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바디스와 행로난](45) 하늘의 뜻을 알기엔 짧은 인생…그래서 현인은 ‘걷고 또 걸었다’

2017. 7. 4. 12:38쿠오바디스 행로난

ㆍ행로가 난(難)한 까닭
ㆍ역사를 영혼에 실존으로 품었던 공자, 사마천
ㆍ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진리를 도모하니, 그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북송 후기~남송 초기 화가 이당의 ‘채미도’. 백이와 숙제가 쿠데타를 일으킨 무왕을 인정하지 않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북송 후기~남송 초기 화가 이당의 ‘채미도’. 백이와 숙제가 쿠데타를 일으킨 무왕을 인정하지 않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만 캐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그렸다.

걷고 또 걸었던 이들이 있었다. 멀리는 공자가 천하를 두루 걸었고 가까이는 루쉰이 삶이 다할 때까지 길을 내면서 걷고 또 걸었다. 그사이에 사마천이 중원을 예닐곱 차례 돌았고 만주족이 청 제국을 건설하자 고염무란 학인이 수레에 책을 잔뜩 싣고서 중원 여기저기를 두루두루 다녔다. 그들은 왜 세상을 그렇게 걷고 또 걸었던 것일까? 

■ 온고지신의 참뜻 

기원전 496년, 결국 공자는 재상 역할을 그만두기로 했다. 노나라 실권자였던 계환자가 떠나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련 없이 길을 떠나기로 했다. 얼마가 걸릴지 모를 행로였다. 다른 나라로 가면 이만한 관직 하나 못 얻겠냐는 심산이 아니었다. 현실에선 벽에 부딪혔지만 늘 그랬듯이 그에겐 ‘옛것(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옛것을 토대로 삶을 꾸림은 늘 그래오던 바였다. 그는 자신을 성인으로 받드는 제자들에게 “나는 태어날 때 이미 모든 것을 다 깨우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옛것을 좋아하고(好古)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그것을 구하고자 했던 자”(<논어>)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면(溫故知新) 선생이 될 만하다”(<논어>)면서 자기가 스승이 될 수 있는 근거도 옛것을 탐구함에서 찾았다.

다만 그의 “호고”와 “온고”는 골동품 애호와 같은 호사가적 취향이 아니었다. 기득권 수호를 위한 보수나 수구적 정신도 아니었다. 그가 말한 옛것은 과거에 존재했던 것들 자체를 가리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흘러간 시간을 표하는 고(古)와 원인, 까닭 등을 나타내는 고(故)를 같은 의미로 쓴 데서 알 수 있듯이, 또 “고(故)는 그것을 얻어야 일이 이뤄진다”(<묵자>), “고(故)는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설문해자>)이라는 풀이가 말해주듯, 그것은 흘러간 시절의 문물이나 제도 등에 내포된 근거나 원리 등을 가리켰다. 달리 말해 사물이나 사태가 그렇게 있게 되고 벌어지게 한 이치를 환기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온고지신은 무작정 옛것을 오늘날에 되살려야 한다는 요청이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에 이미 검증된 이치를 바탕으로 새것을 사유하고 모색하라는 주문이었다. 이는 세상을, 또 삶을 ‘옛것 대 새것’의 구도가 아니라 ‘이치 대 (그것의) 실현’이란 구도로 보는 정신이다. 그래서 옛것으로 돌아가지만 늘 새것을 빚어낼 수 있었다. “이치를 구현한다”는 지향이, 아무리 삿된 현실일지라도 그것을 돌파하면서 역사를 만들어온 동력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기에 그렇다.

공자는 그러한 옛것, 곧 이치의 세계에서 상나라 말기 그러니까 자신보다 500년가량 앞선 시대를 살다간 백이와 숙제를 만났다. 그들의 기록된 행적을 접했다는 말이 아니다. 공자가 접속한 그들의 삶은 이치가 자신을 드러낸 증거 자체였다. 패악한 현실을 돌파하며 자신을 구현해낸 진리와의 만남이었다. 백이 형제와의 만남이 그에게 궁핍하고 피곤한 행로를 버텨내는 큰 힘이 됐던 까닭이다.

■ 유한한 존재가 무한을 품는 길 

사마천

사마천

과장된 듯싶지만 암튼 사마천의 증언에 의하면 공자는 70여 나라를 두루 다니면서 이상을 펼치고자 했다. 그러나 가는 곳에서 그가 마주한 현실은 주로 기득권자들의 냉대와 조소였다. 흉포한 도적으로 몰려 죽을 뻔도 했고, 노자가 떨어져 기아에 허덕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비를 맞을 때마다 그는 하늘과 치열하게 대화했다. 그에게 하늘은 맹목적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삶과 사회에 구체적으로 개입하는 살아 움직이는 이치였기 때문이다. 

그가 마주한 백이숙제의 삶이 그 확실한 증좌였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여긴 바를 좇아 제후의 아들이란 기득권을 내려놓고, 중원의 동쪽 변방 고죽국에서 서쪽 변방의 주나라로 먼 길을 나섰다. 당시 주나라의 제후는 서백 창이었다. 그는 빼어난 덕망으로 명성이 천하에 자자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도중에 서백 창이 죽고 아들 희발이 무력으로 폭군 주왕을 멸하고 새로운 천자로 등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극한의 폭정으로 신음하던 백성과 천하 제후 3분의 2가 희발, 곧 무왕을 지지했다.

그러자 백이 형제는 발길을 수양산으로 틀었다. 다시 걷고 또 걸어 그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곡기를 끊었다. 신하로서 천자를 무력으로 친 무왕은 결코 의로울 수 없으며, 불의한 군주가 다스리는 땅에서 나는 곡식은 한 올도 먹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그들은 무력에 의한 혁명을 비판하면서 세상 끝 격인 수양산에서 삶을 마감했다. 옳음을 향한 신념을 꺾지 않고 꼿꼿하게 살다간 결기 어린 여정이었다. 하지만 공자 당대의 그들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들은 무왕의 업적을 도외시한 채, 폭력으로 군주를 쫓아냈다는 점만으로 그를 원망하다가 세상을 떠난, 한마디로 융통성 없는 속 좁은 인사들로 평가되곤 했다. 

공자

공자

공자는 이를 바로잡고자 했다. 옳음을 향해 있던 그의 정신은 백이 형제가 자기 영혼에 역사를 실존으로 품고 있었음을 통찰해냈다. 눈앞 현실만 보자면 무왕의 쿠데타가 백 번 옳았다. 이미 주왕의 폭주는 ‘문(文)’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무왕의 쿠데타는 거악 제거를 위해 선택된 불가피한 폭력이었다. 문제는 역사였다. 무왕의 쿠데타가 전례가 되어 훗날 중원에 쿠데타가 반복된다면, 함량 미달의 인사마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며 명분 없는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역사는 분명 폭력의 악순환으로 점철될 것이며, 인민은 반복되는 폭력으로 더 심한 도탄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쿠데타로 당장의 인민은 구제되지만 이로 인해 그들의 사랑하는 후손들이 더 크게 고통당하는 딜레마. 인간 개개인은 유한하지만 인류 역사는 후손들에 의해 계속되는 데서 비롯되는 충돌. 누군가는 이 딜레마를 해소해야 했고 무왕이 역사에 드리운 부담도 줄여야 했다. 그건 역사와 미래의 후손을 폭력의 연쇄로부터 구제하는 중차대한 과업이었다. 

언제부턴가 백이 형제는 자신들이 그 일을 수행해야 함을 자각하고 있었다. 역사라는 더없이 든든한 보루를 자기 영혼에 실존으로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이 좁다는 평판 등에 신경 쓸 거였으면 애초에 제후 아들 자리를 박차고 나서지 않았을 터였다. 하늘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역사는 지속될 것이고, 자신들이 중원의 동서를 가로질러 걸으며 역사에 새긴 여정도 시간의 벽을 넘어 무한하게 유전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그들은 지체 없이 수양산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무왕의 의롭지 못함을 온 생명을 바쳐 역사에 아로새겼다. 

그래서 백이 형제의 삶은 후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 인간이, 자신의 생애를 뛰어넘는 역사란 무대에서 옳음을 구현했던 행로 자체였다. 그것은, 공자가 유한한 존재로서 품게 된 좁은 시야를 스스로 넘어서서 무한의 미래를 품게 되는 길이었다. 

■ 역사, 하늘을 검증하는 길 

공자 사후 400년 가까이 흘렀을 즈음, 그만큼이나 하늘과 치열하게 대화를 나눈 이가 출현했다. <사기>라는 불세출의 거작을 쓴 사마천 얘기다. 그는 대대로 천문과 역법, 역사 등을 관장하는, 곧 하늘 탐구가 가업이었던 가문 태생이었다. 

하여 하늘과 대화하기는 그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사기>의 서문 격인 ‘백이열전’에 이러한 그의 이력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나온다. “이른바 천도란 게 옳단 말인가 아니면 틀렸단 말인가?”라는, 하늘에 대한 가없는 회의가 가감 없이 배어난 언급이 그것이다. 어찌 된 일일까. 저간의 사정은 이러했다. 

발단은 이릉을 변호하다가 고환이 잘리는 궁형에 처해진 사건이었다. 이릉은 오천의 보병으로 십여만의 흉노 기마병을 연파한 맹장이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흉노에 항복했다. 그러자 조정 대신들은 그와 가족의 처리를 둘러싸고 격돌했다. 이때 사마천은 이릉을 두둔하였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사람의 한계조차 넘어서는 수차례의 선전은 투항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판단됐다. 사마천이 보기에 문제는 주력부대가 후원하지 않은 데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판단과 정반대였다. 이릉을 시기하고 전권을 농락하던 이들은 사마천을 매도했고 황제는 사형을 언도했다.

투옥된 사마천은 황제에게 글을 올려 연명을 청원했다. 그는 자기 입으로 “이보다 더 큰 치욕은 없다”고 한 궁형을 자청했다. <사기>를 완성하라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려면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렇고 역사를 살펴봐도 그렇듯이 하늘은 아무래도 공명정대하게 산 이보다는 악행을 일삼았던 이들에게 더 큰 복을 주는 듯했다. 공자만 봐도 그러했다. 하늘 뜻대로 살고자 그리 노력했음에도 하늘은 그를 돕지 않았다. 세상은 그를 환대하기는커녕 세상물정 모른다며 내치고 헐뜯었다. “안 되는 줄 빤히 알면서도 기어이 하려 한다” “집 잃은 개 같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한데 정녕 하늘은 의로운 것일까. 사마천은 어떻게든 살아서 하늘이 과연 선한지를 꼭 물어봐야 했다. 물론 육신의 죽음 대신 사회적 생명의 죽음을 택한 대가는 엄청 가혹했다. 궁형의 상처가 아물자 조정은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당대 최고 지식인을 썩힐 수는 없었음이다. 피치 못하게 오가는 출퇴근길은 예상대로 경멸의 시선으로 가득했다. 감내하고 또 감내하며 주위의 냉소를 살아내야 하는 근거로 되삼았다. 기회가 닿는 대로 궁형에 처해지기 전부터 그러했듯이 중원 여기저기를 꾸준히 답사했다. 의심스러운 사실을 확인도 않고 역사에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험난한 여정을 걷고 또 걸은 지 10여 년, 그는 드디어 <사기>를 완성했다. 그의 손엔 어느덧 답도 들려 있었다. 그랬다. 인간의 시간은 많아야 100년이지만 하늘의 시간은 그러하지 않았다. 때로는 하루 이틀 만에도 자기 선함을 드러내지만 다른 때엔 100년을 넘어 흘러야 비로소 그 선함이 입증되기도 한다. 그러니 기껏해야 수십 년 경험한 삶을 토대로 하늘을 회의함은 그저 영혼에 역사를 품지 않은 이들의 오만에 불과했던 것이다. 

■ 삶터를 걸어 미래로 내어가는 길 

역사를 자기 영혼에 실존으로 품었던 백이 형제, 공자, 사마천. 그들은 하늘의 선함이란 것이, 옳음이라는 것이 본래부터 자기 생애와 실존을 넘나드는 범위에서 펼쳐진다는 점을 자각한 이들이었다. 하여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이를 실현코자 한다면 그 길이 험난할 수밖에 없음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꺼이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 걷기가 자체로 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들이 걷고 또 걸었다.

마테오리치

마테오리치

당대 현장법사는 참된 불법을 구하고자 17년에 걸쳐 중원과 서역을 걷고 또 걸어 오갔다. 명대 말엽, 중국에 건너온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도 기독교의 하나님 뜻을 전파하고자 생명이 다할 때까지 낯선 이국땅을 걷고 또 걸었다. 명의 유민을 자처하며 올곧게 청에 저항한 고염무는 “구리는 산에서 캐내야지 못쓰게 된 동전을 녹여 얻으면 안 된다”며 중원 곳곳을 걷고 또 걸으면서 자기 앎을 단련해갔다. 근대 중국을 대표하는 루쉰도 불의한 시대와 타협하지 않은 탓에 일본 유학을 필두로 평생 북경, 하문, 광주, 상해 등지를 전전하며 때론 없던 길을 새로 내면서 걷고 또 걸었다.

그들은 분명 삶터를 걸었지만 그 행로는 시공을 관통하여 흐르는 역사에 새겨진 길이 되었다. 다만 그 길은 애초부터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면서도 무한을 희구하고, 이기적 세포의 집합체면서도 이타적 활동을 옳다고 여기며 옳음을 추구할 줄 안다. 자기 본성에 위배되는 삶을 욕망하고 나아가 그것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긴다. 유한하며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영원과 진리의 삶을 도모하니, 살아감이 그 행로가 어렵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205&artid=201706092040005#csidx02c7fe286c7f727af055955db2d9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