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30만년 전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 화석을 토대로 재구성한 머리뼈 이미지. 얼굴 모양은 현대인과 일치하는 반면 두개골(파란색)은 가늘고 긴 원시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뇌의 모양이나 기능이 계속 진화해왔음을 보여준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제공
인류는 기존에 알려졌던 것보다 10만년 더 일찍 출현한 것으로 밝혀졌다. 앞으로 생물학 교과서는 인류의 출현 시기를 30만년 전으로, 기존보다 10만년 앞당겨 기술해야 한다. 독일과 모로코 공동연구팀은 7일(현지시각) 북서부 아프리카의 모로코 한 유적지에서 발굴한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 이빨, 아래턱뼈 등 화석들의 연대를 분석한 결과 30만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고 과학저널 <네이처> 8일치에 보고했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장자크 위블랭 교수와 모로코 국립고고역사문화연구소의 압델와히드 벤은세르 박사 공동연구팀은 영화 <카사블랑카>로 유명한 모로코 서부 제벨 이르후드 유적지에서 적어도 5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22개의 호모 사피엔스 화석들과 석기류, 동물뼈 등을 발견했다.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지질연대측정 전문가인 다니엘 리히터 연구팀은 이들 화석이 발굴된 곳에서 함께 발견한 부싯돌의 사용시기를 열발광 연대 측정법으로 측정해 30만년 전 것임을 밝힌 별도의 논문을 <네이처>에 게재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 된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에티오피아 오모 키비시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19만5천년 전으로 측정됐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한 ‘인류의 20만년 전 동아프리카 출현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위블랭 교수는 “과학자들은 20만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출현했을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새로운 연구 결과는 인류가 30만년 전 출현해 아프리카 전역에 퍼졌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최첨단의 미세컴퓨터단층촬영기와 수백개의 3D 화면에 기반한 통계학적 분석법으로 현대인과 제벨 이르후드 호모 사피엔스의 머리뼈를 비교한 결과 작고 가느다란 얼굴과 둥근 두개골 등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다만 얼굴 모양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일치했지만 두개골은 가늘고 긴 원시적인 형태를 하고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막스플랑크연구소 고고인류학자 필리프 군츠는 “두개골 생김새는 뇌 모양에 따라 생겨난다. 이번 발견에서 현대인의 얼굴 형태는 인류 초기에 형성된 반면 뇌의 모양이나 기능은 호모 사피엔스 혈통 안에서 계속 진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시베리아 알타이산 인근에서 발견된 4만년 전 인류 종)과 현대인의 비교 연구에서 뇌와 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에 차이가 있음이 구명된 바 있어, 연구팀은 호모 사피엔스 두개골의 진화가 여느 인류 종과는 다른 뇌의 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적 변화와 연관돼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벤은세르 박사는 “초기 호모 사피엔스는 모로코 제벨 이르후드(30만년 전), 남아프리카 플로리스배드(26만년 전), 에티오피아 오모 키비시(19만5천년 전) 등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매우 복잡한 진화과정을 겪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동안 북아프리카는 인류 기원 논쟁에서 배제돼왔지만 이번 발견은 호모 사피엔스 출현 시기에 머그레브(북아프리카의 모로코·알제리·튀니지에 걸친 지방)와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지역이 강하게 연결돼 있었다는 것을 웅변해준다”고 말했다.
한편 제벨 이르후드 화석들과 함께 발견되 동물 뼈들은 호모 사피엔스들이 사냥을 했음을 보여주는데, 가장 많은 동물 뼈는 가젤 것이었다. 또 이들이 사용한 석기는 르발루아문화(유럽의 구석기 중기에서 후기에 걸친 박편 석기계의 문화) 시기의 형태여서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때가 중기구석기시대임을 보여주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막스플랑크연구소 고고학자 섀넌 맥페런은 “중기석기시대의 석기는 같은 시기 아프리카 전역 유적지에서 발견돼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외부로 퍼져나가기 이전에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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