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소설

2017. 3. 24. 19:18자연과 과학

SF의 힘
고장원 지음/추수밭·1만8000원

흔히 ‘공상과학소설’로 새기곤 했던 에스에프(SF, science fiction)가 ‘공상’이라는 딱지를 떼고 ‘과학소설’이라는 제 이름을 찾은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에스에프의 과감한 상상력이 자주 허무맹랑하게 여겨졌기에 그런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고 문학 역시 수준이 높아지면서 에스에프에 대한 과학적 엄밀성의 요구도 강화됐다. 한편으로는 과거에는 소설에서나 가능했던 첨단 과학 기술이 엄연한 현실이 되어 차례로 눈앞에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에스에프와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이다.

에스에프 작가 겸 평론가 고장원이 쓴 은 국내외 주요 에스에프 작품을 통해 에스에프와 현실의 관계를 들여다본다. 인공지능, 유전공학, 우주개발, 외계인, 종말 등 에스에프의 주요 소재를 다루는데, 최초의 과학소설로 일컬어지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에서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서구의 에스에프와 영화는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과 한국 에스에프 및 만화까지 풍부한 일차 자료를 동원해 논지를 전개한다.

외계인은 에스에프의 가장 흔한 소재에 속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비롯해, 인류가 외계 지성과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은 숱한 에스에프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양쪽의 접촉은 전쟁으로 이어져 대개는 지구인의 승리로 드물게는 외계인 쪽의 승리로 마무리되거나, 더 드물게는 <컨택트>에서 보듯 평화 협력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러나 <솔라리스>의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은 이런 설정이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이라면서, 인류와 외계 지성이 조우하더라도 “서로에게 철저히 무관심하거나,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상호 의견교환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에스에프 거장 아서 클라크 역시 <라마와의 랑데부>(1973)에서 소행성 같은 비행체에 타고 지구를 스치듯 지나친 외계인들을 두고 “그들은 인류라는 종이 존재했는지조차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라고 쓴다.

<SF의 힘>의 지은이 고장원은 “(SF는)인류문병 발달의 맨 앞줄에 서서 미래를 짚어 보는가 하면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유발한 부조리와 모순을 미래라는 가상현실에 대입해 곱씹어보는 사고실험실 노릇을 200년 이상 해왔다”고 썼다. 사진은 영화 <마션>의 한장면.
의 지은이 고장원은 “(SF는)인류문병 발달의 맨 앞줄에 서서 미래를 짚어 보는가 하면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유발한 부조리와 모순을 미래라는 가상현실에 대입해 곱씹어보는 사고실험실 노릇을 200년 이상 해왔다”고 썼다. 사진은 영화 <마션>의 한장면.
잭 피니의 <신체강탈자들의 침입>(The Body Snatchers, 1955)이나 로버트 하인라인의 <꼭두각시 조종자들>(The Puppet Masters, 1951)처럼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1950년대에 나온 미국 에스에프들은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갑갑한 상황을 공포로 소구함으로써 당시 미국인들의 레드 콤플렉스를 은연중에 건드렸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유행한, 대재앙을 배경으로 순정 러브스토리를 엮어 가는 이른바 ‘세카이계’ 에스에프에 대해서는 “타자와의 현실적인 관계 설정 없이 홀로 감정적 마스터베이션에 만족하려는 성향이 짙다 보니 인간과 사회 그리고 양자 간의 관계에 관한 성숙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특정 시대의 특정 사회가 외계인을 바라보는 태도는 타자에 대한 해당 사회의 관용이 어느 정도인지를 상징적으로 알려주므로 이는 일종의 사회 건강성 지표”라는 게 지은이의 결론이다.

외계인은커녕 미생물 수준 외계 생명체의 존재조차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지만, 에스에프에서 선구적으로 선보인 기술들은 속속 현실로 몸을 바꾼다. 가령 1900년대 초 미국 에스에프에서 27세기를 배경으로 등장했던 컬러 텔레비전과 비디오 전화, 원격 화상회의 같은 기술은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우리가 “하루에도 수백번씩 어제의 에스에프와 만나고 있”다고 지은이가 강조하는 까닭이다. 외계 행성의 환경을 바꾸어 인간이 쾌적하게 살 수 있게 하는 ‘테라포밍’, 지구에서부터 인공위성 궤도까지 초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 지하 및 바닷속 자족 도시, 웜홀을 이용한 우주 여행 같은 에스에프의 아이디어들도 언젠가는 공상이 아닌 현실로 구현될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말한다. “에스에프가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과학 역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우리의 꿈을 현실화해 나가리라 봐도 좋지 않을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87806.html#csidxe3693528bf5b0329ea9d9af85a13a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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