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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이론의 고전은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 따지는 이기적인 행위자들 사이에 협력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가. 액설로드는 전 세계의 게임이론가들을 대상으로 전략대결을 펼쳤다. 내로라하는 이론가들이 제출한 전략들이 서로 맞대결을 펼친 결과 부동의 1위는 TFT(Tit For Tat)라는 달랑 세 줄짜리 간단한 전략이었다. TFT는 첫 라운드에서 무조건 협력하고 두 번째 라운드부터는 직전 라운드에서 상대방의 선택을 따라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전략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따져보면 남북관계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우선 첫 라운드에서 무조건 협력해야 하는 이유는 한 판으로 끝날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판으로 끝날 게임이라면 일방적인 패자가 될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반복게임에서는 상대가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처음에 열어주어야 나에게도 협력의 열매를 맛볼 기회가 생긴다. 그런 면에서 햇볕정책은 옳았다. 그러나 두 번째 라운드부터는 상대가 협력하면 계속 협력하지만 배신하면 우리도 곧바로 배신함으로써 배신의 대가를 학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햇볕정책의 패착이라면 배신해도 관용할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시작은 좋았으나 북한으로 하여금 협력의 열매와 배신의 대가를 확실하게 학습하도록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나 배신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은 과도한 배신(제재)은 배신(도발)의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제재는 이러한 배신의 상승작용을 불러온 측면이 있었다. 반면 비록 과도하다 하더라도 일관된 배신(제재)은 북한의 절박한 상황과 맞물려서 그들로 하여금 배신의 대가를 어느 정도 학습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우리는 기껏 쌓아온 남북관계 파탄 이후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을 에둘러서 최초의 협력이라는 첫 번째 라운드로 되돌아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