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3. 10:50ㆍ정치와 사회
행복한 나라가 될 때까지 ‘님을 위한 행진’을 하겠습니다
김정용 광주대교구 사목국장·광주인권평화재단 상임이사ㆍ조비오 몬시뇰을 추모하며
조철현 비오 몬시뇰님!
끝 모를 정도로 길고 불덩이 같았던 지난여름조차 거뜬히 건너시더니, 이제 선선한 가을바람에 가뿐히 몸을 싣고 높고 푸른 하늘 길을 따라나섰군요. 그 하늘 길을 향한 행진은 마치 1980년 5월, 포악한 총칼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걸었던 이른바 죽음의 행진, 아니 참다운 삶과 참 인간의 행진과 닮아있군요. 그 참 인간됨의 행진을 가슴 먹먹하고 애틋하게 지켜보면서, 이제 살아있는 우리가 그 행진을 이어가야 함을 깨닫게 되는군요.
1980년 5월이 한참 지난 후, 신학교 강의실에서 몬시뇰께서는 그때에 겪었던 일들을 마치 방금 전의 일처럼 기억하셨고, 후학들에게 열정적으로 증언해주셨지요. 그때 몬시뇰에게서 묻어나왔던 기억의 얼굴과 심장에서 울려나왔던 의분의 목소리는 지금까지도 제 마음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그것은 오랜 세월을 거쳐 저도 모르게 제 몸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신학교에서 5·18 관련 학술발표회가 열릴 때마다 노구를 이끌고 군중 속에 앉아 묵묵히 지켜보시던 모습에서 몸은 쇠약해져도 열정은 한결같이 의로운 청춘임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지요.
몬시뇰께서 가시는 하늘 길을 바라보면서, 몬시뇰께서 이미 이루고 거두신 많은 일뿐만 아니라 교회와 시민사회에 큰 울림으로 남겨주신 것들을 떠올려 봅니다. 무엇보다도 몬시뇰께서는 교회의 울타리를 벗어나 교회와 세상의 징검다리가 되신 것은 물론이고, 시민사회 속에 섞여 사는 것을 꺼리지 않으시며, 곤경과 고통 속에 놓인 사람들과 함께 어깨를 거셨던 것은 바로 아름다운 목자(bonus pastor)가 걸어야 할 길 다름 아니었지요.
몬시뇰의 유언장에 적힌 가난한 몇 줄의 유언들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다만 모두가 행복한 하느님 나라를 향한 나그네의 마음 하나뿐이어서 고개와 마음이 숙연해졌지요.
5·18을 몸소 겪으면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또 다른 유언 같은 말씀 하나도 허투루 여길 수 없군요. “모든 5·18의 동지들이나 광주 시민들이 다 관련자이지만 관련자들이 정말 대동단결과 공존, 평등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히 여기면서 일치하는 데 협력을 해야 돼요. 나는 어디서든지 5·18 간부들이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봉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절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지 마라.’ 그런 마음입니다.”(‘5·18의 기억과 역사 5’에서 몬시뇰의 증언)
조철현 비오 몬시뇰님! 그 마음이 땅에서와 같이 하늘에서도 다르지 않으시리라 믿으며, 하늘 길 가시는 나그네 길에 기도의 마음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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