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4. 12:32ㆍ쿠오바디스 행로난
일정한 수입 뜻하는 ‘항산’
일정한 마음 뜻하는 ‘항심’
항산·항심은 정치의 핵심
최저생계 해결식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 주장
홀몸 노인·부모 없는 아이들
토지 줘도 생존하기 어려워
국가의 직접 봉양 ‘강조’
왕권 유지 향한 이기심 이용
백성들 농번기에 배려하고
조세 부담 줄여 생활 안정
항산은 항심도 불러내지만
국가 기본 의무도 생각해야
말은 시시때때로 요물(妖物)같이 군다. 물론 그것이, 인류가 인간답게 사는 데 중요한 노릇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반면에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사람을 짐승보다 못하게 하고 사회를 정글로 전락시키는 데 기여했음도 부인키 어렵다. 돈과 권력만 좇는 세력과 결탁했을 때는 ‘흑마술’을 부려 삶터 곳곳에서 사악한 기운이 움트게도 한다.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말이든 그 반대이든 늘 따져보고 짚어봐야 하는 까닭이다.
■ 말, 감추거나 더 불러내거나!
말이 부리는 주된 ‘요술’은 뭔가를 가리거나 더 드러낸다는 것이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어도 끝끝내 말을 거는 이 하나 없으면 나는 어느새 ‘유령’이 된다. 아무리 임금일지라도 다들 옷이 멋지다고 하면 벌거벗은 채로 대낮에 큰길을 활보한다. 3D를 ‘쓰리디’가 아닌 ‘삼디’로 읽었다고 졸지에 시대에 뒤처졌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기도 한다.
당연히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실증적 근거도 타당한 추론도 없이 은폐되거나 날조됐기에 그렇다. 그런데 실은 뭔가를 감추거나 더 불러내는 건 말이 지닌 본성이기도 하다. 살아간다는 말은 죽어간다는 사실을 덮고, 겨울이 갔다는 말은 봄이 왔음을 상기한다. 하여 ‘주다’는 뜻의 수(授)엔 ‘받는다’라는 뜻이 들어 있고, ‘바로잡는다’는 뜻의 교(矯)엔 ‘잘못되다’라는 뜻이 들어 있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받는 행위가 일어나지 않으면 주는 행위가 완수될 수 없고, 잘못된 바가 없으면 바로잡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다’는 ‘받는다’는 활동을 소환하고, ‘바로잡다’는 뭔가가 잘못되어 있음을 환기한다.
해체한다는 말도 그러하다. 헐어내고 부수는 활동 자체만을 가리킬 때를 말함이 아니다. 가령 ‘해체론’이니 ‘해체주의’와 같은 용례서의 해체는 그냥 허무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해체를 통해 뭔가를 더 드러내려고 하는, 역설적이지만 해체함으로써 뭔가를 더 구축해내려 하는 기획된 활동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해체는 ‘해체’가 아니라 ‘해체+’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무엇을 위한 해체인가” 식의 물음을 던짐으로써 해체가 불러내는 ‘무엇’에 눈길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달랑 ‘항산’이라고 썼지만 이를 ‘항산+’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항산(恒産)은 <맹자>에 나오는 말로 ‘지속 가능한 일정한 수입’을 뜻한다. 이 말을 논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주로 ‘지속 가능한 일정한 마음’이란 뜻의 항심(恒心)과 짝 지어 이해해왔다. 항산, 항심의 지적 재산권자인 맹자가 애초부터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일정한 수입이 없어도 일정한 마음을 지님은 오직 사(士)만이 가능합니다. 백성은 일정한 수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도 없어집니다. 일정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괴팍하며 삿되고 과도하기를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죄에 빠진 후에 쫓아가 형벌을 가한다면 이는 백성을 그물로 사냥하는 것입니다.”(<맹자>)
항산에 항심을, 피치자 백성에 식자층 사를 배당하며 논지를 엮었고, 거기에 항심이 없으면 일탈하고 죄를 짓는다는 진술을 곁들였다. 이를 알면서도 방비하지 않는다면 결국 백성을 짐승 사냥하듯 처벌하는 꼴이 된다. 그러다간 왕 노릇을 얼마 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백성이 일정한 마음을 갖출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그들이 일정한 수입을 지닐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항산은 분리 불가능한 하나의 과정(process) 속에 항심과 ‘한 몸’으로 결합되어 있다. 표기는 달랑 항산이지만 그것은 늘 항심을 불러내어 ‘항산+항심’으로 읽혔던 것이다. 이를테면 ‘항심을 위한 항산’ 식으로 말이다.
■ 항산, 인간과 짐승을 가르는 경계
맹자 사유에서 항심의 비중은 무척 크고도 무겁다. 그는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은 매우 미미하다. 백성은 그것을 버려두고 군자는 그것을 보존한다”고 말했다. 백성도 인간이지만 그것을 방기하면 곧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관념이다.
여기서 ‘그것’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다는 하늘의 선한 본성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는, 사람은 누구나 본성이 선하다(性善)고 규정했다. 다만 그것을 타고나기만 하면 저절로 짐승과 달라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의식적으로 추구해야 비로소 짐승과 구분된다는 것이다. 곧 인간이 동물과 변별되는 핵심 근거를 맹자는 도덕 본성의 추구 여부에서 찾은 셈이다. 이를 위 인용문 속 용어로 바꿔 표현하자면 항심의 추구 여부로 인간과 짐승을 나눴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항산의 보장은 인간과 짐승이 갈라지는 문턱이 된다. 항산은 항심을 갖출 수 없는 조건에서 살아온 백성에게 그것을 갖출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해준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항산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위한 토대로 작동된 셈이다. 다시 말해 항산이 홀로 구현되지 않고 ‘항산 더하기 항심’ 식으로 모듈화되어 구현됨으로써 인간이 금수로 주저앉음을 방비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항산은 백성에게 인간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을 제공해준다.
맹자는 미연에 방지함을 정치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냥 놔두면 틀림없이 일탈하고 죄를 저지를 것임에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사달이 난 후에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사냥이라고 봤다. 길목에 그물을 쳐놓고 물고기나 산짐승을 잡는 것과 별다를 바 없다는 논리다. 따라서 항심의 추구를 가능케 해주는 항산은, 위정자가 백성을 짐승으로 보지 않고 동류의 인간으로 대하고 있음을 보증하는 증좌가 된다. 그건 힘을 가진 위정자가 피치자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고 있으니, 자신이 제시한 도덕과 이념, 법, 제도 등에 동의해주는 대가로 피치자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저당이다.
따라서 항산을 단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란 차원에서만 보면 모자란다. 가령 물질적, 경제적 차원에서의 최저생계 해결책 식으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차원의 생존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향하기에 그렇다. 인간으로서 산다는 것은 인문적 삶을 영위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항산은 애초부터 ‘항산+인문’의 형식으로 설계되고 활용되어왔던 것이다.
■ 백성이 곧 국가의 밑천
그런데 맹자가 말한 항산의 구체적 모습은 어떠할까. 지난 2011년 무상급식정책을 거부한 서울시장이 주민투표로 사퇴했고, 18대 대선에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공약으로 제시한 기초노령연금이 그의 대통령 당선에 적잖이 기여했다. 한창 진행 중인 19대 대선에선 기본소득이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사회복지가 정치지형을 실질적으로 바꿀 정도로 우리 사회의 힘센 상수로 등장했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한자권의 전통 유산에서 오늘날 복지 구현에 유용한 자산을 발굴하는 작업도 활발하게 수행되고 있다. 맹자의 항산은 그런 작업의 꽤 오래된 단골손님이었다. 그가 말한 항산의 실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현명한 왕은 백성의 수입을 마련해주되, 위로는 부모를 봉양하기에 충분케 하고 아래론 처자식을 기르기에 충분케 합니다. 풍년에는 내내 배부르게 하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케 한 후에야 백성을 몰아 선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5무 크기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그 소출로 50세 된 이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닭, 돼지, 개를 기름에 생육의 시기를 어기지 않으면 70세 된 이가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됩니다. 100무의 밭을 제때에 경작하면 식구가 여덟인 가정이 굶주리지 않게 됩니다. 학교의 가르침을 성실하게 베풀어 효도와 우애를 널리 보급하면 반백의 노인이 길에서 이고 지지 않게 됩니다. 늙어서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백성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는데도 왕 노릇을 하지 못했던 적은 없었습니다.”(<맹자>)
맹자의 항산 구상이 잘 드러나 있는 대목이다. 이를 보면 그의 항산은 제법 넉넉한 생활이 가능한 수준을 지향한 듯 보인다. 굶주림과 추위로 떪에서 간신히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내내 배부르고 노인이 비단옷을 입으며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수준을 언급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이는 맹자의 의도와 정반대되는 이해다. 그는 “나이 오십이 되면 비단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고, 나이 칠십이 되면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고 전제했다. 연령대별로 상이할 수밖에 없는 생존조건을 실질적으로 감안한 항산의 실체였던 셈이다.
맹자는 넉넉한 생활이 아니라 기본적 생존을 가능케 해주는 수준의 항산을 언급했음이다. 그가 자식, 배우자가 없는 노인이나 부모 없는 아이들은 반드시 국가가 나서서 봉양해야 함을 강조할 때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들에겐 항산이 가능한 자산, 예컨대 토지를 줘도 노동 역량이 부족하기에 결국 생존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국가가 그들을 직접 봉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맹자가 국가의 그러한 역할을 군주의 도덕심이나 자애로움 같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 인용문이 왕 노릇을 하지 못했던 적은 없었다는 단언으로 갈무리됐듯이 그는 군주의 이기심에 의거하여 항산의 보장을 요구했다. 민본(民本), 그러니까 백성은 나라의 밑천이기에 사회적 취약계층도 국가의 지원 아래 기본적 생활을 하며 조세와 부역을 감당케 되면 왕으로선 밑지는 거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국가의 시혜가 아닌 기본 의무
맹자는 유학 내에선 근본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 학자였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또 사람을 늘 그렇게 봤던 것은 아니다. 그는 왕에겐 가장 큰 관심사가 왕좌를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백성이 항산이 없으면 언제라도 일탈하고 범죄자가 될 수 있듯이, 왕 노릇을 유지하기 위해서 왕은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존재임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백성이나 왕을 백안시했음도 아니다. 백성은 항산을 주면 식자층처럼 항심을 지니게 되어 인간으로서 살게 되고, 왕은 그 이기심을 채워주면 그를 통해 인정(仁政), 곧 어진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여겼을 따름이었다. 하여 그는 농번기 때 경작하고 가임 주기에 맞춰 가축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하는 수준 이상으로 군주에게 얻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조세 부담의 최소화 정책이 대표적 예다. 그는 시장에선 점포 단위로는 세를 물어도 상품에는 세를 매기지 않고, 세관에선 감독은 하지만 관세를 면해주며, 농민에겐 공전 경작 의무만 부여할 뿐 별도의 세금을 걷지 않는다면, 또 가옥에 인구세나 가구세 따위를 부과하지 않는다면, 천하가 기뻐하며 진심으로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자 할 거라고 단언했다. 이렇게만 되면 천하에 그 나라의 왕을 대적할 이는 없게 된다고 설파했다. 군주가 오랫동안 왕 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항산이 군주에겐 자신의 이기심 충족을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로, 피치자에겐 어진 정치를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국가장치로 고안됐음이다.
결국 항산은 최저생계를 가까스로 꾸려가는 이들이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자산을 더해주는 시혜성 사회복지제도 이상의 복지제도였다. 또한 항심을 갖춤으로써 더 나은 윤리적, 문화적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계기 정도로 빚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 불가능한 여건을 생존 가능한 상태로 바꿔주고, 이를 토대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가능케 해주는 국가의 기본이 되는 사회보장제도였다. 더구나 항산은 항심과 다르게 ‘나’가 치열하게 노력한다고 하여 지니게 되고 유지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된 경세의 기본 장치로 설정됐던 것이다.
이렇게 항산은 ‘+항심’만 소환했던 게 아니라 ‘+국가의 기본 의무’도 늘 불러냈다.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처럼 논의되는 기본소득이 지구촌 곳곳에서 ‘기본소득+’로 읽히면서, 이를테면 ‘기본소득+국가의 기본의무’ 등으로 읽히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실험되고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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