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버팀목

2020. 12. 18. 18:16정치와 사회

"날 믿어준 단 한 사람" 그가 이춘재로 지낸 '32년' 버틴 힘

정경훈 기자 입력 2020.12.18. 04:45 댓글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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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여씨(53)는 경기 화성 소재 농기구 수리 센터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센터 직원은 윤씨까지 3명이었고 마을 농민들의 경운기 등을 고쳐주는 일을 했다.

1988년 9월 16일 화성시 태안읍 가정집에서 중학생인 박모양(13)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범인을 찾던 경찰은 1989년부터 윤씨 직장을 오가기 시작했다. 윤씨의 낮은 학력 등이 의심의 근거였던 것으로 보인다.

"저녁 먹는데 수갑 채워가…" 강압 수사 끝에 허위자백

(수원=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가 17일 오후 수원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후 감격하고 있다. 2020.12.17/뉴스1


조를 짜 방문하던 경찰들은 그해 5~6월 윤씨에게 "체모(음모)를 뽑아달라"고 요구한다. 거절하기 힘든 강압적 요구에 윤씨는 수차례 응했다. 윤씨 기억으로는 경찰이 체모를 뽑아간 것이 5~7번에 달한다.

당시 경찰은 DNA를 분석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서 금속 성분이 나왔는데, 윤씨 체모에서도 금속 성분이 나왔다는 이유로 윤씨를 범인으로 추정했다. 이춘재도 전기 부품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당시 조사 대상이 아니었다.

7월 윤씨 집에 들이닥친 경찰들은 저녁 먹는 윤씨의 신체를 다짜고짜 구속한 뒤 경찰서로 붙잡아 갔다. 당시 윤씨 나이는 22세였다. 윤씨를 가둬 둔 경찰은 그를 이춘재 사건의 '진범'으로 만들기 위해 폭력과 고문을 동원했다. 윤씨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적극 강조했지만 주먹질이 난무하는 강압 수사를 이길 수 없었다.

경찰은 윤씨가 담을 넘어 박양을 살해했다고 이미 결론을 정해놓았다. 윤씨는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은 탓에 담을 넘을 수 없다고 항변했지만 수사 기관에는 통하지 않았다. 훗날 재심에 나선 윤씨에 따르면 현장 검증 당시 윤씨는 형사들의 부축을 받은 채 담 넘는 시늉만 했다.

사흘 간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강압 수사가 이어진 끝에 윤씨는 결국 자신이 범인이라고 거짓 자백했다.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심과 3심에서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재판부가 모두 기각해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 수사로 경찰관 5명이 승진했다.

날벼락 같은 옥살이…"믿어준 한 사람 덕에 버텨"

(수원=뉴스1) 조태형 기자 = 10대부터 70대까지 여성을 강간·살해·유기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가 34년 만에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2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다. 사진은 이춘재가 출석하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501호 법정. 2020.11.2/뉴스1


윤씨는 청주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윤씨는 교도소 내에서도 흉악범으로 낙인 찍혀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억울한 마음에 재심 신청도 몇 차례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구체적 증거가 없으면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윤씨는 당시 교정 공무원인 박종덕 계장이 교도소 생활을 버티는 유일한 힘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박 교도관은 윤씨가 진범이 아니라고 믿어준 단 한 사람이었으며, 윤씨가 다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격증 취득 등을 도와줬다.

윤씨는 2009년 모범수로 출소했지만 20년 간 바뀐 세상에 적응하기란 힘겨운 일이었다. 그를 맞이한 것은 전과자 낙인과 냉대뿐이었다. 친척들에게도 문전박대 당했다. 이때도 윤씨를 도왔던 것은 박 교도관 뿐이었다.

윤씨가 출소 후 자리를 잡은 것은 교도소가 있는 청주였다. 이곳에서 자동차 시트 제작 공장에서 원단을 옮기는 일을 했다.

이춘재 자백 후 재심 청구…결국 무죄로 누명 벗어

(수원=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1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재심 청구인 윤성여 씨가 무죄를 선고받고 법원 청사를 나와 지인들의 축하를 받고있다. 2020.12.17 /뉴스1


윤씨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이춘재가 8차 사건의 범인이 본인임을 자백하고나서부터다. 이에 윤씨가 같은 해 11월 재심을 청구해 재심이 진행됐다.

재판 과정에서 8차 사건 담당 형사 장모씨가 "윤씨가 담을 넘었다"고 말했다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을 바꾸고 결국 윤씨에게 사과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달 2일 공소시효가 끝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이춘재는 윤씨에게 "제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형 생활을 한 윤씨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에 대해 모두 용서한다는 뜻을 밝혔다.

법원은 이로부터 약 한 달 뒤인 17일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가혹행위로 얻어진 윤씨 자백이 객관적 합리성이 없는 데 반해 이춘재의 진술은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윤씨가 진범으로 몰린 당시 수사 기록, 현장 검증, 국과수 감정 내용서 등 증거들에 오류가 있음이 명백하다"며 "재판 과정에서 수사 기관의 오류를 발견 못해 결국 잘못된 판결이 선고됐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법부 일원으로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선고가 나오자 윤씨나 재판 과정을 도운 박준영·김칠준·이주희 변호사, 방청객 등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윤씨는 "다시 나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