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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 남정호의 '세계화 2.0'
2013년 6월 세네갈에서 KOCIA 해외봉사 단원과 주민들이 식수개발사업으로 만들어진 식수대에서 깨끗한 물이 나오자 함께 기뻐하고 있다. KOICA 제공
"노후에 무엇을 해야 행복하게 살까"
은퇴를 앞둔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고민이다. 재취업과 취미 생활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해외봉사에서 답을 찾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동남아·아프리카·남미 등지에서 삶이 고단한 현지인을 도와 이들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풍요롭게 만들면 그처럼 즐거운 일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보람찬 해외 봉사활동에 투신한 시니어 단원들의 활약상 등을 듣기 위해 성남시에 자리 잡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본부를 찾았다.
봉사 단원 중 50대 이상 30% 넘어
은퇴 나이에도 일할 수 있어 매력
33개 직종에 걸쳐 22개국에 파견
봉사하며 얻은 아이디어로 창업도
구직난에 청년 열의가 식는 게 문제
해외봉사자 우대하는 풍토 필요해
2016년 5월부터 미얀마에서 일하고 있는 KOICA 월드프렌즈 봉사단원 이한국씨가 삐에대 실습실에서 교수들에게 엔진 분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KOICA 제공
지난 5월 미얀마 수도 양곤에서 북쪽으로 250km 떨어진 고도(古都) 삐에. 이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삐에대 기계과 실습실에선 이 학교 교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활력 넘치는 60대의 한국인 기술자가 열심히 엔진을 분해하고 있었다. 2016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으로 이곳에 와 2년째 현지 학생들에게 자동차 정비를 가르쳐온 이한국씨(67)다. 이씨는 일주일에 3시간씩, 5주에 걸쳐 엔진을 뜯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책을 통해 이론만 배운 학생들에겐 이런 실습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워낙 자동차 정비 전문 인력이 적은 곳인지라 이씨처럼 경험 많은 전문가는 큰 환영을 받는다.
자동차 정비사 출신인 이씨는 54세 되던 해인 2005년부터 지금까지 라오스·스리랑카·미얀마 등 세 나라에서 10년이나 자원봉사를 해왔다. 처음엔 반대했던 부인 홍윤숙씨(64)도 남편에 감화돼 2016년부터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한식 요리를 가르치며 봉사하고 있다. 이씨는 "학생들이 정비소에 취직해 정식으로 일할 수 있게 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2016년 5월부터 미얀마 만달레이 여성직업훈련센터에서 일해온 KOICA 월드프렌즈 봉사단원 홍윤숙씨가 학생들에게 김치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KOICA 제공
이씨 부부처럼 노후의 보람과 행복을 해외 봉사에서 찾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KOICA에 따르면 지난해 KOICA 해외봉사단 단원 중 50대 이상 시니어는 30.5%에 달했다. 시니어 단원을 처음 모집했던 2004년 당시 전체 720여 명 중 26명 (3.6%)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이들이 쉽지 않은 해외봉사에 나서는 건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는 보람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은퇴해야 할 나이에도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외에서 만끽할 수 있는 이국적인 생활의 즐거움도 적지 않다. KOICA에서는 단원들에게 활동비와 주거비 및 의료보험 등을 제공한다. 한국 기준으로는 많다고 할 수는 없는 액수이지만 현지 물가가 싼 데다 특별히 쓸 곳도 많지 않아 대도시가 아닌 한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게 대다수 경험자의 의견이다. 게다가 매달 일정액을 한국의 계좌에 넣어줘 1~2년간의 봉사활동 뒤에는 얼마간의 목돈도 만질 수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 자리잡은 KOICA 본부 전경. 김경록 기자
'월드프렌즈 코리아'란 이름 아래 해외봉사 사업을 펼쳐온 KOICA는 현재 컴퓨터·자동차정비·농업·제과·요리·한국어교육 등 모두 33개 직종에 걸쳐 22개국에 단원들을 파견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젊은 패기보다는 숙련된 실무 경험이 필요하다. 50대 이상이 도전해 볼 만한 분야가 적잖다는 얘기다.
경기도 성남시 KOICA 본부 내 연수센터. 김경록 기자
KOICA는 일반봉사단 외에 은퇴 전후의 전문가들로 이뤄진 월드프렌즈 자문단도 운영하고 있다. 한해 120여명 정도 선발되는 이들은 파견국의 정책 방향을 조언해주는 일을 맡는다. "퇴직 공무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경쟁률이 치열하다"는 게 KOICA 측 설명이다.
물론 해외봉사에서 노후의 보람만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청·장년의 경우 넓은 식견과 인내심은 물론이고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단원 중에는 봉사활동에서의 체험에다 아이디어를 얹어 참신한 사회적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도 적잖다.
해외봉사에서 얻은 체험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설립된 사회적 기업 '위드제이오제이' 위드제이오제이 제공
인도네시아에서 4년간 미용 기술을 가르쳤던 전옥주씨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지방대 미용과 교수였던 전씨는 귀국 후 다문화 이주 여성들에게 미용을 교육하는 위드제이오제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열심히 활동 중이다.
아프리카의 심각한 청년 실업문제를 덜어주기 위해 세워진 사회적 기업 '키자미 테이블' 출처: 페이스북
케냐와 카메룬에서 봉사했던 엄소희씨도 또 다른 예다. 엄씨는 아프리카의 심각한 청년 실업을 목격하고는 이들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키자미 테이블'이란 사회적 기업을 뜻 맞는 이들과 함께 차렸다. '키자미(kijami)'란 스와힐리어로 '사회적(Social)'이란 뜻으로 아프리카 음식을 소개하는 파티나 모임 등을 열고 있다. 아울러 르완다 현지에 음식점도 낼 예정이다.
2012년 9월 에티오피아에서 KOICA 월드프렌즈 봉사단원이 풍선을 이용한 수업을 하고 있다. KOICA 제공
이렇듯 뜻있는 이들이 많아지고 KOICA를 위시한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한국은 어느새 해외봉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와있다. 파견 규모 면에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2016년 기준으로 KOICA 외에 다른 NGO 및 종교단체 등이 보낸 인원까지 합치면 6320여 명의 한국 봉사단원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해 6910여 명을 보낸 미국과도 큰 차이가 없다. 3위인 일본(2500여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은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주도로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창설한 뒤 꾸준히 해외에 젊은이들을 보내 지금까지 21만5000명이 전 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땀 흘려왔다. 한국에도 1965년 처음으로 평화봉사단이 파견돼 1981년까지 2000여 명의 미국 젊은이가 농촌과 산간벽지에서 영어교육, 공중보건 및 직업훈련을 위해 애썼다. 이랬던 한국이 세계 2위의 해외봉사단 파견국이 됐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11년 1월 캄보디아에서 KOICA 월드프렌즈 봉사단원이 현지 아이들과 줄다리기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KOICA 제공
하지만 한 꺼풀만 들춰보면 고민도 적잖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해외 봉사에 대한 청년들의 열의가 식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자유롭지 않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비쌌던 90년대만 해도 이국적인 생활에서의 매력에 끌려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 또 지금보다 일자리 찾기가 어렵지 않아 해외 봉사활동을 나가는 게 지장을 준다고 생각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장재윤 월드프렌즈 본부장은 "취업이 어려워질수록 어떻게든 국내에 있다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빠진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장재윤 KOICA 월드프렌즈본부장은 "해외봉사가 활성화되려면 참가했던 젊은이들의 경험을 높게 쳐주는 풍토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개발도상국에서 원하는 인력과 봉사 희망자 간의 자질이 맞지 않는 것도 적잖은 문제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컴퓨터·자동차정비·건축 등 실무적인 기술을 배우길 원한다고 한다. 반면 국내 지원자들의 상당수는 전문적인 기술보다는 우물을 파거나 농사를 거드는 것처럼 몸으로 때우는 활동을 생각하고 응모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KOICA에서는 적절한 인재를 찾느라 애를 먹는다고 한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려면 "채용 시 해외봉사를 했던 젊은이들의 경험을 높게 쳐주는 풍토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장 본부장은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미경 KOICA 이사장은 "해외봉사 경험이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훌륭한 경력 사다리 역할을 하도록, 특히 국제기구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되게 애쓰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