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 헌법

2018. 7. 20. 05:23정치와 사회

다른 생각

제헌절 70주년 기념 - 제헌 헌법과 관련된 말말말

2018. 7. 17.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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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70주년이다. 즉,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진 지도 70년이나 됐다는 것이다. 

지난 70여 년 간 대한민국의 헌정사는 고난 그 자체였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겨우 그 정통성과 정신을 헌법 이념으로 새겨 넣었건만, 자유당 정권과 박정희-전두환에 이르는 40년 독재에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유린되었다. 국가의 근본이 되는 헌법이 대통령의 정권 연장을 위해 멋대로 개정된 건 다반사였고. 가장 최근까지만 해도 박근혜 정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던가 국정원을 동원한 대규모 관제 단체 창설 및 공작 작업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했고, 촛불 집회 당시에는 군의 쿠데타를 막아야 할 기무사에서 박근혜의 퇴진을 주장하던 민주 시민들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역으로 쿠데타 모의를 했다고 하니, 우리 헌법을 볼 때마다 참으로 측은한 마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정수호를 위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게 여러 번이니, 참 대단한 국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위대한 국민이 있어 민주주의도 이렇게 우리의 일상으로 자리잡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헌정에 위기가 찾아오면 민주주의를 사무치게 애호하는 국민들이 나서 극복하리라 믿는다.

헌법 제정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과연 제헌 헌법을 만들 당시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 나라를 재건하려 했던 걸까?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나라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의 헌법 이념은 무엇인가? 제헌절 당일 밤에 글을 쓰게 되어 그 내용을 깊이있게 전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헌법 제정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이해를 시켜 드리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 이념과 국가의 정통성

우리는 우리 정신을 헌법에 작정할 생각이 있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연유로 여기서 우리가 헌법 전문에 써 넣을 것은 "우리들 대한국민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민족으로서 기미년 3.1 혁명에 궐기하여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세계에 선포하였으므로 그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자주독립의 조국재건을 하기로 함." 이렇게 해 넣었으면 해서 여기에 제의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라고 하든 간에 맨 꼭대기에 이런 의미의 문구를 넣어 우리의 앞길이 어떠 하다는 것을, 또 3.1혁명의 사실을 알려 역사에 남기도록 하면 민주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자발적으로 일본에 대해 싸워서 이루어 낸 것이라 하는 것을 우리와 우리 동포들이 잊어버리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이것이 하나의 요청이며 부탁하는 것입니다.

- 이승만, 제헌 국회 의장으로써 한 발언 中 -
첫째, 전문은 그의 벽두에 우리가 지금 헌법을 제정하여 민주독립국가를 수립하고자 하는데, 이는 단순한 연합각국의 승리와 후원의 선물이 아니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나라 국민이 3.1독립정신과 같은 위대한 정신을 가지고 종시 일본제국주의와 투쟁한 결과이며 금번 헌법을 제정하여 수립하고자 하는 정부도 기미년에 삼천만의 민의에 의하여 수립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재건하는 것이라는 것을 웅장하게 선언한 것이다.

- 헌법 초안 작성자, 유진오 박사 회고록 -
본인은 제헌헌법초안을 기초할 때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대한민국 건국강령의 이념을 제헌헌법에 반영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계승이란 구체적인 설명이 미비하지만, 대한민국의 임시정부가 남한에 와 있었고 그 요인들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참가하였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념과 그 정신을 계승하여 수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유진오 박사의 회고록 中 -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 대한민국 헌법 1호 전문 -

대한민국의 헌법 이념과 정통성은 간단하게 말해 3.1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민주공화국의 정통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찾았지만, 그 대한민국 임시정부 또한 3.1운동으로 성립되었고, 3.1운동의 정신을 건국 정신으로 삼았기 때문에 사실상 3.1정신이 곧 대한민국의 헌법 이념이라 할 수 있다.

기미년에 최초로 독립을 선언하여 자유와 평등, 평화 정신을 주창한 선열들은 그 정신을 바탕으로 임시정부를 창설하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만들고 임시헌장과 임시헌법, 그리고 건국강령이라는 예비 헌법을 조직했다. 그리고 그러한 문건들은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제정 과정에서 고스란히 반영된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정보는 <3.1운동의 요체는 민주주의다>를 참조.


대한민국 헌법의 민주주의에 대한 말말말

이 헌법의 기본 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와의 조화를 꾀하려고 하는 데 있다고 말씀할 수 있겠습니다. (...)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위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경제적 균등을 실현해 보려고 하는 것이 이 헌법의 기본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유진오 박사 曰 -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정의입니다. 자유경쟁을 원칙으로 하지마는 만일 일부의 국민이 주리고 생활의 기본적 수요룰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하면은 그 한도에서 경제상의 자유는 마땅히 제한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헌법은 그러므로 균등경제의 원칙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고 말씀할 수가 있겠습니다.

- 헌법기초위원장 서상일 의원 曰 -

제헌 헌법을 만든 '정부 수립의 아버지'들은 대한민국이 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국가가 아닌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루는 평등 국가'가 되기를 바라였다. 

이러한 인식은 헌법 조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제헌헌법 제83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를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명시하며, 이와 함께 경제적 자유는 이러한 한계 내에서만 보장된다고 하였다. 

그 외에도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 및 단체행동의 자율을 법률로써 보장함과 동시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서 노동자의 이익 균점권을 보장"한 18조가 대표적인 경제민주주의 조항으로 언급된다. 지금 와서 들으면 '빨갱이!' 소리를 들을 법한 내용이 제헌 헌법에는 언급돼 있던 것이다.

당시 경제민주주의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는 것을 찬성했던 한민당 출신 전진한 의원의 속기록 발언을 아래에 싣는다.

민주주의노동을 전개하지 않을 것 같으면 국내적으로는 근로대중에게 위반이 될 것이고, 국제적으로는 우리가 남북을 통일할 기본을 잃고 또 일면에 있어가지고 남조선정권이 남북을 통일할 수 없는 한 개의 정권이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참고로 당시 대한민국 헌법 제정에 참여했던 인원들은 대부분이 우익 계열이었고, 그중에는 친일 정당으로 알려진 한국민주당 출신도 제법 있었다. 헌법 제정자들의 성향으로만 놓고 보면 분명 친시장경제적인 헌법이 나왔을 법 한데도 경제민주주의와 평등에 기초한 대한민국을 지향하는 국헌을 만든 것이다.

헌법초안을 작성한 유진오 박사는 대한민국 헌법의 특징으로 '균등사회의 수립을 기하는 것'을 제일로 꼽았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발생하는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의 폐단을 막기 위해 순수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를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이념은 평등주의를 추구한 민족독립운동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3.1운동 이후 진행된 독립운동은 민주공화국 수립과 민족평등-국가평등-인류평등이라는 대의에 기반을 두었는데, 당시 대표적인 좌익 계열 독립운동단체였던 <조선민족혁명당>의 당 강령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그 내용의 상당 부분이 일치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다못해 해방 정국에서 친일 정당이라고 욕을 먹었던 한민당도 당헌에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농지의 합리적인 분배"를 넣었을 정도. 


결론

즉, 대한민국의 헌법은 국가의 정통성과 기원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화주의에 두고, 국가의 지향점을 정치와 경제 사회적인 민주주의가 이루어져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생활을 누리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으로 맞추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비록 지금은 아홉 차례의 개헌으로 그 취지가 많이 바라긴 했다만, 여전히 헌법재판소는 친일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의 근거로 "3.1운동의 헌법 이념"을 내세우고 있고,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에 대해서도 자유시장경제의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복지와 정의를 실현키 위해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추구한다고 밝힘으로써 제헌 헌법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유효함을 밝힌 바 있다.

아직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대한민국 헌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대한민국의 원래 헌법 정신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아마 본래 헌법이 의도했던 국가의 방향이 6.25와 군사독재를 거치며 상당 부분 훼손되었기 때문이리라. 오밤 중에 쓴 이 허접한 글을 통해서, 간단하게나마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이 무엇인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나라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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