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협력의 진화

2015. 8. 29. 04:39정치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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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창]남북관계와 협력의 진화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 듯하던 남북관계가 극적인 반전을 이루어냈다. 시기적으로도 마침 대통령의 임기반환점을 도는 날이고, 지나간 몇 차례의 국정실패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청와대가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좋았다. 정치권도 언론도 대체로 칭찬 일색이고 여론의 반응도 좋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이 전쟁위기에서 벗어나고 대통령의 핵심 공약사항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할 수 있는 첫걸음이 마련되었다는 의미가 크다. 어떻게 하면 이 기회를 더 잘 살려나갈 수 있을까.

엄밀하게 말하면 지금 필요한 것은 신뢰보다는 협력이다. 신뢰와 협력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신뢰의 학문적 정의는 “나에게 해를 끼칠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다. 상대를 믿기 때문에 상대가 칼자루를 쥐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 신뢰이다. 남북 간에 이 정도의 믿음이 쌓이려면 혹시 있을지 모를 쌍방 간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 직전 단계에 가서나 가능할 것이다. 지금처럼 전쟁불사와 극적 타결 사이를 하룻밤에 오가는 단계에서 신뢰를 기대하는 것은 멀고도 먼 얘기다. 반면 협력은 손톱만큼의 신뢰도 없는 상황에서도 가능하다. 나도 상대도 얻을 것이 있다면 신뢰 없이도 협력은 가능하다. 이번 북한의 도발이 남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계산된 것이었다는 분석이 맞다면 이번 경우는 신뢰 없는 협력의 사례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협력이론의 고전은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 따지는 이기적인 행위자들 사이에 협력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가. 액설로드는 전 세계의 게임이론가들을 대상으로 전략대결을 펼쳤다. 내로라하는 이론가들이 제출한 전략들이 서로 맞대결을 펼친 결과 부동의 1위는 TFT(Tit For Tat)라는 달랑 세 줄짜리 간단한 전략이었다. TFT는 첫 라운드에서 무조건 협력하고 두 번째 라운드부터는 직전 라운드에서 상대방의 선택을 따라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전략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따져보면 남북관계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우선 첫 라운드에서 무조건 협력해야 하는 이유는 한 판으로 끝날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판으로 끝날 게임이라면 일방적인 패자가 될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반복게임에서는 상대가 협력할 수 있는 여지를 처음에 열어주어야 나에게도 협력의 열매를 맛볼 기회가 생긴다. 그런 면에서 햇볕정책은 옳았다. 그러나 두 번째 라운드부터는 상대가 협력하면 계속 협력하지만 배신하면 우리도 곧바로 배신함으로써 배신의 대가를 학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햇볕정책의 패착이라면 배신해도 관용할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시작은 좋았으나 북한으로 하여금 협력의 열매와 배신의 대가를 확실하게 학습하도록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나 배신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은 과도한 배신(제재)은 배신(도발)의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제재는 이러한 배신의 상승작용을 불러온 측면이 있었다. 반면 비록 과도하다 하더라도 일관된 배신(제재)은 북한의 절박한 상황과 맞물려서 그들로 하여금 배신의 대가를 어느 정도 학습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우리는 기껏 쌓아온 남북관계 파탄 이후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을 에둘러서 최초의 협력이라는 첫 번째 라운드로 되돌아온 셈이다.

과정이 어찌됐든 다행히 첫 라운드로 되돌아왔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배신에는 배신, 협력에는 협력이라는 일관된 시그널을 통해 그들이 학습하도록 하는 것이다. 배신의 대가만이 아니라 협력의 열매도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 TFT의 핵심은 각 라운드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배신을 열 배의 배신으로 되갚아주겠다고 한다면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전쟁뿐이다. 우리가 잃을 것이 훨씬 많은 상황에서 이러한 경고는 ‘비현실적 위협’이기 때문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학문적으로는 입증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협력구도를 유지하되 상대가 배신할 경우 딱 그만큼만 배신함으로써 각각의 라운드를 지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고, 상대로 하여금 배신의 대가보다는 협력의 열매가 훨씬 달다는 것을 학습하게 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우려스러운 것은 대북관계가 단순히 남북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대내 정치의 소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정권의 업적홍보 욕심, 강경보수 지지층의 요구, 다가오는 총선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차분하고 일관된 시그널을 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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