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와 행로난](35) 다름을 받아들이는 곱셈의 정치가 제국을 세웠다

2017. 7. 4. 12:30쿠오바디스 행로난

ㆍ무엇을 경세(經世)의 지팡이로 삼을 것인가

청 건륭(乾隆) 연간 궁정화가가 그린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 원단을 맞이하여 제국 안팎에서 온 사절단이 건륭제를 알현하는 장관을 그렸다. 제국은 안팎을 아우를 때 비로소 구축되고 또 유지될 수 있다. 베이징고궁박물원 소장

청 건륭(乾隆) 연간 궁정화가가 그린 ‘만국래조도(萬國來朝圖)’. 원단을 맞이하여 제국 안팎에서 온 사절단이 건륭제를 알현하는 장관을 그렸다. 제국은 안팎을 아우를 때 비로소 구축되고 또 유지될 수 있다. 베이징고궁박물원 소장

한 고조 유방이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통일한 지 얼마 안 돼서의 일이다. 육가라는 유생이 있었다. 그는 무시로 고조에게 나아가 <시경> <서경> 구절을 거론하며 국정을 논했다. 그러자 고조가 말했다. “나는 말 위에서 거처하면서 천하를 얻었소이다. 경전 따위를 뭐하러 따르겠소?”(<사기>)

■ ‘곱셈의 정치’로 일궈낸 제국 

주지하듯 고조를 비롯한 한 제국의 건국공신들은 대개가 구석진 고을의 한량 출신이었다. 그렇다 보니 건국 후 몇 년이 지났어도 조정엔 자기 무훈을 떠벌이는 소리로 가득했고, 술에 취해 궁중에서 칼을 휘두르는 광경도 종종 빚어졌다. 육가 같은 유생이 고조에게 경전을 자꾸 언급했던 이유다.

그럼에도 고조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감 잡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 저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의 힘으로 절대 지존인 황제 자리까지 올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문제는 그건 난세였기에 가능했다는 데 있었다. 하여 육가는 고조에게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하여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라며 되물었다. 그러곤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천하를 힘으로 거슬러 취했지만 순리로 지켰습니다. 문무를 겸용함이 장구히 지속할 수 있는 방도입니다”라고 아뢨다.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 고조는 육가에게 바로 어찌하면 되냐고 물었고 육가는 <신어(新語)>를 지어 바쳤다.

거기에는 갓 출범한 제국을 안정되게 지켜나갈 수 있는 방책이 살뜰하게 담겨 있었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 대부분은 말 위에선 결코 얻을 수 없는 바들이었다. 바로 ‘인문(文)’이 그것이었다. 인문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란 얘기가 아니었다. 인문 없이 천하를 움켜쥘 순 있어도 그것 없이 지킬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천하를 지킨다는 건 그걸 쟁취하고자 기꺼이 피비린내를 뒤집어썼던 때와는 전혀 다른 국면이었다. 말 위에서 얻은 것에 더하여 뭔가가 더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곧 적어도 물리적으로라도 합해가는 덧셈의 정치가, 아니 가능한 한 화학적 변이를 통해 상호 융합되는 곱셈의 정치가 절실하게 요청됐던 것이다. 

이는, 한 제국의 터전이 됐던 진시황의 진 제국이 곱셈의 정치 덕분에 설 수 있었음을 감안할 때 백번 타당한 판단이었다. 사마천이 “한은 진의 제도를 계승했다”(<사기>)고 증언했듯, 한 제국의 터전은 실은 진시황이 건설한 진 제국이었다. 그 진은 승상 이사가 논파했듯이,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곱셈의 정치를 꾸준히 행했기에 제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는 “외국에서 온 인재를 쫓아내면 진의 미래는 없다”는 취지의 상소에서 선대왕들이 곱셈의 정치로 진을 부강케 했음을 지적, 진시황 설득은 물론 진이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 품을 더 넓게, 속을 더 깊게! 

진시황릉 병마용갱에서 발굴된 진 제국 시절의 군관과 병사 모습. 기록에 의하면 궁사는 7척 5촌(약 180㎝)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신체 조건과 외모는 ‘한족(漢族)’의 모습과 확연히 구분되며, 서역 계통의 혈통이 섞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나라는 이렇듯 안팎의 융합을 통해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진시황릉 병마용갱에서 발굴된 진 제국 시절의 군관과 병사 모습. 기록에 의하면 궁사는 7척 5촌(약 180㎝)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신체 조건과 외모는 ‘한족(漢族)’의 모습과 확연히 구분되며, 서역 계통의 혈통이 섞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나라는 이렇듯 안팎의 융합을 통해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은 이사뿐만이 아니었다. 정치적 통일이 이뤄지지 않는 한 중원에는 중화로서의 미래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공유된 전국시대, 이미 유파 불문하고 곱셈의 정치가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었다. 그건 비유컨대 정치라는 그릇의 품을 넓히고 속을 깊게 하는 활동이었다.

“한 고을에서 빼어난 이는 고을 급에서 빼어난 이와 벗한다. 한 나라에서 빼어난 이는 나라 급에서 빼어난 이와 벗한다. 천하에서 빼어난 이는 천하의 빼어난 이와 벗한다. 그것으로도 마음이 차지 않으면 옛사람들을 따져본다. 그들의 시를 읊조리고 글을 읽어보는데 어떻게 그 사람됨을 모를 수 있겠는가. (…) 이것이 옛사람과 벗한다는 것이다.”(<맹자>) 

정치는 적어도 사회라는 시공간과 이념이라는 사상적 입지를 요한다. 곱셈의 정치를 실현하려면 못돼도 이들을 넓히고 깊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맹자는 윗글에서 “거슬러 올라가 고인과 벗하다”는 뜻의 ‘상우(尙友)’론을 전개한다. 여기서 그는 사회의 시공간을 공시적으론 온 천하로, 통시적으론 천고(千古)로 확장한다. 말만 통하면 평생 다녀도 다 밟아보질 못할 품의 천하도, 사람인 이상 절대 가볼 수 없는 아득한 옛날과도 너끈히 소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천하와 천고 모두 당대의 사회적 시공간을 구성하는 어엿한 일원으로 포섭해낸다. 

이는 수백 년째 분열되어 이질화된 중원을 공히 담아낼 수 있는 이념적 입지를 마련한 것이기도 했다. 소통 가능한 언어가 매개되면, 사회적 현실에 통시적 깊이를 가하는 작업은 공통의 기원을 만드는 일이 된다. 그럼으로써 당대의 조각난 현실도 천고 전 동일 기원에서 발원됐다는 이념의 구축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맹자는 도덕 차원에서 주조한 한층 확장된 품과 속을 곱했다. 성선설 얘기다. 모든 사람은 하늘의 선함을 갖춘 채 태어난다고 함으로써 그는 어떤 사람이든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공통의 본질을 고안해냈다. 도덕의 세계에 형이상학적 깊이를 가함으로써 곱셈의 정치를 행할 윤리학적 터전을 빚어낸 것이다. 

맹자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소피스트와 종종 비견되는 명가들은 형식논리와 개념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함으로써 논리 차원에서 한결 확대된 품과 속을 제공했다. 곱셈의 정치를 행할 인식론적 바탕을 구축해낸 셈이다. 지리 차원에서도 폭이 넓어졌다. 음양가의 대표적 학자로 알려진 추연은 오행 사상을 바탕으로 중원의 역사를 하나의 통일적 유기체로 엮어내더니, ‘대구주설’을 주창하여 세계에 대한 지리적 상상을 극대화했다. 천하는 모두 81개 구역으로 이뤄져 있고 이른바 ‘중국’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함으로써, 중원으로만 수렴되는 내향적 시선을 외부로 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훗날 전통적 중원뿐 아니라 동으로 만주부터 서로 티베트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강역을 동시에 아울렀던 청 제국의 옹정제는 만리장성 이남의 중원은 ‘n개’의 천하 중 하나일 뿐이라며 그 위상을 축소 조정했다. 추연의 대구주설은 그저 관념의 유희가 아니었던 셈이다. 중국(華)과 오랑캐(夷)를 하나로 묶는 “화이일가(華夷一家)”의 대통합에 언제든 쏠쏠한 사상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제국을 무너뜨린 ‘여집합’의 정치 

진시황에게 곱셈의 정치를 역설한 이사의 상소 <간축객서(諫逐客書)>는 바로 이러한 전통에 서 있었다. 진이 아무리 지형 지리적 이점과 자원의 풍부함을 끼고 있을지라도 외부로부터 인재와 값지고 유용한 물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n개’의 그만그만한 나라 중 하나에 머문다는 게 그가 설파한 곱셈의 정치였다. 

그는 태산이 흙을 골라 쌓았다면, 황하와 바다가 물을 가려 받았다면 어떻게 그 웅장한 규모가 가능했겠냐며, 대통일된 제국을 향한 곱셈의 행보는 인간사를 넘어 우주의 자명한 섭리라고 강조했다. 그러던 그가 막상 통일을 일궈내자 싸늘하게 돌아섰다. 그건 뺄셈이나 나눗셈이란 말로 형용할 수 있는 수준의 돌변 그 이상이었다. 여집합의 정치라고나 할까, 천하를 ‘진 대 그 나머지’의 집합으로 재설정하고는 당장이든 미래든 간에 진에 도움이 안 되거나 거치적거린다고 간주되면 여지없이 도려내고자 했다. 그렇게 해야 제국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음이다.

두고두고 ‘역대급’ 욕을 양산한 분서갱유가 대표적 사례다. 그의 진언에 의해 농경이나 의술 등 실용서적을 제외한 책들이 태워졌고 주요 지식인이 매장됐다. 오랜 세월 축적된 인문의 정화와 지식도 함께 묻혔다. 문명의 빛이 그렇게 매몰됐고 지식이 축출된 자리에선 우매함만이 판쳤다. 그는 유학자인 순자에게서 수학했음에도 강력하고 촘촘한 법치를 주창했다. 그 결과 사람을 인간답게 하는 본질적 요소인 자율성과 도덕적 선의지 등이 사회적 일상에서 배제됐다. 제국을 만들어낸 힘에 제국 수성에 꼭 필요한 인의(仁義)가, 육가의 표현을 끌어오자면 ‘문(인문)’이 곱해지지 않았던 셈이다.

외교와 내정 모두에서도 이사는 여집합의 정치를 견지했다. 그는 주변 이민족을 적대시하여 내모는 데 주력했다. 안으로 광활한 제국의 강역은 중앙집중적으로 다스리고자 했다. 물론 오늘날과 같이 중앙과 지방의 협치를 가능케 하는 생산력과 기술력이 뒷받침되면 괜찮기도 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당시 문명조건을 감안하면 이는 지방의 장점을 곱해내기는커녕 더해가기조차 버거운 배제의 정치였다. 중앙과 지방의 공존은 무너져갔고 지방은 그렇게 제국의 품안에서 실질적으론 덜어내졌다.

결국 진은 지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반란으로 단명하고 말았다. 수백 년간 이어온 곱셈의 정치로 일궈낸 제국을 불과 십여 년간의 여집합의 정치로 허무하게 날리고 만 것이다.

■ 대선, 어떤 지팡이를 택할 것인가 

최근 우리 사회에 이사의 그림자가 부쩍 짙어지고 있다. 통일 전의 그림자 말고 후의 그림자를 말함이다. 정치인 등 소위 여론주도층에 속하는 인물들은 나라 안팎을 대상으로 덜어내고 떼어내며 따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안으론 지역과 이념, 세대, 성별 등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편을 가르고 있다. 그러곤 상대를 나머지로 분류하며 몹시도 적대시한다. 

밖으로도 연신 떨어내느라 정신이 없다. 북한이 국가부터 개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음에도 소거 쪽으로만 몰아간다. 중국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남에도 줄곧 경시하고 밀쳐내고 있다.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에서, 또 한국사에서 일제의 반문명적, 비인간적 역사를 삭제하고 있다. 중동이나 남아시아는 차치하고, 수천 년간 우리 문명과 밀접하게 연동됐던 동아시아나 실크로드 권역에 대한 정책과 비전을 내놓은 대선 주자를 아직 못 봤다. 이들 지역이 중국의 21세기 세계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과 정확하게 겹치는 지역임에도 말이다.

이런 편협한 퇴행의 와중에 인문적 시민사회 구현,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 같은 새 시대를 위한 과업이 표류되고 있다. 경제규모나 군사력, 또 한류로 국제 경쟁력이 일정 부분 인정된 문화적 역량 등은 지난 세기 말에 이미 대한민국이란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치적 리더십이나 이념적 포용력은 일국을 건사하기는커녕, 자기 붕당 정도나 관리할 수준으로 퇴화하고 있다. 이번 대선을 대통령 탄핵으로 생긴 공백이나 메꾸는 과도기적 선거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다. 친일과 냉전, 독재와 재벌로 대변되는 20세기 유산을 청산하고, 인문과 평화의 일상적 구현이란 사회적 이상 실현을 위한 초석을 놓아야 하기에 그렇다. 

육가는 한 제국의 기틀을 설계하면서 “높은 곳에 거주하는 이는 가옥이 튼튼해야 하고, 위험한 곳을 다니는 사람은 지팡이가 단단해야 한다. 가옥이 부실하면 무너지고 지팡이가 단단하지 못하면 넘어지고 만다”면서 고조에게 당신은 무엇을 지팡이로 삼을 거냐고 되물었다.

“성인을 지팡이 삼으면 황제가 되고 현자를 지팡이 삼으면 왕이 됩니다. 어진 이를 지팡이 삼으면 패자가 되고 의로운 이를 지팡이로 삼으면 강자가 됩니다. 중상모략을 일삼는 자를 지팡이 삼았다간 나라가 결딴나고 도적을 지팡이 삼았다간 목숨을 잃게 됩니다.”(<신어>)

물론 답은 너무나도 뻔했다. 당연히 성인을, 못돼도 어진 이를 지팡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조는 제국 건설 과정에서 이미 패자와 강자의 지팡이는 획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제국의 수성은 불가능하다. 천하 경영에 꼭 있어야 함에도 패자나 강자에겐 결여되어 있는 것, 바로 그것을 곱해야 비로소 제국을 만세에 유전할 수 있는 반석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제안이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주권자인 우리는 무엇을 지팡이로 삼았기에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을까. 댓글 조작은 어느덧 가짜 뉴스로 진화하고(선만 진화하는 게 아니라 악도 진화한다!), 중상모략과 부정부패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고조에게 던진 육가의 질문이 주권자로서 우리에게 더욱 절실해지는 대목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리더십을 경세의 지팡이로 삼을 것인지, 냉철하고 또 냉철해야 할 시점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205&artid=201703311928005#csidx2adb9b6591b5d489a06986a30eea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