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필주 두렵지 않나

2016. 10. 7. 19:07정치와 사회

박근혜 정부가 끝내 역사를 왜곡하려 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려는 작업이다. ‘건국절’이 국민적 저항을 받자 꼼수를 부린다. 대한민국 건국이나 대한민국 수립은 뜻이 다르지 않다.

[시론]역사의 필주 두렵지 않나

교육부가 역사부도 교과서를 제작한 실무진에게 내년에 배포할 수정자료에서 ‘건국절 사관’을 강요한 데 이어 자체 홈페이지에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못 박았다. 신임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사 국정교과서 원고본을 봤다”고 실토했다. 아직 집필자도 심의위원도 베일에 가려진 상태에서 그는 무슨 자격으로 원본을 봤는가.

‘48년 건국’의 부당성은 익히 밝혀졌다. 다섯가지만 지적하면 ①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승계를 명시한 헌법 전문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하는 영토조항 위배 ②1910년 국치 이래 독립운동(가)은 소멸되고 매국노·친일파 면죄부 ③일본에 문화재 반환 등 미청산 과제 요구할 역사적 자격상실 ④한 국가에 개천절과 건국절로 두 개의 개국일 ⑤남북통일의 역사적·법적 자격 포기 등이다.

여기서 ‘48년 대한민국 수립’을 고집하고 국정으로 교과서를 바꾸고 집필하는 정부책임자와 관료·학자·교사들에게 전한다. 사마천에 버금가는 사학자 유지기(劉知幾)는 “역사의 용도는 공적을 기록하고 과실을 드러내고 선을 밝히고 악을 미워하며 일조(一朝)의 득실과 오랜 세월의 영욕을 바르게 기록하는 것이다. 만일 적신·역자·부군의 군주가 있어 이를 직서하여 허물을 가리지 않으면 그 잘못이 반드시 드러나고 악명이 천추에 나타난다”고 밝혔다.

근대역사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폰 랑케는 “이념이나 신념, 철학이나 정파, 편견으로 역사를 보지 말고 정확한 사료를 토대로 과거의 사실, 그 자체가 진실로 어떠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다”라고 했다. 조선조의 역사가 안정복은 역사가의 주요 원칙으로 ①계통을 밝힐 것 ②찬탈자와 반역자를 엄하게 평가할 것 ③시비곡직을 공정하게 기록할 것 ④충절을 높이 평가할 것 ⑤법제를 상세히 살필 것을 지적한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가 처음 사용한 역사의 그리스어 히스토리아(Historia)의 의미는 “진실을 찾아내는 일”이란 뜻이다. 적어도 역사를 공부하고 교과서를 쓰는 사람은 권력의 풍각쟁이가 되어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역사를 기술하는 일이란 지적 해방을 위해 세기를 넘어 지속되고 있는 전쟁에서 전투를 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볼테르)

백암은 “나라는 망해도 역사만 지키면 반드시 부흥한다”고 했고, 단재는 “사필(史筆)이 강해야 민족이 강하고 사필이 용해야 민족이 용감하다”고 썼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35년의 압제에서 풀리는 동시에 허리 잘린 장애를 겪으면서 내선일체를 주창했던 사가·언론에 의해 역사가 지배되었다. ‘민족의 태양론-이승만’, ‘유신인격론-박정희’, ‘광주폭도론-전두환’, ‘4대강 예찬론-이명박’, ‘48년 건국론-박근혜’로 이어지는 어용학자·논객들은 한번도 징벌되거나 청산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지금 한국사회의 역사와 지성과 양식을 짓밟는 독초가 되고 있다.

프랑스의 나치협력 지식인 드리유라 로셀은 ‘역사가의 책임’을 물어 자살을 택하고, 청태종 삼전도 공적비를 썼던 오준(吳竣)은 수치스러움에 붓을 잡았던 손가락을 돌멩이로 짓이겼다. “먹으로 쓴 거짓말은 피로 쓴 사실을 덮을 수 없다.”(루쉰) 피흘린 독립운동사를 친일파와 그 계열 후손들이 권력의 붓으로 바꿀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역사학자를 포함한 언론인·지식인의 양식의 회복을 바라면서 역사를 왜곡하면 반드시 역사의 필주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지금은 무기를 놓을 때가 아니다. 깨어있는 사람들이 침묵하면 역사는 뒷걸음친다.”(에릭 홉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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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062106045&code=990303#csidx5195cf831d0afabb047f6b9c1af3dc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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