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니카라과 운하 경쟁

2016. 7. 26. 19:48물류와 유통

 

지난달 말 9년여의 확장 공사를 끝내고 제2의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었다. 교통 혁명의 상징으로 떠오른 기존의 파나마 운하는 1904년부터 1914년 여름까지 10년에 걸쳐 그것을 건설한 미국의 운하였다. 미 달러화는 신흥 독립국 파나마의 공식 화폐가 되었고 길이 77㎞, 폭 16㎞에 이르는 파나마 운하 지대는 신흥 제국 미국의 일부가 되었다.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파나마 운하는 기술적 우위와 야심에 찬 도전을 집약하는 전략적 자산이자 정신적 유산으로 여겨졌지만, 다른 한편에선 신흥 제국 권력의 초상으로 자리 잡았다.

격렬한 국내의 정치 투쟁을 불러일으킨 1977년 지미 카터 행정부의 파나마 운하 양도 조약 체결과 2000년 1월1일 공식 양도 이후 운하는 파나마로 귀속되었지만, 한 세기 만에 확장 공사를 마친 파나마 운하는 흥미롭게도 아직 완공되지 않은 또 다른 운하에 의해 견제당하고 있다. 확장된 파나마 운하를 통과한 첫 번째 선박이 중국의 컨테이너 화물선이었고 니카라과를 횡단하게 될 새로운 운하의 시공업체도 홍콩에 본사를 둔 중국 기업이라는 점이 이목을 끈다.

19세기 말 콜롬비아의 일부로서 가장 짧은 지협을 보유한 파나마와 더불어 니카라과는 호수와 강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진작부터 대양 연결 수로의 후보지로 부각되었다. 파나마 지협보다 훨씬 더 길지만 바위투성이의 산맥이 버티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더 유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어쨌든 왕징이라는 인물이 이끄는 중국 기업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은 2014년 12월 278㎞에 이르는 ‘니카라과 대운하’를 착공하면서 5년 내 완공을 공언했다. 소요 비용이 적어도 500억달러로 추정되며 인류 역사상 최대 건설 기획으로 주목받고 있는 니카라과 대운하가 완공된다면, 그것은 폭 230~520m, 깊이 28m로서 제2의 파나마 운하보다 훨씬 더 길고 넓고 깊은 인공 수로가 될 것이다. 또 철로로 연결되는 두 곳의 항구와 국제공항, 휴양지, 자유무역지대 등이 생겨날 것이다.

2014년 12월 착공식에서 오마르 아예스레벤스 니카라과 부통령이 대운하가 라틴아메리카의 최빈국 중 하나인 니카라과의 경제와 역사를 바꿀 것이라고 강조할 만큼 이 기회를 살려 빈곤에서 벗어나겠다는 좌파 정부의 의지와 기대는 뜨겁다. 화산 활동 탓에 니카라과가 운하의 후보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한 세기 전의 주장은 옛이야기일 뿐인 듯하다.

니카라과 정부는 원주민 거주지와 생물종 다양성 때문에 환경보호가 필수적인 지역을 피해 운하의 경로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로가 주요 식수원인 니카라과 호수를 지난다는 점, 댐을 건설해 강을 막고 엄청난 양의 표토를 옮기는 과정에서 환경 파괴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 비판적 견해와 운하 건설의 경제적 혜택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2020년 이후 50년 동안 중국에 운하 영업권을 부여하는 계약을 맺을 경우 니카라과 정부가 얻는 수익이 그리 크지 않으리라는 예측도 등장했다.

국제무역의 증가, 특히 파나마 운하가 감당하기 힘든 대형 선박이 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새로운 운하의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개발회사 측과 니카라과의 관리들은 니카라과 대운하가 파나마 운하와 경쟁을 벌이기보다 그것을 보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부디 이 기획이 니카라과인들에게 기만적인 희망을 계속 불러일으키려는 선전전이나 외화내빈의 전시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니카라과 정부가 국내의 반대 의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국론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는 대운하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과 더불어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일 수밖에 없다.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고 불린 대양 연결 수로 건설의 대역사(大役事)가 국민들의 연결과 소통을 가로막는다면 그야말로 역설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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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7242126005&code=990399&s_code=ao040#csidxafc9e25b0dc249cbc33e0e51f2d10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