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4. 12:28ㆍ쿠오바디스 행로난
ㆍ용(勇), 인문을 구현하는 덕
‘물에 빠진 개’는 때려야 할까, 때리면 안되는 걸까. 근대 중국의 상징 루쉰이 낸 문제다. 그러곤 단호하게 답했다. “물에 빠진 개는 때려선 안되는 게 아니라 때에 따라선 그야말로 때려야 한다.”(<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여기서 그가 때려야 마땅하다고 한 개는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사람을 무는 개’다. 그런 개라면 “뭍에 있든 물에 있든” 모조리 패야 마땅하다는 것이 루쉰의 생각이었다.
■ ‘어진 이’는 필연적으로 용맹하다
하루는 자로가 스승 공자에게 성인(成人), 그러니까 ‘완성된 사람’의 조건을 여쭸다. 공자는 늘 그랬듯이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얘기해줬다. “장무중의 슬기와 공작의 청렴, 변장자의 용맹, 염구의 학예를 갖추고 이를 예악으로 가다듬으면 성인이 될 수 있다.”(<논어>) 공자의 윤리학에서 완성된 사람은 어진 이(仁者)를 가리킨다. 결국 공자는 어짊을 이루는 데 용맹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는 어짊에는 용맹(勇)이 내포되어 있음을 시사해준다. 물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자로는 스승의 답을 듣고는 내심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용맹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의 답변이 다소 의아해진다. <논어>의 다른 곳을 보면 공자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자로의 용맹을 누르고자 했기에 그렇다. 통념상으로도 용맹과 어짊 사이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다.
그런데 공자의 이런 관점은 “어진 이는 필연적으로 용맹하다”(<논어>)는 언급에서도 재차 목도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짊과 용맹을 긴밀하게 연동시킨 예는 사실 적지 않다. 기원전 605년 정나라 공자 귀생이 모반을 일으켜 군주를 죽였다. 이 일이 있기 전 당시 권세가였던 자가란 귀족은 귀생의 역모를 미리 알고 있었다. 그는 윤리에 맞지 않는다며 귀생을 말렸다. 그러나 협박에 못 이겨 도리어 귀생 편에 섰다. 바른 도리를 실현코자 했음에도 결과적으론 역적이 되고 만 셈이다. 이를 두고 사가는 “어질면서 무하지(武) 않으면 어짊을 이루지 못한다”(<춘추좌전>)고 평했다. 무(武)도 용(勇)처럼 어짊 실현의 필요조건으로 설정된 셈이다.
‘무하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무공이나 무력 등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지녔다는 뜻으로 쓰인다. 문제는 ‘무하다’가 그런 뜻으로만 쓰였다면 위 사가의 평가가 제법 어색해진다는 데 있다. 외견상 어짊이란 덕과 무라는 역량은 꽤 다르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춘추좌전>의 저자 또한 공자처럼 그 둘을 상호보완적 관계로 놓았다. 왜 그랬을까.
■ 용이 덕인 까닭
열쇠는 무(武)가 지니는 또 다른 뜻에 있다. ‘武’는 창이란 뜻의 과(戈)와 그치다는 뜻의 지(止)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창은 전쟁을 가리키기에 무는 “전쟁을 그치다”는 뜻을 지니게 된다. 다시 말해 무라는 역량은 단지 체력이나 완력, 전투력 같은 물리력 자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그치는 힘의 뜻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충돌이나 전쟁을 야기하는 물리력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다툼을 해소하는 물리력이다. 무가 윤리적 정당성을 지닌 물리력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무는 용맹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이는, 용도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음을 일러준다. 공자가 예나 의가 결여된 용맹은 혼란을 야기하며, 소인배가 그러면 도적이 될 뿐이라고 잘라 말했던 이유다. “의롭지 못하게 죽음은 용맹이 아니다” “의를 따름을 일러 용맹이라 한다”(<춘추좌전>)는 명제가 성립된 근거다.
훗날 주희가 “용은 힘써 행할 수 있음”(<논어집주>)이라고 개괄한 것도 용을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는 덕으로 본 이러한 전통의 소산이었다.
사람은 머리로만 알고 몸으론 실천하지 않을 수 있는 존재다. 또한 “말하지 않으면 그 누구라도 품은 뜻을 알 수 없는”(<춘추좌전>) 게 우리네 사람이다.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가 영어를 할 줄 아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어짊이란 덕도 마찬가지다. 어짊이 무엇인지 잘 알고, 어질고자 하는 의지가 충일해도 그것이 실제로 구현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가 어진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
아무리 내면에 훌륭한 덕을 갖췄을지라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면, 달리 말해 실현해내는 힘이 없으면 결과적으론 그러한 덕을 갖추지 못한 꼴이 되고 만다. 전쟁 종식을 염원해도 끝낼 수 있는 힘이 없으면, 말만 그러했다는 비난에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용이나 무는 어짊의 완성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덕이다. 그것은 내면에 갖춘 덕을 외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게 윤리적 가치를 몸으로 실행케 하는 역능이란 것이다.
이것이 “문무겸비(文武兼備)”란 최고 지향의 진면목이었다. 문관으로서 지녀야 할 능력과 무장으로서 갖춰야 할 능력 모두를 더불어 구비했음만을 일컫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어짊으로 대표되는 인문(文)적 제 가치를 제대로 실현해낼 수 있는 능력(武)의 겸비도 가리켰던 것이다.
■ ‘역부족’과 ‘하려 하지 않음’의 차이
익히 경험했듯, 또 현전하는 수많은 글이 증언하듯이 일상에서 덕을 구현하며 산다는 건 사실 녹록지 않다. 한때 3000명을 상회했던 공자 제자 가운데 ‘톱 10’에 속하는 염구조차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힘에 부칩니다”라며, 그 어려움을 토로할 정도였다.
물론 그가 스승으로부터 돌려받은 건 호된 질책이었다. “넌 하기도 전에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다!” 이는 애당초부터 ‘하려 하지 않는’ 태도였다는 것이다. 공자가 보기에 “힘에 부친다(力不足)”는 “힘써 행했지만(力行)” 더는 못하게 될 때나 쓸 수 있는 말이었다. 힘에 부쳐서 ‘할 수 없다’고 하는 것과 앞서 포기하며 아예 ‘하려 하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가 “용맹한 자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제자들을 독려한 까닭이 이것이었다. 두려워하지 않음은 한계가 보이고 난관에 부닥쳐도 좌절하거나 지레 나앉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줄 몰라서 못하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좋은 일일지라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선 적어도 ‘하지 않게끔 하려는’ 것들과 타협하지 않는 능력이 필요하다. 루쉰은 저 옛날 하나라 걸왕의 폭정이 극에 달했을 때 사람들이 저마다 “이놈의 해는 언제 진단 말인가? 내 기필코 너와 함께 망하리라”며 극한의 분노를 표출했지만 막상 실행하기로 결단한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고 탄식했다. 용맹이라는 뜻한 바를 완수케 하는 덕이 필요한 이유다. 게다가 스스로 한계를 긋는 태도는 자기만 하려 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하고자 나서는 타인도 하지 못하게 하려 애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상과 망상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시간이 더 흘러가도 여전히 ‘할 수 없다’와 ‘하려 하지 않는다’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한 채, 정원 청소와 지구 쪼개기가 같은 것인 양 뒤섞어 말한다. 정원에 악취가 나서 청소해야 한다고 하면 (…) 그들은, 여기다 오줌을 쭉 누어왔는데 어떻게 청소하냐며 절대로 할 수 없고 결단코 불가하다고 말한다.”(루쉰, <수감록>)
20세기 초엽 중국에서도 언론의 사회적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정원에 오줌을 쭉 누어왔던” 이들도 언론을 적극 활용하여 “정원 청소”, 그러니까 사회악을 일소하는 일을 기필코 하지 않으려 들었다. 결코 수동적이지도, 방어하기에 급급해하지도 않았다. 늘 그랬듯이 청산될 때까진 가능한 한 공세적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루쉰의 증언이다.
“수많은 차별로 사람들을 찢어놓아 급기야 남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며, 저마다 남을 노예로 부리고 잡아먹을 수 있다는 희망에 젖게 하여 언젠가 자신도 노예가 되고 잡아먹힐 수 있음을 망각하게 한다. 그 결과, 문명이 있은 이래 크고 작은 인육의 향연이 허다하게 줄곧 베풀어져 왔고, 사람들은 그 잔치판에서 서로 먹고 먹히면서 흉포한 무리의 야만적 환호성으로 약자의 처참한 아우성을 뒤덮어왔다. 여인과 아이들은 더 말할 나위 없는 지경이었다.”(<등하만필>)
왠지 저 옛날 중국에 있었던 남의 일로만 느껴지진 않는다. 당시 루쉰의 삶터에서도 평등을 얘기하고 정의를 얘기하면 ‘빨갱이’니 ‘과격파’니 하는 딱지가 언론을 통해 덕지덕지 붙곤 했다. 이념으로, 지역으로 또 세대로 사회를 갈래 쳐 서로 물고 물어뜯게 하는 전략이 “문명이 있은 이래 줄곧” 악용됐음이다.
공자의 시대든 그보다 2500여 년이 흐른 루쉰의 시대든 간에, 또 자신을 닦든 사회를 다스리든 간에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목적한 바를 달성해내는 덕”, 곧 용맹이 필요했던 이유다.
■ 투철하게, 단호하게!
“물에 빠진 것은 ‘사람’이 아니라 ‘개’다!” 루쉰은 물에 빠진 개를 보면 측은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갈했다. 사람을 상습적으로 물어뜯다가 참다못한 사람들의 몽둥이질에 도망가다 물에 빠진 개임에도,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고는 불인지심(不忍之心), 곧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발동되어 그만하면 됐다며 용서해주자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맹자가 불인지심을 처음 언급했을 때와는 상반된 용법이다. 그는 폭정을 일삼던 하나라 걸왕이나 상나라 주왕을 물리력을 써서 쫓아낸 역사를 두고, 신하가 군주를 쫓아낸 게 아니라 선한 이들이 사악한 필부를 쫓아낸 데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왕도정치를 표방하며 꾸준히 인의(仁義)를 설파했던 그였지만, 인민을 질곡에 빠뜨린 채 호의호식하는 군주를 징벌하는 전쟁을 ‘의로운 전쟁(義戰)’이라 규정했다. 악을 종식시키기 위한 물리력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뜻이다. 그가 말한 불인지심은 고통에 겨워하는 남을 가만 두고 보지 않는 마음으로, 고통 유발의 근인을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징벌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상대의 회개 여부를 점검하기는커녕 겉모습만 보고 용서해주자는 마음이 불인지심이 아니라는 얘기다. 악을 보고는 “차마 참지 못하게 되는” 불인지심이 참된 불인지심이라는 것이다.
루쉰은 사람을 무는 개가 물에 빠진 모습을 보고 침례를 받는 기독교인이 연상되어 개가 회개했다고 여긴다면, 착각치고는 대단한 착각이라고 경계했다. 개는 헤엄칠 수 있어 유유히 도망쳐 숨을 줄도 알고, 수세에 처했다고 판단되면 절뚝거리며 사람들의 동정을 유발할 줄도 안다. 그렇게 기회를 엿보다가 틈을 타 다시 들이닥치면, 전과 같이 사람들을 물어대고 우물로 몰아 빠뜨리고는 돌을 던져대는 등 “차마 하지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명이 있은 이래 지속돼온 사람을 물어뜯는 개의 속성이다. 그래서 루쉰은 인류의 선한 가치에 무조건 기대지 말라고 주문했다.
악한 이가 그에 기대어 연명하고 기회를 틈타 다시 위세를 부리게 되면, 그들은 예전처럼 선한 가치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을 공격한다. 루쉰이, 회개하지 않은 개는 뭍에 있든 물에 빠졌든 간에 단호하게 때려야 한다고 잘라 말한 까닭이다. 또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고 진단한 근거다. 그것은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에서나 펼쳐낼 수 있는 좋은 가치이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지켜야 하는 절대선은 아니기 때문이다.
악한 개를 직접 때리자는 얘기를 함이 당연히 아니다. 루쉰의 시대, 중국에는 아직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어 있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다르다. 헌법으로 대변되는 제반 민주주의 제도가 갖춰져 있다. 이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원칙에 의거하여 투철하고도 단호하게 운용하자는 얘기다. 그러려면 일상을 영위하면서 선한 가치를 구현해주는 용맹을 저마다 갖출 필요가 있다. 지금은 안팎에서 밀려드는 타협과 압박을 넘어, 선을 이뤄내지 않으면 차마 참지 못하는 그런 “불인지심”의 헤게모니가 필요한 단계이기에 그렇다. 시민이 국가의 참된 주인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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