 바로 마르크스주의 복원이야.”

그는 “예전 좌파 운동을 했던 사람들 중에 지금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 열정의 기억이 심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서 “그런데 모두 개별화돼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넓게 다시 모일 수 있는 화두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마르크스주의”라고 말했다.

그런 그도 ‘강단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오세철 교수는 1967년 모교인 연세대에서 시간강사 생활을 시작해 3년 뒤 경영학과 전임교수가 됐다. 재작년 12월 마지막 강의를 끝으로 대학 강단을 떠났다. 학생들을 만난 게 49년이다. 1977년 경영학과 제자 3명이 학교 대강당 유리창을 깨고 ‘유신 철폐’를 외치다가 경찰에 끌려간 사건과 1987년 경영학과 제자 이한열의 죽음이 그를 변모케 했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그는 2000년대 용산·쌍용차·한진중·재능교육의 투쟁 현장에 함께했다. 그는 마이크를 잡기보단 대오의 뒤에서 조용히 노동자들과 함께 자리에 서 있곤 했다.

인터뷰는 반주를 겸한 식사자리에서 카페, 그리고 호프집으로 3시간 동안 이어졌다. ‘회의’ 핑계를 대고서야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저녁이었으면 영락없이 밤을 새울 뻔했다. 그는 “즐거운 술자리가 생기면 연락하겠다”고 약속했다. 술을 더 하지 못한 아쉬움이 만면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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