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6. 21:17ㆍ물류와 유통
황금알 낳을 남북중 국제고속철도, 통일 지렛대로 준비해야
입력 : 2021.06.06 08:18 수정 : 2021.06.06 17:32
남북철도 연결이 남북 정상의 회담 석상에 오른 지 20년이 넘었지만, 철길은 여전히 끊겨 있다. 남북관계가 요동칠 때마다 논의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의선 남측 구간 복원이 완료됐고, 강릉과 고성 제진역을 연결하는 동해북부선의 남측 구간은 올해 말 착공된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 연결에 합의한 이후 남쪽에서 꾸준히 준비 작업을 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남·북·미 관계의 개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유엔제재 해제 등이 맞물려 있어 더디기만 하다.
최근 <남북중 고속철도의 꿈>(국민북스)을 펴낸 진장원 한국교통대학교 교수(유라시아연구소장)가 생각한 반전의 계기는 중국과 고속철도라는 두 단어로 집약된다. 먼저 남북관계에 영향을 덜 받고, 교통 수요를 확보하려면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리고 여객 수송과 물류 측면에서 비행기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추려면 시속 300㎞ 이상의 고속철도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남과 북, 중국을 연결하는 동아시아의 국제고속철도(ETX·East Asian Train Express)가 생긴다면 북한과의 점진적 통일은 물론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화 공동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통일부가 최근 남북고속철도 건설 타당성 검토 용역에 착수하면서 의미 있는 첫걸음이 시작됐다. 비슷한 시기 우연히 유사한 주제인 남북중 고속철도에 관한 책을 낸 진 교수를 지난 6월 1일 경기도 의왕 연구실에서 만났다. 진 교수는 남북중 고속철도는 북한 퍼주기가 아니라 한국의 생존 전략인 통일의 지렛대이자 동아시아의 번영을 선도할 신의 한 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쪽 구간의 고속철도 완성, 남북중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기술과 인프라 표준화 등 유엔 제재 속에서도 가능한 일부터 하나씩 시작할 때라고 밝혔다.
진장원 한국교통대학교 교수가 6월 1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남북중 고속철도는 왜 필요한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줄타기하며 살고 있다. 게다가 당시와 달리 남북이 분단된 와중에 미·중·러·일을 생각해야 해 더 다차원 방정식으로 변했다. 대내적으로는 인구절벽(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를 겪고 있다. 20년 후에는 생산가능인구(만15~60세) 1.7명이 고령자 1명을 부양해야 한다. 인구구조상 젊은층이 많은 북한과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진해 30~40년 후 통일이 된다면 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 인구도 1억명을 금방 넘어갈 것이다.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국방과 경제에서 큰 힘을 갖게 되면서 주변 4개국의 눈치를 볼 일이 적어진다. 주변 4강의 변화만 바라고 통일 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멍하니 통일을 미루면 30~40년 뒤 큰일을 당할 수 있다. 우리 내부 모순을 해결하고 주변국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강대국이 되려면 통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다. 이때 통일로 가는 길목을 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철도의 연결이다.”
-남북중 고속철도가 경제성이 있을까.
“서울~신의주 철도만 연결해선 절대 흑자가 안 난다. 경의선이 중국을 넘어가 동아시아 철도망에 편입될 때 비로소 흑자노선이 된다. 그것도 시속 100㎞ 정도의 재래 철도로는 안 되고 최고 속도 350㎞는 돼야 한다. 서울에서 북경까지 약 1400㎞이다. 표정속도(목적지까지의 거리를 목적지까지 걸린 시간으로 나눈 속도)가 300㎞이면 5시간 안에 돌파한다. 기준점을 천안문으로 잡고 총 통행시간을 따지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서울역에서 고속철을 타고 북경역에 도착하는 시간이 더 짧다. 장점은 더 있다. 고속철도의 요금은 비행기 요금의 60~70% 수준, 저가항공사와 비교해도 85~90% 수준이다. 거기다 비행기는 좌석이 좁고 밖을 볼 수 없다. 고속철은 바깥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비행기보다 빠르고 탑승 환경의 쾌적성이 좋아 비행기에서 철도로 상당한 수요가 전환될 것이다.”
한국교통대학교 연구진은 2018년 비관적인 시나리오 하에서도 2028년 기준 한국인 197만명, 중국인 335만명 등 총 532만명이 비행기 대신 남북중 국제고속철도를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남한과 중국에서 북한을 오가는 역외통행 여행객과 선박 승객을 포함하면 2030년 남북중 국제고속철도의 승객은 1000만~130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진 교수는 호남고속철도가 연간 1000만명 이용 시대에 접어들면서 적자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남북중 고속철도의 경제성도 충분하다고 봤다.
-북한 소득 수준이 낮은데 여객수요가 크게 증가할 수 있을까.
“유로스타가 다니는 런던·파리·릴·브뤼셀의 배후 도시 인구가 3600만명, 국민소득이 3만7000달러이다. 연간 이용객은 2000만명이 넘는다. 남북중 고속철도망에 속한 북경·서울·선양·창춘·하얼빈의 배후인구는 9600만명, 국민소득은 2만1000달러다. 2004년 경부고속철도 1단계가 개통했을 때 우리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였다. 현 단계에서도 북한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속철을 일상적으로 타고 다닐 소득이다. 인구가 이미 유로스타의 2.7배 수준이니 연간 2000만명은 금방 넘는다. 유로스타는 영국~프랑스 해저터널 건설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 수익성이 없지만 (남북경협기업인) G-한신의 추계에 따르면 서울~신의주 구간 공사비는 15조원밖에 안 든다. 수익성은 금방 나온다. 초창기에는 북한 내부 승객은 거의 없고, 남한에서 중국, 중국에서 남한과 북한을 오가는 통과통행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점차 개방되고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북한 역내 승객도 증가할 것이다. 감히 예언하자면 남북중 국제고속철도가 개통되면 1년에 2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황금노선이다. 이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북한 퍼주기 사업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남북중 고속철 건설을 위한 재원 조달은.
“고속철도 사업은 남북 양자구도로만 진행돼선 절대 안 된다. 남북 양자구도로만 했다가 금강산·개성관광, 개성공단 사업이 실패했다. 남북중 고속철도 사업은 철저히 다자구도로 진행해 설령 남북관계가 조금 틀어져도 어느 한쪽이 어깃장을 놓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러·일·미 등의 자본이 함께 투자될 필요가 있다. 한 방안으로 당사자인 남북중이 합작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세계 여러 나라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황금노선이 될 것이라 보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가 모일 것이다.”
진 교수는 이 특수목적법인으로 자금을 유치해 건설·운영하다 적당한 시기, 미 증시에 상장해 전 세계인의 기업으로 발전시키면 정치적 변동성에 관련 없이 동아시아의 대동맥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러시아와 일본은 어떻게 끌어들일 수 있나.
“남북중 국제고속철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당연히 러시아도 여기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한일 해저터널로 일본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유레일 패스로 유럽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듯, ‘동아시아철도’(ER) 패스로 중·러·한·일 등 동아시아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엄청난 관광자원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성과가 모이면 동아시아 철도·경제·에너지 공동체도 가능하다.”
-한중직통 화물운송열차를 먼저 제안했다.
“2019년 기준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직구 총액은 약 2조원이다. 지금은 배 아니면 비행기로만 물량이 오가는데 북경 이북을 포함해 동북 3성 지역은 지금 북한의 표정속도(30~50㎞)를 감안해도 철도를 이용하면 더 빠르고 값싸게 운송할 수 있다. 남북중이 합의하면 지금도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우산 하에서 북한을 무정차로 지나가는 한중직통 화물철도 운송이 가능하다. 북한은 선로 사용료를 받고, 한중 소비자는 싼 가격에 물건을 빨리 받을 수 있어 좋다. 이건 유엔제재 하에서도 추진할 수 있다. 한국은 분단 이후 국제철도 운영 경험이 없는데 한중직통 화물 운송으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유엔제재 하에서도 또 가능한 작업이 있나.
“고속철도 남한 구간을 설계하고 완성하는 데 10년은 걸릴 것이다. 지금부터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시끄럽다면서 남북 고속철도의 시작역을 서울로 할지, 광명으로 할지 논의도 안 한다. 중국은 북한에 고속철도가 없음에도 신의주 바로 앞 단둥과 두만강 앞 훈춘까지 고속철도를 깔았다. 이유는 딱 하나다. 언젠가 북한에 고속철도가 깔리면 남한에서 이걸 타고 올라올 것이라 보고 준비한 것이다. 통일법에 따르면 통일 관련 사업은 예비 타당성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이를 적용해 통치행위로서 추진할 철학과 가치관이 필요하다.”
-한일 해저터널은 현실성이 있을까.
“현재로선 수익성이 거의 없다. 유로스타는 영불 해저터널 건설·유지비가 많이 들어 2000만명이 쓰는 지금도 적자이다. 한일 해저터널은 그 공사비의 몇배가 든다. 200㎞가 넘는 유례없는 길이라 기술적 부담도 굉장하다.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참사 수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두 조건을 다 충족해도 시기가 문제다. 칼자루를 우리가 쥐고 있어야 한다. 남북중 고속철도를 연결한 후 안정적으로 운영할수록 일본은 하고 싶어 목이 탈 것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때 협상해도 늦지 않다.”
-철도 통합이 동아시아 공동체에 갖는 의미는.
“유럽 통합은 석탄철강공동체에서 시작하지만, 실제 쉥겐협정에서 출발해 유럽연합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유럽의 철도였다. 유럽은 국가 간 철도운행을 통일시키는 기술사양서(TSI)와 철도교통관리시스템(ERTMS)을 만들고 이를 유럽은 물론 세계의 표준으로 만들었다. 철도가 국경을 넘을 때 시간이 걸리지 않고 자유도를 높이는 게 관건인데 핵심은 TSI와 ERTMS의 통일이다. 우리도 우선 남북중 TSI를 만들고, ERTMS에 맞춘 고속철도를 설계해야 한다. 이것도 유엔제재 하에서 가능하다.”
-미중 갈등을 뚫고 건설할 수 있을까.
“유럽은 호전적인 독일을 끌어안았다. 중국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폭주기관차가 될 것이다. 고속철도를 깔아 왕래하고 설득할수록 중국 사람의 도덕과 생각 수준이 높아질 수 있다. 통일신라가 당과 문물 교류로 서로 이득을 본 것은 중국을 잘 달래고 우리 자체의 힘이 강했기 때문이다. 내버려두면 한나라·수나라처럼 충돌하게 된다. 미중 패권다툼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줄 세우기가 끝나면 멈출 테고 그땐 미국과 중국이 모두 한국을 필요로 한다. 이때 동북아 고속철도가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뉴욕·워싱턴, 북경·상하이, 도쿄·오사카를 뛰어넘는 거대 연담경제권이 만들어질 것이다. 투자자 짐 로저스가 남북통일이 되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기반이 된다. 거듭 말하지만 남북중 고속철도의 파급효과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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