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일 대로 꼬여버린 남북관계
직선으로만 날지 않는 철새처럼
연해주가 우회로 될 수 있어
대륙과 철도 연결 꿈꾸는 일본
연해주와 55㎞ 해저터널 추진
물류항 자루비노, 접경지 하산
남북과 중·러 경협 싹 틔워야
그래서 러시아는 한국의 참여를 원한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유라시아·북한인프라연구소장은 “자루비노항은 발전 가능성이 큰 전략항”이라며 “배후 물류기지만 보완되면 한·중·러 3국의 최대 거점항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계획은 이어 북·중·러 3국이 맞닿아 있는 국경지역인 하산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민간인 출입통제가 엄격한 이 지역의 방문 허가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투자를 바라면서도 영토 문제엔 민감한 러시아의 고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행은 하산스키군의 크라스키노 전망대에 올라 멀리 하산을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날이 맑아 북녘 땅이 아스라이 보였다. 그곳을 향해 서서 작가 황석영은 어린 시절 듣고 자랐던 ‘동만주독립군가’를 불렀다. “이 노래가 불리던 곳이 바로 이 지역이에요. 이곳의 공동개발 논의가 20여 년 전부터 있었는데 결국 불발됐어요. 이렇게 지척인데도….”
이튿날 세미나 장소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루스키 섬에 있는 극동연방대학교 대회의실이다. 2012년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다음달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제2차 동방경제포럼 회의도 열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만큼 벌써부터 보안이 삼엄한 곳인데도 시 당국은 평화 오디세이 일행에게 내주는 호의를 보였다. 장소 요청 시점이 한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발표 때였음을 감안하면 중국과는 또 다른 러시아식 배포였다. 그러한 자기들의 성의를 몰라 준다는 뜻인지 러시아 측 세미나 참석자들은 “줄 듯 줄 듯 안 주는 한국”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닷새째 오디세이는 하바롭스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지나는 곳이다. 일본은 열도에서 철도로 TSR과 연결할 계획을 갖고 있다. “홋카이도에서 사할린까지 40㎞, 사할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15㎞만 해저터널로 이으면 닿는다”는 게 유진태 신정글로벌 대표의 설명이다. 한눈 팔고 있다가는 섬나라인 일본은 대륙에 연결되고 반도 국가인 우리가 오히려 외딴 섬이 될 형국이다.
“대륙과의 연결로 연해주를 기회의 땅으로 삼아야 한다”는 데 대부분 참가자들은 생각을 같이했다. 그것은 남과 북·러시아·중국 모두에 기회의 땅이어야 한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여러 강이 합쳐 평화라는 뜻을 가진 아무르강이 되듯,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이 이 지역에서 ‘평화의 합수(合水)’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날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평화의 합수’를 위해 노력한다는 ‘아무르 다짐’을 했다.
대북제재를 거둬들일 수 없는 현재로선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회로가 더 빠른 경우도 있다. 꼬일 대로 꼬인 남북 문제의 실마리가 한반도 밖에서 풀려나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극동 러시아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알렉산더의 칼일 수도 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명언을 했다. “시베리아 철새는 직선으로만 날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