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오리엔탈리즘

2016. 9. 23. 10:47정치와 사회

[아침 햇발] 오바마 오리엔탈리즘 / 고명섭

등록 :2016-09-22 17:16수정 :2016-09-2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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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섭
논설위원

버락 오바마는 지성과 감성을 함께 갖춘 매력적인 정치인이다. 임기를 다 채워 가는데도 오바마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전임 조지 부시의 자해적인 난동정치에 덴 미국인들은 8년 전 오바마라는 새로운 인물을 발탁해 국격의 추락을 막았다. 오랫동안 차별받고 억압받던 흑인 출신이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은 로마제국의 변방 속주 출신이 황제가 된 것에 비길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외정책으로 가면 오바마의 매력은 빛을 잃는다. 속주 출신 황제가 제국의 정복정책을 답습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오바마의 대외정책은 흑인이라는 마이너리티의 감수성이 아니라 미국 주류 지배층의 정서를 판에 박은 듯이 따른다. 특히 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오바마가 보인 모습은 미국 패권주의의 집행자와 다를 바 없다.

지난 7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지난 7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지난 8년 동안 오바마의 북한에 대한 정책은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의 오만한 무시로 일관했다. 오바마의 그런 행태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의 살아 있는 사례를 제공한다. 오리엔탈리즘의 렌즈로 보면 동양은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이고 도덕적으로 열등한 데 반해, 서구는 이성적이고 분별력 있고 도덕적으로 성숙한 곳이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 입각해 서구는 동양을 지배할 권리를 스스로 정당화했다. 동양은 서구가 베푸는 계몽의 시혜를 받을 대상일지언정 서구와 동등한 친구가 될 수 없다. 오리엔탈리즘은 체계를 이룬 무지이며 정책이 된 편견이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 19세기 이후 식민주의 시대에 번성했지만 오늘날에도 미국의 국제정치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말한다.

오리엔탈리즘은 학술적 담론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몇 가지 단순한 이미지로 유포되고 각인된다. 사이드는 아랍 사람들이 서구의 뉴스에 등장하는 방식을 사례로 든다. 뉴스는 군중의 분노와 비참을 보여줄 뿐이지 사람들의 개성이나 인격은 포착하지 않는다.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아랍인이라는 상투적인 관념을 끝없이 재생산한다. 짐승 무리와 유사한 이런 인종은 지배와 통제의 대상이지 소통과 교감의 대상은 아니다. 오바마 정부의 한반도 정책이 오리엔탈리즘의 반복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국이 북한을 대화가 가능한, 합리적 사고를 하는 나라라고 생각했다면, 임기 내내 상대의 항복을 요구하는 압박전술에만 의존했을 리가 없다. 그 결과가 오바마 재임 기간에만 네 차례에 이르는 북한 핵실험이다.

상황을 그나마 제대로 본 것은 <뉴욕 타임스>다. 북한이 제5차 핵실험을 한 직후 <뉴욕 타임스>는 “약하고 고립된 국가인 북한이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언제 굴복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호전적인 카드를 꺼내들었으며, 이것은 매우 이성적인 선택이다”라고 했다. 오바마가 진심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를 바란다면 북한과 대면하고 협상하는 일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중국이 저토록 반발하는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해 동아시아 긴장의 파고를 무람없이 높여놓을 이유가 없다. 오바마가 상대를 배려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대외정책을 관통하는 오리엔탈리즘에 오바마 자신이 깊이 감염돼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대통령의 오만과 편견은 오바마 뒤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믿을 건 우리밖에 없다. 미국의 패권전략을 넘어 한반도 대결·교착상태를 깨는 일에 평화세력이 모두 나서야 한다. 방향을 잃고 외곬으로 치받기만 하는 박근혜 정부에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를 내맡겨두는 건 더 큰 재앙을 예고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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