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보면 그 나라의 대외정책이 보인다. 나폴레옹이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도를 보면 그 나라의 발전전략이 보인다고.

지도를 보자. 우리는 3면이 바다다. 넓지 않은 바다를 끼고 동쪽엔 일본, 서쪽엔 중국이 있다. 남쪽은 망망대해다. 그럼 북쪽은 어떤가. 북한이다. 바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대다. 분단으로 우리는 대륙과 단절됐다. 우리의 공간은 섬이 됐다.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사이를 오갔다. 근대 이전에는 대륙과 이웃했다. 근대와 함께 해양세력에 편입됐다. 해방된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의 교량이 돼야 옳았다. 그 길을 분단이 막았다. 통일은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세계사에 ‘유럽의 시대’가 있었다.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스페인 콜럼버스 등의 ‘대항해’가 그 시작이었다. 중국 명나라 정화(鄭和)는 그보다 80여 년 먼저 동남아~아프리카 30여 개 국의 바다를 지배했다. 그러나 정화를 지원한 영락제의 죽음으로 중국판 대항해는 끝났다. 영락제 이후의 임금들은 국내 권력놀음에 빠져 바다를 잊었다. 그래서 중국은 유럽보다 근대화에서 뒤졌다. ‘동아시아의 해상왕’ 장보고는 정화보다 거의 600년 앞섰다. 장보고는 국내 기득권 세력에 살해됐다. 한반도는 위축의 길을 걸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꿈’을 내걸었다. 그것을 구체화한 구상이 신판 실크로드 일대일로(一帶一路)다. 황해연안에서 유럽과 아프리카까지를 잇는 육지의 일대(One Belt)와 바다의 일로(One Road)다. 스케일이 영락제를 능가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우리는 ‘창밖의 여자’가 됐다. 정부 간 협의기구 구성 등으로 동참의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동참한다면, ‘일대’보다 ‘일로’가 먼저일 것이다.

바다와 섬에 대한 우리의 정책은 무엇인가. 아니, 정책이 있기는 한가. 멀리 갈 것도 없다. 해양수산부의 운명이 그 답이다. 정부수립 이후 해양수산 업무는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1996년에야 업무를 통합, 독립부처로 신설했다. 그걸 2008년에 해체했다. 2013년엔 다시 설치했다. 그러나 지금도 예산은 미미하고, 정책은 소심하다.

바다와 섬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바다는 가장 경제적인 물류통로다. 북극항로는 이미 세계 물류질서를 바꾸고 있다. 세계 해양물류의 허브 싱가포르의 발전 전략이 그래서 변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또 다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바다는 레저와 스포츠의 무대로 커지고 있다. 구미 선진국 얘기가 아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전남에도 요트 동호회가 생긴 지 오래다. 박태환·김연아·손연재처럼 불모지대를 개척하는 스타선수가 해양 스포츠에 나타나는 것도 시간문제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수산물 소비 증가는 폭발적이다.

섬은 힐링의 공간이 됐다. 국내 섬 여행자가 연간 800만 명을 넘어선 것이 2006년이었다. 그것이 2013년에는 1200만 명을 돌파했다. 2013년엔 전남 섬에만 840만 명이 왔다. 올해 1~7월 전남의 ‘가고 싶은 섬’ 여행자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79%나 늘었다.
올해 6월 맥킨지 보고서는 의미심장하다. 맥킨지는 10년 안에 가장 부자도시가 될 세계 10곳을 발표했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해양도시 여수가 포함됐다. 8월 여수에서 열린 한국 경영관련학회 통합학술대회에선 “여수를 아시아의 모나코로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1970년대 우시로쿠 도라오 주한일본대사는 목포 앞바다를 보고 “지중해보다 아름답다”고 말했다. 매년 늦여름 목포 앞바다에선 ‘세계 파워보트 레이스’가 열린다. 그 대회 지도자인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델 팔라시오는 목포에 다섯 번이나 왔다. 그도 우시로쿠와 똑같이 말했다.

섬은 영토주권의 최전방이다. 특히 동북아에서 그렇다. 한국의 독도를 일본은 호시탐탐한다.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댜오위다오)로 다툰다. 일본과 러시아는 쿠릴열도 4개 섬(북방영토)으로 대립한다.

바다와 섬을 다시 보자. 세계와 우리의 지도를 다시 보자. 세계사의 흐름을 다시 보자. 우리의 발전전략이 어때야 할지는 자명하다.

이낙연

이낙연 전남도지사

1952년 전남 영광 출생.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 도쿄특파원·논설위원·국제부장 등으로 일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계에 진출, 제16대~19대 국회의원으로 농림수산식품위원장과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등을 역임했다.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